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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보 Feb 15. 2016

김기덕 영화 <아리랑>

김기덕 감독의  '브리다', 존재의 승화와 우리들의 브리다 김기덕

김기덕 감독의 영화'아리랑'은  자신의 오두막 집에서
배설과 정화를 상징하는 세안으로  시작하여 '씻김굿'의 과정을 통한
 존재의 승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의 첫 장면은 김기덕 감독이 손수 지었다는 6평의 작은 오두막집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난 김기덕 감독은 화장실이 없는 오두막 집  앞마당에서 호미로 밭에 배변 자리를 만들고 배설을 한 후, 세수하는 장면으로 영화 '아리랑'의  '씻김굿'의 전반부는 시작된다.  


영화 '아리랑'의 씻김굿의 목적은 '아리랑', 인간 김기덕의 정의에 의하면 나를 깨우치는 것 (아리: 我理) 혹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고개로  넘어가는 인간으로서 김기덕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제의라 할 수 있다. 이 제의의 과정에서 김기덕이라는 굿을 의뢰하는 인간과 굿을 받는 신(자연의 김기덕), 중간 존재로서 감독으로서의 김기덕이 굿을 진행한다. 굿은 신과 인간이 만나는 소통의 장이라 한다. 외부에서 신을 찾는  과정이라기보다, 김기덕 내부의 신을 만나는 과정을 영화 '아리랑'을 통해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왼편: 김기덕 감독의 오두막집, 중간: 배설 장면, 오른편: 세수 장면

영화 전체적인 구조는 씻김굿의 구조와 닮았다. 굿을 준비하는 전반부, 씻김굿의 시작, 과정, 그리고 종결을 보여주는 중반부, 그리고  인간관계 안에서 생긴 기억을 제거하는 종반부로 구성되어있다. 


묶은 머리 스타일의 김기덕과 
풀어헤친 머리 스타일의 김기덕의 상징

김기덕 감독의 머리스타일은 머리를 묶지 않았을 때는 '인간의 김기덕,' '작가로서의 김기덕'과 '상처받은 영혼의 김기덕'을 나타내고, '머리를 묶은 김기덕'은 '자연의 김기덕, ' '감독의 김기덕', '연기자의 김기덕'을 상징한다. 

아래의 영화 장면을 보면, '자연의 김기덕'의 노크를 기다리는 것은 묶은 머리스타일을 한 '감독으로서 김기덕'을 나타내고,  '자연의 김기덕'을 떠나보내는 '인간의 김기덕'과 '은 풀어헤친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다. 아래의 맨 위의 세 장면들은 '자연의 김기덕'의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난 감독으로서의  김기덕, 위에서 두 번째 층은 세 번의 배설 장면을,  밑에서 두 번째 층의 세 장면은 세 번의 세수를 통한 정화 장면을, 그리고 맨 아래의 세 장면은 '자연의 김기덕'의 떠나보내는 '인간으로서의 김기덕'을 상징하는 장면들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씻김굿을 위한 준비과정

영화 전반부의 '씻김굿'의 시작은 감독으로서 김기덕이 자신의 오두막 안 부엌에서 불을 펴, 음식을 굽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시작된다. 씻김굿의 전반부의 굿의 대상은 '조왕(부엌 신)'이고 장소는 부엌이다.  안당(안방)이라 상징할 수 있는 텐트 안, 늦은 저녁에 찍은 자연의 김기덕과 자연의 김기덕의 그림자, 머리를 풀어헤친 인간으로서 김기덕,  그리고 오두막의 손님이라 할 수 있는 고양이의 식사 과정을 통해 김기덕의 '씻김굿'의 서막인 불러들인 영혼들을 흠향하고 대접하는 '처올리기'와 '손님굿'을  연상시킨다.



영화의 중반부는 씻김굿의 본격적 시작, 과정, 완성 과정

잠자리를 청하려는 저녁, '똑똑똑, 똑똑똑, ' 세 번 문을 두드리는 장면은 '씻김굿'의 '자연의 김기덕'을 불러오면서 본격적인 굿의 시작을 알린다. 영화 중반부에서 인간의 김기덕이 자연의 김기덕과 자연의 김기덕의 그림자와 문답을 통한 자신의 영혼을 천도 한다.  아래의 장면은 김기덕 감독의 '혼' 혹은 '자연의 김기덕'이 육신의 김기덕을 깨우는 장면은 씻김굿의 '초가망석'이라 하여 망자를 청하는 초혼(招魂)과 김기덕 감독 자신의 '혼맞이'를 연상시킨다.

자연의 김기덕의 혼 맞이 다음 날 아침에 보여주는 두  번째 세수 장면과 두  번째 배설 장면 은 씻김굿의 중심 대목인 이슬 털기를 연상시킨다.  

