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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포케 Nov 26. 2023

Are you guys eloping?

임시 영주권으로 가는 길 3

  '자기야, 우리 부케라도 준비해야 되나?'

  결혼 라이센스를 발급받은 후 뜨겁게 달궈진 차에 올라타며 R에게 물었다.


  3개월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다, 특히나 모든 일처리가 한국의 10배로 오래 걸리는 미국에서는 말이다.

  약혼자 비자를 발급받고 임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공식적으로 결혼한 사이인지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필요로 한다. 결혼 라이센스를 발급받은 우리는 이제 혼인 신고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인데,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공식적인 주례 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주례를 받고 그 주례사가 우리가 진실한 사이인지를 증명해 주는 증인이 되어 혼인 신고서를 작성해 준다.


  'Can you pay first?'

  웨딩 당일 주례사의 사무실에 도착해서 우리가 예약자라는 신상을 간단히 말한 후, 주례사가 가장 처음 건넨 말이었다. 주례사들이 얼마나 큰 사명감으로 결혼하는 이들을 축복해 주는진 모르겠지만 선불로 주례가 이뤄진다는 건 알아냈다. 아 그리고 주례사께서는 이 수수료를 꼭 현금으로 준비하라는 안내 문자를 미리 보냈다.

  오, 그래도 그는 우리가 알맞게 현금을 준비해 왔는지 헤아려 본 후 금세 밝아진 표정으로 주례사의 의무를 다 해줬으니 불만은 없었다. 이건 나중일이지만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결혼 증명서를 빨리 받았기 때문에 그가 일처리 하나는 정확하고 빠르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


  거창하게 드레스를 입을 생각도 없었지만, 3분 웨딩이라도 웨딩이니 뭐라도 좀 차려입고 부케라도 들면 특별한 날에 사용되는 꽃다발이 우리만의 웨딩을 일상과 구분 지을 수 있는 장치가 될 것 같았다.


  주례사를 받는 과정은 웨딩이라기 보단 우리에게 임시영주권을 위한 이벤트로 느껴져서, 어서 이 과정을 마치길 바랄 뿐이었다. 혼인 신고서를 받는 것이 약혼자 비자의 가장 큰 비중이기 때문에, 웨딩을 위해 특정한 날을 정할 것도 없이 R이 쉬는 날 중 가장 빠른 날을 우리의 3분 웨딩으로 예약했고 웨딩 이틀 전 동네 꽃집에 들러 부케 예약을 했다.


  근처에 2개의 꽃집이 있었는데 처음 가려고 했던 곳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차선으로 근처 다른 꽃집으로 향했고 그곳을 방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바랜 작은 간판 아래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진하다 못해 찌린향이 나는 꽃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R과 나는 정돈되지 않은 가게 안을 한동안 두리번거렸지만 우리가 들어온 소리를 못 들었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Excuse me~?'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작업장 출입구로 체격이 다부진 중년이 터덜터덜 나와 우리를 맞이해 줬다.


  우리는 부케와 부토니에를 지금 주문해서 이틀뒤에 있을 웨딩에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고, 사장의 가능하다는 대답과 함께 우린 노란색과 보라색 꽃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둘 중 어떤 색이든 상관없으니 카네이션을 섞어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주말 동안 단체주문 때문에 특정 색의 꽃 수량이 넉넉할지 모르겠지만 가능할 것 같다는 말에 바로 결제를 했다.


  결제하기 전 주문서 및 수기 영수증을 꼼꼼히 작성하던 사장은 R에게 뭔가를 물어보는 것 같았는데 조금 떨어져 있어서 무슨 질문이었는지 들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결제를 마치고 차에 올라타면서 부케가 어떻게 준비될지 벌써 궁금해지던 찰나, R에게 사장과 어떤 대화를 했는지 물었다.


  'Are you guys eloping?'

  '너네 야반도주라도 하는 거야?'

  사장이 R에게 이 질문을 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빵 터졌다. 그래. 웨딩 이틀 전에 부케와 부토니에를 주문하는 이들이 흔하진 않겠지. 흔하지 않은 상황이라서 사장도 이 부분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장의 질문에 R도 당황했는지 'Excuse me?'로 답하자 질문을 바꿔 이틀 후에 우리가 결혼하는지 되물었다고 한다. 결제를 다 마친 후에 사장이 우리를 보면서 축하한다고 말했던 순간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R과 함께 황당하고 재밌는 질문에 한껏 웃으며 뜨겁게 내리쬐는 하와이의 한 낮 볕을 가르며 도로를 달렸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행복을 느낄 수 있을  한 껏 행복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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