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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포케 Nov 26. 2023

Do you know R?

중년의 중국인 집주인3

  이사 이틀 전에 집 열쇠를 받은 애인은 집 청소 겸 간단한 짐을 이사 갈 집에 옮겨 놓고 곧 계약이 만료되는 예전 집 청소도 틈틈이 했다.


  애인은 화장실과 주방을 공유하는 셰어 하우스에서 1년 넘게 한 명의 하우스 메이트와 살았는데, 놀랍게도 하우스 메이트는 단 한 번도 공용 공간을 청소하지 않아 늘 애인이 청소해야 했다.

  '공평하지 않은데 하우스 메이트랑 이 부분에 대해 얘기해 본 적 있니?'

  애인은 작년 여름방학을 한국에서 보냈다. 그렇게 한국에서 즐거운 여름 방학을 보낸 후 셰어 하우스로 돌아갔을 때, 누렇게 찌든 변기와 먼지가 굴러다니는 주방이 애인을 반겼고 시차 적응을 하기도 전에 청소부터 시작해야 했다. 여름방학 동안 혼자 집을 사용한 하우스 메이트는 공용공간을 단 한 번도 청소하지 않고 지낸 거다.

  '자신을 위해서도 청소하지 않는 사람인데 내가 하우스 메이트에게 이 부분에 대해 얘기하는 건 의미가 없는 거 같아.'

  이 말에 격하게 수긍하긴 했지만 타인에게 기대감을 갖지 않는 게 익숙한 애인이기 때문에 이 사람과의 동거가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애인과 영상통화 할 때, 한 두 번 하우스 메이트가 애인에게 말 거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저 해맑아 보였다. 애인을 엿 먹이려고 악의적으로 청소를 안 하는 걸로 보이진 않아서 그냥 애인의 방식대로 상황을 해결하는 걸 지켜봤다.  


  그래서 공간은 셰어 했지만 청소는 셰어 하지 않은 해맑지만 청소에 무지한 하우스 메이트 덕에 애인은 그날도 청소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우연찮게 하우스 메이트와 애인이 이사 나가는 시기가 같아 셰어 하우스 집주인은 이들이 이사 나가면 이 집을 리모델링할 거라고 했다. 

  '너 이사 가는 집 주인이 중년의 중국인이니?'

  리모델링 때문에 셰어 하우스에 들린 집주인은 애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하니 미국에서는 이사 갈 집 집주인이 예전 집주인에게 세입자의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하는 건 흔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중년의 중국인 집주인은 언젠가 애인에게 집주인 전화번호를 물어봤고, 애인은 집주인에게 새로 이사 갈 집 집주인에게 전화번호를 줘도 되는지 물은 후 알려줬다. 

  '여보세요?'

  '너 R이라고 알아?'

  '네 압니다.'

  '좋은 세입자니?'

  '그렇습니다. 좋은 세입자입니다.'

  '월세도 잘 냈어?'

  '그렇습니다.'

  'Ok, Bye.'

  그날 아침 누구라고 밝히지도 않고 예전 집주인에게 다짜고짜 애인을 아냐고 시작된 통화는 1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났다고 한다. 예전 집주인은 청소하고 있는 애인에게 이 말을 전했고, 애인은 이 말을 나에게 전했는데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태도로 대하는 중년의 중국인 집주인이 이제는 친근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같은 건물에서 이웃으로 살고 싶진 않다.


  이 날 이후로 이사 당일이 됐고, 중년의 중국인 집주인은 이삿날 애인에게 스토브 전기 열선을 사다 주겠다고 했다. 사실 4구짜리 스토브에 1구가 빠져있어서 3구밖에 없었는데 집 계약 당시 그녀는 전자레인지는 너희가 사야 한다는 말과 함께 스토브에 빠져있는 열선도 필요하면 너희가 사라고 했다. 변덕이 심한 그녀는 애인의 예전 집주인과의 통화 후에 애인이 월세를 꼬박꼬박 잘 내는 좋은 세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심술이 누그러진 걸까. 

  우리는 덕분에 4구짜리 스토브를 잘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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