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는외계인 Feb 16. 2023

마지막탄 타임머신


모유수유기 마지막탄을 쓰고 있는 지금, 아기는 벌써 7개월에 접어들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왔나 싶을 정도로 7개월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실감이 잘 나지 않아요.



완모(완전 모유수유)를 꿈꿨지만 완모(완전 모자람) 앞에 좌절했던 순간들,

꼭지가 아파서 남몰래 엉엉 울기도 했던 통곡의 시간들, 

아기 비위 맞추느라 젖 찬양 노래까지 지어 불렀던 웃픈 날들,

눈물, 콧물, 젖물 쥐어짜며 조금씩 엄마가 되어갔던 숱한 밤들...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고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돌아간다해도 저 모유수유 할래요. 





래칭에 성공한 후 수유텀 신경쓰지 않고 아기가 배고플 때마다 젖을 물렸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자세도 많이 안정되었고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만능 젖크림도 꾸준히 바른 덕분에 꼭지도 다 나았어요. (딱지가 여러 번 앉았다 떨어지고를 반복하면서 강철 꼭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으하하하!)



완모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아기 몸무게를 정기적으로 체크하면서 성장 곡선을 잘 따라가는 데 집중했어요. 분유 보충을 죄악시? 하거나 좌절감을 느끼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대신 부족한 젖량은 현대 의학과 민간 요법의 힘을 적극 빌렸습니다. 패밀리 닥터를 통해 돔페리돈을 처방받아 약 3개월 간 복용했고 각종 모유촉진 보조식품의 호갱님이 기꺼이 되었습니다.  



지난 달 부터는 이유식을 시작했더니 분유 보충량이 자연스럽게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모유수유도 훨씬 안정적으로 자리잡힌 느낌이에요. 



모유를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에 지속해 왔던 밤중 수유는 끊기 시작한지 이제 일주일 되었어요. 아직 밤에 몇 번 깨서 울기도 하지만 젖은 더 먹지 않고 스스로 그치고 다시 잔답니다. 



다만 굽은 등과 어깨, 모유수유 하니까 엄마가 잘 먹어야 한다는 (매우 설득력 있는) 핑계로 늘어난 뱃살은 이제부터 수습할 예정입니다. (저 말리지 마세요...) 







이전 에피소드에서 제가 너무 무서운 이야기만 했나요? 



초반의 폭풍 같은 시기가 지나고 나니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찐 행복의 순간이 찾아 오더군요.



아기와 살을 맞대고 착붙했을 때 온전히 느껴지는 따뜻함과 부드러움, 

숨이 넘어가게 울던 아기가 젖을 물자마자 울음 뚝 그칠 때의 안도감,

조그마한 손을 엄마 가슴에 얹고 쪽쪽 젖을 빨 때의 귀여움과 기특함, 

젖을 빨다 말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는 씨익 웃다가 다시 젖을 빨 때의 행복감...



엄마의 가슴은 로맨틱한 감정을 넘어서는 원초적인 에너지, 즉 지극히 연하고 약한 새 생명을 품고 길러내는 땅의 힘이 깃든 곳이었습니다.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오후, 능숙한 조교처럼 한 손으로 아기를 받쳐안고 다른 한 손으론 스마트폰을 하면서 여유있게 젖을 주는 모습을 보던 남편이 저와 눈을 마주치더니 씩 웃더군요. 



생각해 보면 웃통 까고 젖마사지 받는 모습에 당황해 뒷걸음질 친 적도 있고, 아이 젖고문 하냐며 못마땅해 할 때도 있었고, 독립투사처럼 변한 아내의 가슴에 당혹스러워 하기도 한 남편이지만요, 



꼭지가 아파 울 때 연고 구하러 동네 약국 다 뒤지고, 젖이 잘 나오려면 잘 먹어야 하는 관계(핑계)로 치킨 사러 뛰어나가고, 제가 모유수유 씨름하고 있을 때 믿음직스럽게 첫째를 잘 돌봐준 사람은 다 남편이었어요. 



"나 많이 컸지?" 하자 다시 씩 웃던 그 날 남편의 미소는 그 모든 시간들을 겪어낸 우리들에 대한 대견함과 고마움이었어요. 



그것은 분명 사랑한다는 말 보다 더 강력한 언어였습니다.






나의 모유수유기 끝. 



제가 바로 동순이에요.
이유식 먹어주는 착한 오빠



그동안 긴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