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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포케 Nov 26. 2023

거대한 쉐어 하우스

자기야 이게 무슨 소리야? 2

  도시에서 나고 자라 시골풍경보다는 주택가 골목의 촘촘한 다세대 주택들이 정겹고 어린 시절 생각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같은 대문을 사용하지만 조그마한 마당에 반지하와 2층의 두 집을 세 놓은 3층 주인집이 같은 주소를 사용하며 사는 다세대 주택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 현관문을 우리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고?'

  하와이에도 한국의 다세대 주택처럼 같은 대문을 사용하는 구조의 주택들이 많다. 다른 점이 있다면 거대한 집 하나를 여러 공간으로 쪼개서 여러 세입자를 받는다. 

  그래도 출입문이 단독으로 나있는 한국식 다세대 주택의 각 세입자들은 독립된 공간에서 지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이곳은 주방과 화장실이 각 방에 보장된 거대한 쉐어 하우스 같은 느낌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거대한 집 뒤에 있는 뒷문이 우리 집 현관문이다. 적어도 6 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집에는 3개의 게이트가 있는데 맨 왼쪽, 중간, 맨 오른쪽으로 나뉘어 있다. 크게 3곳으로 분류되어 있는 거대한 집 정면에는 2 가구, 왼쪽에는 1 가구, 오른쪽은 3 가구가 살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 우리만 사용하는 출입구인 줄 알았던 현관문은 다른 3 가구가 함께 사용하는 문이었고, 공동현관 역할을 하는 이 문 뒤로 작은 공간과 함께 우리 집 포함 3개의 문이 있다. 

  정말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던 건, R이 계약서를 작성하러 2번 째 이 곳을 방문했을 때도 중년의 중국인 집주인은 이 작은 공간이 우리 집만의 공간이 아니며 다른 이웃과 함께 사용하는 공용공간이라는 걸 설명해주지 않았다. 지금은 이중문이 있는 게 보안에 도움이 될 거라는 억지 위안을 하고 나니 괜찮아졌지만 집주인의 괘씸함에 며칠 짜증이 났었다.


  말 그대로 한 집을 공유하는 세입자들은 방음이 전혀 되지 않고 생활소음에 취약한 환경에서 서로의 사생활을 배경음처럼 들으며 지낼 수밖에 없고, 현관문이라 불리는 문도 여느 방문과 다를 바 없는 나무문일뿐이다.

  그래도 집 열쇠는 무려 3개나 된다. 게이트, 공동현관, 우리 집. 열쇠가 많아 좋은 점이 있다면 복실이를 닮은 귀여운 키링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복실이를 닮은 귀여운 키링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신축건물은 전자도어락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는 동네처럼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20년대 지어진 건물부터 한국전쟁이 종전됐을 시기에 지어진 우리 집 같이 연식이 오래된 집이 정말 많다. 이런 집들은 여전히 열쇠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이사를 여러 번 다니며 지냈지만 1층 집에서 살게 된 건 2번째이다. 그리고 보안창도 없는 1층 집에서 사는 건 인생 처음이다. 

  '자기야 나 밤에는 창문 무조건 다 닫고 잘 거야.'

  '알겠어. 그런데 우리 집은 이 집 뒤쪽에 있어서 안전하긴 할 거야.'

  이 집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R의 말에 동의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다. 정말 긴 담벼락을 지나야 우리 집 현관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와이에 도착한 날이 토요일이었는데 밤이 되자 대각선으로 보이는 집에서 젊은이들이 잔치를 벌이는지 음량을 한껏 높인 음악소리와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우리 집까지 들렸다.

  '저 집 매일 저녁 저렇게 놀았니? 오늘은 토요일 밤이라서 그런 거야? 매주 토요일마다 저렇게 잔치를 벌이지는 않겠지?'


  R도 이사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마구 질문했지만, 내가 궁금했어야 할 집은 대각선에 있는 다른 집이 아닌 이 거대한 집의 관리인이 사는 우리 윗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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