'자연의 김기덕'을 맞이 한 후, 감독 김기덕은 영화 '아리랑'에서 처음으로 대사를 한다. 감독의 김기덕으로서.

감독 혹은 연기자로서 김기덕은 묶은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 자신의 "레디", "액션"과 함께 펼쳐지는 배우 김기덕의 "너, 뭐라고 했어?"라는 대사 속 다양한 목소리 톤과 얼굴 표정들은 감독으로서 뿐만 아닌, 배우 김기덕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장시킨다. 

카메라 화면을 응시하며 섬세하게 움직이는 얼굴의 근육을 통해, 악마의 얼굴 표정부터 천사의 얼굴 표정을 짧은 시간 안에 지어 보여 배우로서 김기덕의 자질을 보여준다. 

 3번의 배설과 3번의 정화

'아리랑'에서는 총 3번의 배설 장면과, 3번 정화 과정은 자신 안의 신, 즉 자연의 김기덕과  김기덕의 그림자를 맞이 하기 위한 사전 준비와 자연의 김기덕과 그림자와의 만남을 통한 정화와 치유의 과정을 상징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정화와 배설 장면은 문답 과정이 끝나기 전에 등장한다. 후반부에서 '똑똑똑, 똑똑똑' 그리고 '똑똑똑, 똑똑똑, 똑똑똑'으로 '자연의 김기덕' 혹은 김기덕 감독의 '브리다'를 떠나보낸다. 

영화 '아리랑'에서 김기덕 감독이 보여준 '브리다' 책

스무 살 브리다는 마법을 배우러 숲 속의 마법사를 찾으러 간다. 마법사는 브리다가 자신의 소울메이트라는 것을 알아보지만 브리다는 알아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이해해주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마법사는 소울메이트인 브리다에게 마법을 가르쳐주지만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마법사 대신 달의 마스터 위카를 찾아가 그녀에게 지도를 받는다. 자신의 자아와 통찰력을 단련하고 어느새 마녀의 경지에 다다른 브리다는 숲 속의 마법사가 자신의 소울메이트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래의 장면들은 '씻김굿'의 중반부를 알리는 장면들이다. 인간 그리고 감독으로서 어두운 상태였던 김기덕 감독은 '자연의 김기덕'을 불러 '인간' 그리고 '감독'으로서 김기덕에게 질문을 통한 영혼의 위로와 달래기를 시작한다. 인간으로서 김기덕은 무가 대신 '아리랑'과 '한 오백 년'을 구슬프게 부른다. 넋을  끄집어내는 씻김굿의 '왕풀이'와 이승에서 맺힌 원한을 풀어주는 '넋풀이'를  연상시키는 씻김굿의 중반부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연의 김기덕', '감독으로서의 김기덕' '그림자의 김기덕'은 묶은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고, '인간의 김기덕'과 '상처받은 영혼'의 김기덕은 풀어헤친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다. 

자연의  김기덕, 김기덕의 그림자와  접신한 후,  감독으로서 김기덕이 라면을 먹는 장면과 인간의 김기덕의 배설 장면이 나온다. 즉, 내면의 신을 만난 후, 감독은 영적 에너지를 충전하고, 인간의 김기덕 역시 영혼의 치유되었음을 배설 장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 후 장면은 씻김을 통한 치유 과정이 끝난 후, 자연의 김기덕의 떠남을 나타내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인간 김기덕의 부활을 눈을 퍼오는 장면, 장작에 불을 지피는 장면, 그리고 '제가, 무엇을 더 보여 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통해  감독으로서의 치유뿐만 아니라 인간 김기덕의 존재의 새로운 부활을  예고한다. 


영화의 종반부는 씻김굿의 마지막 단계인
인간관계 속에 맺힌 잡귀와 잡신들을 제거하는 배송굿

씻김굿의 종반부는 집 밖에서 이루어진다. 굿의 의뢰자가 초청한 신뿐만 아니라 잡귀와 잡신들을 대접하는 배송 굿이란다. 감독 김기덕으로서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지 않던 인간관계 속에서 생겨난 영혼의 응어리인 잡귀와 잡신(안 좋은 기억들)들을 제거하기 위한 씻김굿의 마지막이 4번의 총성을 통해 배송을 하는 과정이다.  

 

4번의 총성

'아리랑'의  결말 부분에서 총  4번의 총성이 울려 퍼진다. 감독 김기덕의 '레디', '액션'과 함께 3번의 총성은 김기덕의 기억을 제거하기 위함이고, 나머지 한 발은 김기덕 감독의 존재적 승화를 위한 '인간으로서 김기덕 감독'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인간의 김기덕이 제거된 후 울려 퍼지는 아리랑 가락은 승화된 김기덕 감독의 존재와 그의 '브리다'의 존재를 확신해주는 축가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 싶다. 


