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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포케 Nov 26. 2023

똑똑똑, R?

자기야 이게 무슨 소리야? 3

  '둥탁둥탁. 우두두두. 꺌꺌꺌꺌'

  하와이에서의 첫 목요일 저녁, 사람들이 맨 오른쪽 게이트를 열고 긴 담벼락을 우르르 지나오더니 거대한 집 뒤편에 있는 우리 집 공동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공동현관문 뒤로 우리 집 문을 제외한 2개의 문이 더 있는데, 그중 하나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연결된 중국인 관리자 부부의 집이다. 나는 아직도 이 집의 구조가 참으로 미스터리하고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그냥 그렇구나 하며 지내는 중이다.

  몇 명의 손님들이 왔는지 알 순 없지만 적어도 3명 이상인 것 같다.

  소음에 취약한 집 구조를 너무 잘 알고 있으니 손님들이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가는 것에 불만은 없다. 이런 일이 자주 있진 않겠지. 가끔이겠지.


  '똑똑똑, R?'

  왁자지껄한 위층 손님들의 웃음소리와 대화소리 사이로 누군가 우리 집을 문을 두드렸다. 중국인 관리자 부부는 앞으로 생길 소음에 미안했던 건지, 이제 막 이사 온 새로운 이웃에게 환영의 인사를 한 건지 음식 몇 가지를 접시에 담아 가져다줬다. 하나는 잡채와 비슷한 당면 요리였고 하나는 갈비찜처럼 보였는데, R이 말하길 갈비찜은 사슴고기인 것 같고 중국 향신료가 너무 강해서 네가 좋아할지 모르겠다는 말에 잡채 비슷하게 생긴 당면 요리만 열심히 먹었다.

 며칠 후 이들의 요리에 고마웠던 우리는 한국에서 가져온 시나몬번 오레오를 그들에게 돌려줄 접시에 담아서 함께 줬다. 이들의 요리가 우리의 끼니에 얼나마 요긴했는지, 좀 더 좋은 걸 주고 싶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집 구색을 갖추기 위해 여러 살림살이를 열심히 장만하고 있던 때라 누군가에게 대접할 만한 뭐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R을 위해 사온, 미국에는 없는 시나몬 번 오레오가 가장 귀해 보였고 R의 동의를 얻은 후 오레오로 화답했다. 그래도 언젠가 맛있는 한국 요리를 만들면 이들과 나눠야겠다.


  중국인 관리자 부부는 그들이 맡은 역할 때문인지 우리를 친절하게 대해준다. 모든 우편물과 택배들은 이 거대한 집 앞에 배달되기 때문에 긴 담벼락 뒤에 살고 있는 우리가 택배나 우편이 왔는지 바로 알지 못할 때, 이들 부부가 우리 집 문 앞에 우편물들을 종종 놓아주기도 한다. 이들에게 고마운 건 이런 친절이 사소해 보이지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둥탁둥탁. 우다다닥. 호호호호'

  하와이에서 두 번째 화요일 저녁 중국인 관리자의 손님들이 또 찾아왔다.

  이런, 그들이 생각보다 자주 모임을 갖나 본데?

  '쾅. 쾅. 드라라락 탁.'

   이날은 저번 목요일보다 더 신나는 일이 있는 건지 아님 게임이라도 하는 건지 조금 더 격동적인 소음이 들렸는데, 어떻게 하면 저렇게 요란한 소리가 날 수 있는 걸까 상상해 봐도 짐작할 수가 없다. 바닥을 뭔가 둔탁한 걸로 내려치는 것 같기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요란한 소리에 더불어 들려오는 중국어 대화 소리와 웃음소리는 이상하게 짜증 나거나 거슬리지 않았다. 아마도 중국인 관리인 부부가 잡채 비슷하게 생긴 당면요리와 중국식 갈비찜을 줘서일까? 평소에 그들을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가끔 소란스러운 저녁 정도는 사람 사는 곳이니 생길 수 있는 생활소음이라고 생각하며 지낸다.

  그들도 나와 같은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으니,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모여 자신들의 요리와 언어를 마음 놓고 즐기는 게 얼마나 큰 즐거움일지 상상도 해본다.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그들이 소란스럽지만 얄밉지가 않다.


  '티도독 탁탁, 툭타리 탁.'


  '자기야 오늘 저녁도 위층집에 손님들이 우르르 왔었는데 무슨 탭댄스라도 추는 줄 알았어.'

   R과 장난 삼아 매주 목요일마다 위층에 손님들이 오는 건 아니겠지? 라고 했던 말이 현실이 되어 버린 건지 늦은 시간 퇴근 한 R이 놓친 현란한 위층 소음에 대한 브리핑을 했었다.

  '중국인 관리자 부부가 어떤 모임의 리더인가? 이렇게나 자주 모임을 갖는다고?'


  그래도 뭐든지 적당히를 알고 하면 누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중국인 관리자 부부는 일주일에 2번씩 흥이 넘치는 손님들과 이 왁자지껄한 모임을 가지면서도 밤 11시는 넘기지 않는다.

  손님들은 마치 신데렐라라도 되는 것처럼 밤 11시 경이되면 계단 내려가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긴 담벼락을 따라 게이트를 열고 나간다. 멀어져 가는 그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때면 나도 잘 준비를 한다.


  약간의 관계가 형성된 중국인 관리자 부부의 위층 집 소음에 관대해지는 걸까.

  우리 집 큰 방에 창고로 사용되는 작은 통로가 있는데, 그 끝에 있는 방문 하나를 테이핑 하고 열지 못하도록 고정되어 있다. 이 거대한 집 정면에 살고 있는 젊은 백인 커플 집과 연결 된 문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이들이 내는 지나친 소음에는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누군가 문을 최대한 세게 닫아보라고 해도 나는 저렇게 큰 소리는 못 낼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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