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포케 Dec 04. 2023

으악!

퀸 엠마 축제

  '자기야, 하와이에 축제 꽤 많지 않아?'

  생각하고 보니 하와이 와서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축제라 부를만한 곳에 가보진 못 했다. '세계테마기행'이나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나온 하와이는 축제가 꽤 있어 보이던데.

  그래서 R과 나는 식탁에 앉아 오아후 섬에서 열리는 축제를 찾아봤다. 아쉽게도 흥미로워 보이는 몇몇 축제는 이미 끝났지만 역시나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유명한 휴양지답게 달마다 크고 작은 축제가 있었고 10월 초에 있는 퀸 엠마 축제를 가보기로 했다.


  오전 9시부터 시작한다는 축제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준비해 집을 나섰다. 이른 시간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축제에 푸드트럭처럼 간식이나 음식을 파는 부스가 있는지 궁금해서 축제에 대해 찾아보니 먹거리와 라이브 음악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은 축제에서 먹기로 했다. 축제 홈페이지에 축제에 대한 정보가 있었지만 어떤 분위기일지 가늠되지 않아 가는 길에도 궁금해서 어서 도착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도착했을 때 R과 나는 꽤나 놀랐다. 시간을 맞춰서 갔는데 넓은 주차장은 이미 거의 꽉 차있었다.

  퀸 엠마 축제를 찾아낸 후 R에게 이 축제를 아는지 물었을 때, 갸우뚱하며 잘 모른다고 답해서 그냥 작은 지역 축제인가 싶었고 우리는 큰 기대를 하진 않았기 때문에 이 광경에 상당히 놀랐다.

  자원 봉사자들로 보이는 주차 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주차 후 축제 입구로 걸어가니 작은 부스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성인 기준 1인당 10달러. 들뜬 마음으로 들어가자 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퀸엠마가 사용하던 여름궁전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걸으면 오른편에 있는 자그마한 기념품점을 지나서 작은 강당 같은 공간이 나오는데 오늘을 위해 참여한 많은 지역 비지니스 부스들이 시작된다.

  플리마켓처럼 빈티지한 물건을 파는 곳, 수제 청이나 잼, 10월 말에 있을 할로윈 데이를 생각나게 하는 컵케익과 파운드 케익, 액세서리 부스는 각자의 제품들을 진열해 놓고 끊임없이 들어오는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금 아침 9시가 맞는 거지?

  방문객을 맞이하는 부스의 사람들과 여기저기 둘러보기 바쁜 방문객들의 들뜬 에너지들이 모여 만든 활기찬 분위기는 축제장에 울려 퍼지는 라이브 음악과 어우러진다.

  그렇게 작은 강당을 지나면 궁전의 뒤뜰처럼 보이는 넓지 막 한 공간이 나오고 몇몇 원형 간의 테이블과 의자들 뒤로 수많은 흰색 천막들이 늘어서있다. 궁전의 테라스를 무대 삼아 공연하는 가수들의 나른한 하와이안 음악은 아침이지만 벌써부터 강렬한 볕을 상쇄시켜 주는 것 같았다.

  어디에선가 나는 맛있는 냄새를 따라 걸어가니 간식과 음식을 파는 부스를 발견했고 고민하다 고른 메뉴는 와플핫도그 하나와 훈제돼지고기 플레트 하나를 주문했다. 식사가 나오는 동안 먼저 나온 와플핫도그를 받아  후 R은 케찹을 짜려고 했지만 잘 나오지 않아 케첩통을 세게 쥐었다..

  '으악!!'

  케찹은 요란하게 뿌직 소리를 내며 발사됐고 샌들을 신고 있는 내 발가락 사이로 그대로 토핑 됐다.

