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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포케 Nov 26. 2023

야생닭, 드릴 그리고 문단속

자기야 이게 무슨 소리야? 4

  '쾅!! ... 쾅!! ... 쾅!!'

  R은 내가 하와이 오기 전, 며칠 정도 혼자 이사 온 집에서 지내야 했는데 이웃집과의 경계가 겨우 나무문 하나라는 얘기를 듣고 몇몇 질문을 했었다. 잠시지만 며칠이라도 먼저 이 집에 살아본 R은 큰 방의 작은 통로로 이어진 젊은 백인 커플의 집에서 별다른 소음은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이 맞았다. 고작 2주 정도는.


  이미 위층 집의 생활소음에 적응되고 있을 즈음, 2주가 지나가고 있을 무렵이다.

  이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앙칼지고 명료한 목소리의 젊은 백인 여자가 우리 집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젊은 백인 남자의 목소리는 저 멀리에서 들리는 걸 몇 번 들었지만 여자 목소리처럼 크고 선명하게 들어본 적은 없다.

  이렇게 종종 젊은 백인 여자가 우리 집 벽에 대고 얘기하는 듯 큰 목소리가 들릴 때면 어김없이 방문 닫는 소리가 함께 들리는데 그 정도가 지나치다. 적어도 나한테.

  희한하게도 이렇게 방문이 곧 부서져버릴 것처럼 닫아서 대포쏘는 소리가 들리는 날은 연달아 방문을 닫는데, 5분 안에 5번 이상 들어본 적도 있다. 3번까지는 참았는데 4번째부터는 욕 없이 못 듣는다.


  저들만 아는 문 세게 닫기 놀이 같은 거라도 있는 걸까.


  낮이고 밤이고 현관문을 열어 놓는 젊은 백인 커플은 검은색 중형견과 함께 지내는데, 이 아이의 이름이 뭔지는 몰라도 우리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짖더니 이제는 우리가 이웃이라는 걸 알게 됐는지 짖지도 않고 쪼르르 달려와 게이트를 지나서 긴 담벼락을 따라 걷는 우리를 보고 있는다.

  '나도 이제 너한테 적응해 가는데 너의 룸메이트들이 내는 대포쏘는 소리는 지금도 적응이 되질 않니.'

  이들의 문단속은 현재 진행형이다.


-

  소란스럽고 귀여운 우리 1층 집에는 없는 게 있다. 천장 선풍기.

  하와이에는 천장 선풍기가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집이 많다. 하지만 우리 집은 없다. 그래서 밤낮으로 창문을 활짝 열어놔야 하는데 집은 1층인 데다 꽤 높은 담벼락이 앞에 있어서 창문을 열어놔도 맞바람 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아주 시원하지는 않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해서 스탠드 선풍기로 충분히 집안 공기를 순환시키고 시원하게 할 수 있다.

  침대를 장만하기 전까지 R이 사용하던 소파 겸 1인용 침대에서 인간 둘과 복실이까지 총 셋이서 구겨진 채로 매일 밤 잠들어야 했다. 쉽지 않은 매일 밤이었는데 나의 미라클 모닝을 돕는 숨은 조력자도 있을 줄이야.


  '억끼오~ 옥끼오~~'

  새벽 5시 즈음이면 울어재끼는 야생닭들. 내 알람조차 깨우려 드는 이 귀여운 야생닭들.


  2019년 R을 만나러 처음 하와이에 왔을 때, 이국적인 풍경에 한국과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도 생경한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야생닭이 정말 많다는 거다. 길고양이처럼 동네 여느 곳에 길닭들이 많다.

  그런데 이 야생닭들의 울음소리가 날 괴롭히는 소음은 아니다. 정겨워서일까.

  단잠을 깨울지언정 시골 할머니댁에 놀러 갈 때면 아침에 들리던 한국 닭들과 같은 목청의 하와이 야생닭들이 정겹다.

  아 그리고 닭은 생각보다 잘 날고 무지 빠르게 뛴다. 이웃집 강아지 후니를 구조하던 날 1차선 도로를 엄청난 속도로 가로지르는 야생 수탉을 목격했는데, 스릴을 즐기는 닭인지 심지어 양쪽 차선에서 차가 달려오는 그 사이로 휙 지나갔다. 뭐지? 순간 닭이 차에 치이는 줄 알고 고개까지 돌리며 약간의 소리까지 지를 뻔한 나를 비웃듯 그 야생 수탉은 내 키 만한 펜스를 넘어 누군가의 마당에서 유유자적 걸어 다녔다. 정말이다 닭은 무지 빠르다.


-

  '우다다다다다, 드르르르르르, 우쿠쿠쿠쿠쿠'

  '자기야 혹시 공사가 자길 따라다니는 거야?'

  R은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 지냈던 쉐어하우스 근처에서 밤마다 시작되는 도로 공사소리에 고통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이젠 나도 함께 드릴 소리에 고통받고 있다.  

  지금 하와이는 여기저기 공사를 정말 많이 하는데 도로 보수 공사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나 도심, 고속도로를 중점적으로 하는 것 같은데 우리 동네는 정확히 무슨 공사를 한 건지 모르겠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공사가 끝나서 더 이상 드릴 소린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이 요란한 드릴 소리 덕분에 빈약한 창문의 반전을 발견했다. 생각보다 방음에 뛰어나서 놀라워 눈이 휘둥그레졌다.


  밤낮으로 창문을 열어 놓을 수밖에 없지만, 도로를 깨는 드릴 소리를 견딜 수가 없어서 더울 걸 각오하고 한 번 닫아 본 창문은 소음의 80%를 차단해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스탠드 선풍기가 생각보다 성능이 좋아서 창문을 닫아도 적정온도가 유지된다는 것도 발견했다.


  애착 물건이나 루틴을 빙자한 유사 편집증도 안정감을 위한 도구 중 하나다. 특히나 거처를 옮기면서 익숙한 내 공간을 떠나 새로운 집에서 적응할 땐, 이곳에서의 루틴을 빨리 만들어 내려고 하는데 안정감을 얻으려 부단히도 노력하다 보면 새로운 걸 시도해야 할 때도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토록 안정감에 집착하던 이유도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기 위함인데 이것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건 처량해 보인다.

  창문을 닫아도 덥지 않다는 걸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수많은 밤, 귀여운 야생닭 울음에 깨지 않아도 됐잖아. 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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