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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Jan 17. 2022

나의 어시스턴트

그날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으면 했다


‘대표님 이제 슬슬 새 직원 공고 올리셔야 할 것 같은데요’


작년 봄부터 갤러리에서 일했던 유진의 퇴사 한 달 전 나는 조심스럽게 갤러리 인턴 공고를 올렸다.

취업포털사이트는 이용하지 않았다. 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것보다 갤러리와 나를 잘 알고 있는 지원자로 저절로 추려지게 할 의도로 갤러리 홈페이지에만 공고를 하였다. 최소한 우리 갤러리에 한 번쯤은 방문했던, 주요 작가는 누구인지 정도는 아는 그런 사람 말이다.


공고를 올리고도 맘이 편치 않았다. 지원자가 많이 몰리게 되면 그만큼 고민의 횟수도 늘어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탈락 이유를 궁금해할 것이고 또 속상함과 실망의 크기가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이다.

청춘들의 기대와 간절함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리는 기분이었다.


언젠가는 직원 고용을 늘려야 할 텐데 경영 수업이라 생각하고 모든 과정에 차근차근 임했다.

서류면접을 통과한 사람과 인터뷰 일정을 잡고 인터뷰 전에는 서류와 지원동기를 꼼꼼히 살폈다.

갤러리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 어시스턴트인 만큼 대표인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 줄 수 있는 부분과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열정이 충만한 사람인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차비와 갤러리 굿즈를 포장했다. 먼길 까지 인터뷰 하러 와 준 것이 대한 감사의 표시와 결과와 무관하게 우리 갤러리에 들러주었으면 했다.


미술을 전공했다면 그것대로 좋을 것이지만 전공하지 않더라도 다른 강점이 있다면 오히려 더 좋다. 성실함과 열정에 예술에 대한 관심도와 소통능력이 주요점이다. 전공과 관련 없이 예술 트렌드에 민감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화랑가를 돌아다니며 전시를 탐방하고 관심작가가 꼭 있으며 예술계의 크고 작은 이슈에 관심 있는 그런 사람, 오히려 비전공자의 시선은 기존의 틀을 깬 새로운 접근법일 수 있기에 오히려 열려있는 편이다. 이제 세계로 나아가야 하니 영어 능력과 글로벌 있으면 좋겠다. 우리 작가들이 편하게 믿을 수 있는 따스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적고 보니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 같다.




언제는 안 그랬냐만은 작년 봄의 나는 갤러리가 안정이 되기 직전의 시기로 모든 것이 피로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 일하던 직원은 프랑스 유학을 앞두고 있어 곧 퇴사 예정이었고 그날 따라 난 갤러리에 혼자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고용하는 데에는 나름의 시간, 비용, 노동이 들기 마련이었고 당시의 나는 막막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멘 여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전시를 살짝 둘러보더니 조심스럽게 아메리카노와 쿠키 하나를 건넸다. 수줍은 모습을 보니 혹시나  나의 팬인가 싶어 “혹시 사진 찍어드릴까요?” 하고 먼저 제안했다. 그리고 우린 꽤 어색하게 사진을 찍고 그녀는 갤러리에 오래 머물지 않고 돌아갔다.


그것이 유진과 나의 첫 만남이다.


마스크 속에서 올라갔을 입꼬리, 수줍음과 뒤섞인 기쁨의 감정이 보이는 눈과, 조금의 피해도 끼치지 싫어 많은 말을 삼킨 것 같은 표정, 때마침 먹고 싶었던 커피 때문일까? 이상했다.

왜 여운이 남았을까? 갤러리에는 다양한 사람이 다녀가고 팬을 자처하며 사진 요청을 하는 일이 종종 있기에 일상적인 해프닝으로 생각할 수 있었지만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말들이 갤러리 공간에 남아있었다.


그날 밤 나에게 귀엽지만 진중한 메일 한통이 날아왔다. 메일에 무게가 있다면 1kg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분량의 진심이 담겨있었다.


메일의 첨부파일엔 무려  A4 용지 네 장 분량의 본인의 예술관과 나에게 쓰는 편지 내용이 빽빽하게 쓰여있었다.  준비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 고민하고 수정한 기색이 보인다. 편지의 주인공은 무급으로 갤러리에서 일하고자  했다. 설령 거절해도 평생 나의 팬이 될 거라는 내 걱정과 염려까지 바라보는 세심함 까지 덧붙였다 . 필요하면 언제든지 기쁜 마음으로 갤러리에게 달려오겠다는 편지 내용이었다.


사실 무급으로 라도 일하며 경험을 쌓고 싶다는 메일이 몇 통 날아오긴 했지만 모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나 합당하게 대가를 지불하면서 책임감을 요구하고 싶었다 청춘들의 열정을 이용하는 나쁜 어른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그러기엔 나도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일이란 건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기에 논란거리가 생길 만한 모든 것은 조심하고 지양해왔다.