  나는 와플핫도그를 들고 선 채 얼어버렸고 당황한 건 R도 마찬가지였다. R은 케찹을 닦아 내느라 한참을 고생했고 조금 끈적해진 샌들을 축제 내내 신고 다녀야 했다. 나중에 엄마에게 이 일을 말해줬는데 한참을 웃으셨다. 가끔 R이 만드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가장 즐겁게 듣는 애청자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웃는 소리가 좋아서 이렇게 종종 R의 귀엽고 엉뚱한 면을 얘기해주곤 한다.


  뭐 아무튼.

  식사를 받아 들고 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라이브 공연을 보며 아침을 먹었다. 우리 말고도 몇몇 사람들은 일찌감치 테이블에 자리 잡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경력이 굉장해 보이는 무대 위의 가수들이 부르는 하와이안 노래에 맞춰 시니어, 아이들, 청소년 다양한 연령대의 그룹들이 번갈아가며 하와이안 춤을 췄다.

  가수 중 한 명은 행사 진행도 맡았는데 퀸엠마가 즐겨 찾던 여름 궁전에서 그녀를 기리고 생전 그녀가 남긴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모두를 환영하기도, 올해 여름에 있던 마우이 섬의 비극적인 화재를 애도하기도 했다. 그들의 무대에 푹 빠져 즐기기도, 몇 달 전에 있던 가슴 아픈 참사를 함께 애도하다 보니 방문객들이 엄청 많아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도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식사를 끝냈을 때는 원형 테이블뿐만 아니라 뒤쪽에 있는 잔디밭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아이들과 나드리 온 사람들, 노약자석처럼 뜨거운 볕을 피해 앉을 수 있는 천막 아래 간이 의자들도 사람들이 꽉 차있었다. 복작복작한 축제 풍경을 둘러보며 내년에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모가 엄청난 축제는 아니다. 하지만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하고 여러 사람들과 좋은 에너지를 나누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공연을 충분히 즐긴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궁전을 둘러보기로 했다. 궁전 입구에는 수많은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뒤로도 많은 방문객들은 신발을 벗고 궁전으로 들어갔다. R과 나도 신발을 벗어 놓고 궁전에 들어가니 강렬한 레드카펫이 깔린 응접실에는 하프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이아카말라마라(Foster child of the moon)는 이름을 가진 궁전은 1848년에 지어져 200년이 다 되어가는 건축물이지만 관리가 상당히 잘 되어 있어 놀랐다. 궁전 안에는 왕족들이 사용하던 화려한 장신구들과 그들이 실제로 사용하던 침대, 화려한 찻잔과 접시들이 보관되어 있는 찬장, 모든 공간마다 있는 크고 작은 오래된 거울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이 갔던 건 퀸엠마의 아들이 사용하던 방에 놓여 있는 아기 자기한 아기 용품들. 요람, 아기침대, 어린이용침대에서 부터 작은 옷, 장난감들 까지, 200여 년 전에는 지금보다 더 값비싼 것들이었을 텐데 다른 방에 비해 작은 이 방을 가득 채운 물건들에서 여왕이면서 엄마인 엠마가 아이를 위하던 마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눈길이 갔다.

  궁전 내부를 둘러본 후 살만한 것들이 있는지 부스를 돌아다녔다. 오후 2시면 끝나는 이 축제는 12가 넘었는데도 끊임없이 방문객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작은 강당에 있던 몇몇 부스는 이미 물건이 거의 판매되어 곧 마감할 듯이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기도 했다. R이 눈여겨봤던 아이스크림 콘 모양 컵도 모두 판매 됐는지 보이질 않았다. 천천히 둘러보며 신중히 고른 망고잼, 수채화 하와이 풍경 엽서, 퀸엠마 사진엽서를 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축제를 떠나던 1시쯤에도 방문객들은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내년에 또 와야지.


  망고잼은 아직도 맛보질 못했다. 수채화 엽서는 최근에 사진들과 함께 거실 벽에 붙였다. 퀸엠마 사진엽서도 곧 벽에 붙여질 것 같다.

이전 21화 네가 택배 가지고 들어온 줄 알았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