3번의 아리랑의 각 각 다른 의미

영화 '아리랑'에서 노래 아리랑은 세 번 울려 퍼진다. 첫 번째 아리랑은 살풀이 과정에서 인간 김기덕의 고독의 '아리랑'이오, 두  번째 아리랑은 '불안과 불만의 '아리랑'이오, 세 번째 아리랑은 자신에 대한  믿음의 '아리랑'이다.

 

당신은 내가 고독했던 시절에는 희망이었고, 의심했던 순간들에는 불안이었고, 믿음의 순간에는 확신이었어 (브리다 중)


첫 번 째 아리랑 노래는 인간 김기덕으로서의  아리랑이고 감독으로서의 아리랑이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 고개에에로오 나를 넘겨어어어~~~주오' 

라고 부른 후, 자신 만의 아리랑을 부른다.  이때 아리랑의 의미는 '자신을 깨닫는 아리랑'이오, '인생의 고개를 극복'하는 아리랑이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오르막, 내리막, 올라갔다, 내려갔다. 또 올라갔다. 떨어졌다가. 기어올라갔다가, 떨어졌다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또 떨어졌다가.  기어오르다가.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는 삶. 그것이 인생, 그것이 인생'


두  번째 아리랑은 감독 인간으로서 김기덕인 아리랑이다. 씻김굿의 마지막 단계인 자신 내부(기억)의 잡신과 잡귀를 물리치는 아리랑이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 어어어 어  주오, 아아아 아~~~ 아아아~~~'


세  번째 아리랑 은 예술 자체로 승화되어 새로운 길을 가는 김기덕이다. 그리하여 첫 번째 아리랑을 부를 땐, 풀어헤친 머리 스타일의 김기덕이오, 두 번째 아리랑을 부를 때는 머리를 묶은 감독 인간으로서 김기덕이오, 세 번째는  김기덕 자신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자신의 브리다의 확신을 얻은 김기덕이기에.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 고개~~~~로오오오오오오 나를 넘겨~~~~~~ 주~~~~ 오오오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한 많은'으로 시작하는 아리랑


깨달음을 얻은 후의 확신에 찬 김기덕은 예전의 김기덕이 아니다. 예술 자체의 김기덕으로 승화된 김기덕이다.  예술 그 자체로 승화된 김기덕 감독은 '우리들의 브리다'가 되었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아리랑은  경쾌하기까지 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아리랑' 영화 마지막 '아리랑' 노래가 나올 때 첫 장면

전체적으로 보면, 영화 '아리랑'은 존재론적 승화 과정을 완전한 아리랑 (우리가 아는 완전한 아리랑)을 완성하는 과정으로 보여주고, 이로써 우리 자신의 '브리다'의 확신을 통해 우리 자신 스스로가 이미 완성된 '마법사'임을 알려주는 영화이며, 아직 깨우치지 못 한 이들에게 김기덕 감독이 우리의 '브리다'의 존재가 되는 것을 자청하는 영화이다. 영화 '아리랑'에서 김기덕 감독이 읽었던 책 '브리다'에서 발췌한 부분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꽃 속에 사랑의 진정한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꽃을 선물해. 꽃을 소유하려는 자는 결국 그 아름다움이 시드는 것을 보게 될 거야. 하지만 들판에 핀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영원히 그 꽃과 함께하지. 꽃은 오후와 저녁노을과 젖은 흙냄새와 지평선 위의 구름의 한 부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People give flowers as presents because flowers contain the true meaning of Love. Anyone who tries to possess a flower will have to watch its beauty fading. But if you simply look at a flower in a field, you will keep it forever, because the flower is part of the evening and the sunset and the smell of damp earth and the clouds on the horizon.”


"숲이 내게 가르쳐주었어. 당신은 절대로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야 당신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은 내가 고독했던 시절에는 희망이었고, 의심했던 순간들에는 불안이었고, 믿을의 순간에는 확신이었어.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언젠가 내 소울메이트가 오리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태양 전승을 배우는데 전념할 수 있었어. 내 존재를 지탱시켜준 것을 당신 존재에 대한 확신뿐이었지."

“That is what the forest taught me. That you will never be mine, and that is why I will never lose you. You were my hope during my days of loneliness, my anxiety during moments of doubt, my certainty during moments of faith."

“Knowing that my Soul Mate would come one day, I devoted myself to learning the Tradition of the Sun. Knowing that you existed was my one reason for continuing to live.”

-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브리다』 중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 '아리랑' 에서 '브리다'책을 읽는 감독으로서 김기덕  & 우리들의 브리다 김기덕

https://www.youtube.com/watch?v=awigJTHa5TA 

<김기덕 감독 영화 리뷰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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