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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포케 Nov 26. 2023

결혼 면허증이 필요하다고?

임시 영주권으로 가는 길 2

  '자기야 2년 만에 수수료가 40달러 넘게 오를 수 있는 거야?'

  결혼 라이센스를 발급받기 위해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하려면 기본정보 입력 및 수수료 결제도 해야 한다. 대부분 인적사항에 관한 질문들이어서 특별히 어려운 문항은 없었다. 아, 인적사항 작성과 수수료를 지불한다고 자동으로 예약이 되는 게 아니라서 수수료 지불 후에 부여하는 고유번호로 예약을 따로 해야 하는데, 여기서 조금 헤맸다. 거의 20여분 동안 예약하기 위해 고유번호를 입력했지만 자꾸 에러가 나는 게 아닌가. 계속 붙잡고 있으면 짜증만 날 것 같아서 '여긴 한국이 아니지.' 마음을 가다듬고, 몇 십분 후에 다시 시도했더니 예약이 됐다! 미국의 방식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뭐든 빨리 해치우고 쉬는 게 마음 편한 나에겐 상당히 거슬리는 부분이지만 뭐 어쩌겠어. 여기에 또 적응하고 살아야지.


  어쨌든 저쩠든 결혼 라이센스 예약을 마친 후 발급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검색하다 뜻밖의 발견을 했다. 2년 전이면 정말 최근인데 왜 40달러 넘게 수수료 차이가 나는 거지? 다른 주에서 임영권 준비를 하던 분의 글을 읽던 중 의문이 생겨서 R에게 질문을 했지만 썩 수긍이 가는 답변은 아니어서 계속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또 다른 분은 나보다 더 비싼 수수료를 지불하고 결혼 라이센스를 발급받은 걸 알게 됐다.

  '아, 주마다 결혼 라이센스 수수료 가격도 다르구나.'


  공공기관 사업일 텐데 여기서 청구하는 비용도 주마다 다르다니, 한국에선 어느 지역 행정복지 센터이던 서류별 수수료가 동일한 게 너무 당연해서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이들의 방식이 낯설게 느껴진다. 나보다 더 비싼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던 분에게 리스펙을 하며, 도대체 결혼 라이센스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물음표를 던져봤지만 지금도 나를 이해시켜 줄 답변은 찾지 못했다.


  SSN카드 발급 신청 후에 다시 집에 가 공공기관 출입이 어려운 복실이를 둔 후, R과 함께 결혼 라이센스를 발급해 주는 곳으로 향했다. 이번엔 다행히도 주차장이 있었지만 유료였고 셀프 계산이라서 예상 주차시간을 선불로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1990년 초부터 있었을 것 같이 생긴 연식이 오래돼 보이는 기계에 돈을 지불하고 나니 영수증을 뱉어냈고, R은 다시 차로 가서 운전석 앞에 영수증이 잘 보이도록 올려놓은 후 문을 잠갔다. 이쯤 되니 공공기관은 주차로 돈 버는 곳을 뜻하는 단어인가 싶다.


  메인 업무 보는 출입구로 들어가니 결혼 라이센스 발급은 밖으로 나가 오른쪽 사무실로 가라는 안내가 보였다. 사무실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대기석이 몇 개 준비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다른 커플이 있어서 기다려야 했지만 예약시간 전에 도착했던 터라 기꺼이 기다리겠다는 태도로 대기석에 R과 앉아 있었다. 대기실을 둘러보니 대기하는 동안 마음껏 기념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안내가 부착되어 있었다. 사무용 파티션이 쳐져있는 대기실에서 무슨 기념사진 사진을 찍으라는 건지 의아하던 중, 'Happily ever after' 한쪽 벽면을 포토존처럼 꾸며놓은 걸 발견했다. 귀여워라.

  R과 사진을 찍고 나니 앞에 있던 커플이 끝나고 우리 차례가 되어 사무실에 들어갔다. 도대체 이 업무를 몇 년 동안 하셨을까. 대부분이 흰머리카락인 사이에 검은 머리카락이 섞여 오묘한 회색빛을 띄는 단발머리의 나이 지긋한 아시아인 직원분 앞에 앉았다. 

  짧은 선서 후에, 경쾌한 목소리로 우리가 인터넷으로 제출한 인적사항을 우리와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필수기재사항이 아니라 빈칸으로 뒀던 질문들에도 답변을 채워 나가셨다. 여전히 생소한 인적사항 질문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인종에 대한 질문이다. 약혼자 비자를 준비하면서도 미국 이민관리국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몇 번 작성했는데 꼭 빠지지 않고 하는 질문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어떤 인종인지 묻는 질문에 답변해야 했던 적이 없기 때문에 생소하면서도 이렇게까지 인적사항을 적어야 한다고? 처음엔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거의 모든 서류에 등장하는 질문이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하는 필수질문인가 보구나 하며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답변과 더불어 우리의 최종학력까지 필요한 결혼 라이센스. 재밌어.


  'Congratulations!'

  결혼 라이센스를 발급받은 후에 우리에게 환하게 웃으며 축하한다고 말하던 그녀의 진심 어린 표정이 인상 깊었다. 그녀는 이후에 어떤 과정들을 우리가 해야 하는지 설명해 줬고 우리는 감사인사를 전한 후 결혼 라이센스를 품에 안고,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들뜬 마음으로 뜨거운 햇빛에 달궈진 차에 탔다.


  '자기야 우리 부케라도 준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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