하지만 그녀의 구구절절 팬심과 직무에 관한 열정이 넘쳐흐르는 메일 내용 이상으로 내 마음을 흔드는 한 가지 현실적인 조건이 있었다. 학교에서 무급인턴제도가 있어서 갤러리에서 실습을 하면 그만큼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사용하고 싶다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수업은 갤러리에서 일하는 것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걱정은 사라지게된다.


몇 가지 복잡한 서류 작업이 끝나자 카메라 가방을 갤러리에 들어선 봄의 유진은 어느새 러브컨템포러리아트에 없어선 안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원래 그 자리에 원래 있던 던 사람처럼 말이다.


그렇게 봄이 지나고 얼마 안 되어 정식으로 유급 어시스턴트로 전환이 되고 함께 무더운 여름을 맞았고 풀숲같이 변한 갤러리안에서 위로받았으며 선선한 가을에는 경주의 전시까지 함께하고 아트페어에선 완판의 기쁜 순간도 함께했다. 아트페어 때 무리를 해서 링거 맞으러 가는 나에게 부스는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라는 말하던 본인도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입맛이 사라져 저녁도 못 먹겠다고 하고선 숙소로 들어간, 극도로 피곤했던 그날 밤을 추억하면서 지금도 웃는다.



겨울에는 유난히 작품 판매가 많이 되어서 정신없는 연말을 보냈다. 작가님들로부터 받은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에 즐거워했고 판매된 그림들은 전국 방방 곳곳에 운송되었다. 해외 운송을 보내는 데에 꽤 애를 썼고 무례한 사람이 찾아올 때는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나 대신 화를 내주었다. 난 그런 그녀에게 사회생활이란 원래 이런 것이라고 웃으며 애써 괜찮은 내색을 했다.


갤러리에 찾아오는 모두가 좋은 사람일 수가 없다. 무례한 사람이나 상식 밖의 도가 지나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괜찮다. 나는 적당히 무시하고 대처하는 법을 알지만 유진에게 그런 어른들의 모습, 불합리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렇게 성장한 유진은 어느새 작가에 대한 말들이 천산유수처럼 나오고 나조차도 힘든 못질이나 수장고 관리도 거뜬히 해내게 되었다. 세련되어짐은 물론이고 사람 자체에 아우라가 멋지게 변해버렸다.

스스로도 모르는 새에 완전한 큐레이터가 되어가고 있었다.



“작가님은 작품만 하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할게요” 우리 러브 갤러리의 작가들은 지지를 받으며 열심히 성장했다. 그래서일까? 유진은 갤러리의 모든 식구들에게 사랑받았다. 퇴사 소식을 듣고 많은 작가들이 서운해했고 그녀에게 이별 선물을 그림으로 표현해 주었다. 몇 번이나 작별인사를 했는지 모른다.


근무하고 첫 전시인 키마 작가님의 전시를 끝내고 나에게 건네준 사진집



이렇게 갤러리의 순간을 담았다



아마도 출퇴근 길 이였나보다


그녀가 퇴사하는 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아침부터 의도적으로 감정을 외면하고자 했다.  평소와 똑같이 조금 일찍 퇴근하려고 하려던 나는 유진님 저 갈게요 하고  쿨하게 , 바람처럼 사라지려는 순간,

대표님 잠깐만요 하면서 새빨간 쇼핑백을 꺼낸다.

아이고 뭐 이런 걸 다 하면서 그럼 남은 시간 수고해요 하면서 재빠르게 갤러리를 빠져나왔다.


 그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귀여운 편지지에 깨알같이 적혀있는 어른스러운 말들은 작은 소망을 방해했다. 비로소 마지막 날인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닥설랍 작가님이 유진님께 준 이별 선물 우리는 동시에 왈칵했다


나보다 열 살은 어리지만 언니같이 알뜰살뜰 나를 챙겨주었던 유진

대표님은 계세요 제가 다녀올게요

씩씩하게 힘들고 불편한 일도 자처해서 해결하는 모습이 아련하다.


빨간 포장지로 포장되어있던 것은 수분 크림이였다.

피부가 건성이라 갤러리에 있을 때 습관적으로 히터를 켰다가 껐다가얼굴이 건조하다고 괴로워 하던 내 모습을 기억했던 것이다.




“대표님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우리 작가님들과 디자이너님, 저 모두 대표님이 자랑스럽고 너무 잘하고 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무리하거나 몸을 혹사시키지 않으셨으면 해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대표님을 존경합니다”


지금까지 이 편지의 내용은 나를 지탱해주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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