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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Jun 28. 2024

ㅇㅇ를 기다리는 시간

내가 얘를 기다릴 줄은 몰랐다. 만나서 좋을 일이 별로 없기도 하고 얘가 오면 나는 상당히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사람들만큼은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얘를 만나면 며칠을 앓아눕고 배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낀다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기분좋지 않은 불편감을 주는 복통이 미미하게 있어 한 번은 꼭 약을 먹어야 한다. 얘가 도움이 안 되는 건 금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얘를 만나기 위해서는 필요한 물건이 있는데 이 물건이 싸지가 않다. 한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찾아오니 나이가 들수록 그 찾아옴이 빨라져서 이 물건은 항상 쟁여놓아야 하는 필수품이다. 그렇게 몸도 고되고 돈도 쓰고 하면서 얘를 만나야 하나 싶지만 얘와의 만남은 운명이다. 어쩔 수 없이 만남을 유지할 수밖에 없고 그게 벌써 30년이 넘어간다. 어떤 이는 40년만에 헤어졌으며 어떤 이는 빠르면 30년만에도 헤어질 수 수 있다는데 헤어진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 헤어짐이 후련하지만은 않다더라. 그래도 얘와의 만남을 통해 유지되는 것들이 있는데 얘가 떠나감으로써 유지되던 것들이 힘을 잃거나 약해졌고 그건 절대 플러스가 아니라고. 그 뿐이 아니다. 얘는 자기를 잊지 말라고 자기 친구를 붙여놓고 간다는데 얘가 또 가관이다. 성은 갱이요, 이름은 년기라는데 호감가지 않는 이름만큼이나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그나저나 얘와 함께한 시간이 별로 유쾌하지 않고 앞으로도 유쾌하지 않을 일이지만 얘가 떠나고 난 뒤에 올 일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얘가 안 오길 바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얘가 안 오면 이 아이의 스케줄표를 뒤적거리며 ’올 때가 됐는데, 오기로 한 날이 지났는데‘ 걱정을 한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그러면 예정보다 2,3일쯤 지나 ‘나, 오래 기다렸오?’하며 나타나는 너. 밉지만 반가움이 더 큰 건 이제는 내가 아쉬운 쪽이라 어쩔 수 없다. 아마 얘가 떠나면 큰 변화가 올 것이고 나 역시 그 때를 대비해 몸과 마음을 잘 케어해야 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늦게 떠나기를 바라지만 나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얘는 어느 날 훅 하고 떠날 것이다. 떠나서 알게 되는 이별이 아닌 떠나고 난 뒤의 빈자리로 알게되는 이별. 너와 이별 후 년기와도 잘 지내는 법을 터득해야겠지. 솔직히 말할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이별이 나는 좀 두려워. 그러니까 천천히 떠나주라. 플리~즈(인사이드아웃의 슬픔이 버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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