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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복주 박풀고갱 Jul 10. 2024

아픔의 날씨 : 죽을 때까지 추락하는

2024.07.01. 죽기 전까지는 킹받는 날씨

마지막 항암 주사를 맞은 날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은 부고를 전해 들었다. 지인의 여동생이 유방암 발병 후 간에 전이되어 그만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지인이 오십 세가 안 되었으니 그의 동생도 꽤 젊은 나이일 것이다. 약간 무리를 해서 장례식장을 찾았더랬다....


나는 총 4번 항암을 했는데 세 번째 항암까지는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과격한 항암 부작용은 전혀 없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증상은 100%라니까 나 역시 그랬다. 그 외엔 속이 좀 불편하고 입맛이 쓰고 손발톱이 까매지는 정도였다. 산책을 다녀오면 손발이 붓기도 했는데 손발을 높이 들고 흔들어주면 괜찮아졌다. 1시간에 한 번씩 깨는 불면증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니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마지막 항암 주사를 맞고 이제 힘든 건 다 끝난다 싶어서 기쁨에 부풀었다.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트렸다. ㅠㅠ 항암제의 독성이 쌓여서 그런지 다른 때보다 힘들었다. 기력이 없어서 걷는 것도 쉽지 않았고 음식 냄새를 맡는 게 고역이었다. 단백질 섭취가 중요한데 고기를 먹으면 입안에 피냄새가 도는 것 같았다. 뭘 먹어도 입맛이 써서 아이스크림 같은 달고 차가운 게 땡겼다. 

항암 주사는 통상 3주 주기로 맞는데 3주가 지나면 통상적으로 원기가 회복된다. 마지막 항암은 그렇지 않았다. 3주가 지나 항호르몬 치료를 시작했는데 발의 부종이 빠지지 않았다. 종아리에 피부 트러블까지 생겼다. 증상들이 눈에 바로 보이니까 암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더라. 항암 치료기간이 비교적 짧은 편인데도 그랬으니 나보다 항암 횟수가 많은 분들은 많이 힘드시겠다. 파이팅!


이제 힘든 치료는 다 끝난 줄 알았는데 항호르몬 치료도 만만치 않았다. 토할 것 같은 불쾌감과 손발 부종 등의 가벼운 부작용부터 탈모, 자궁내막암, 혈전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호르몬 양성 유방암은 유방암세포가 여성호르몬과 결합하여 암이 된다. 유방암세포에 호르몬 수용체가 있어서 여성호르몬을 먹고 암이 자라는 것이다. 나의 경우 타목시펜이라는 약제를 처방받았다. 타목시펜은 모양이 에스트로겐과 유사하게 생겨서 암세포가 이 약을 에스트로겐인 줄 알고 결합하니까 암이 자랄 수 없다고 한다. 마치 충치균이 자일리톨을 먹을 수 있는 당인줄 알고 달라붙었다가 소화에 실패하면서 나가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거 같다. 

완경이 되면 난소에서 더 이상 에스트로겐을 분비하지 않는다. 그럼 항호르몬 치료는 안 해도 되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다. 피하지방과 간과 근육에 있는 아로마타제라는 효소가 에스트로겐을 합성한다. 유방암세포는 적은 양의 에스트로겐으로도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정녕 피할 수 없는 치료인가? ㅠㅠ  


타목시펜의 심각한 부작용 중의 하나인 자궁내막암 예방을 위해 정기 검진을 할 협력병원을 에스병원에서 연결시켜 줬다. 집 근처의 제이 산부인과였다.

"자궁근종이 임신 4개월 정도의 태아 크기와 비슷해요."

제이 원장 선생님은 근종이 너무 커서 자궁 내막을 관찰할 수 없을 지경이니 자궁적출수술을 권하셨다. 그리고 난소에 물혹이 보이니 혈액으로 난소암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며칠 후 난소암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제이 산부인과에 전화를 했다. 결과에 문제가 없으면 음성이라고 바로 알려주는 게 통상적이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간호사 선생님은 원장 선생님이 콜백을 해서 설명해 줄 거라고 한다. 아놔... 불길하다.

몇 시간 뒤 제이 원장 선생님은 난소암 위험도 수치가 완경 전이라면 하이 리스크인데 완경 후라면 로우 리스크라서 마지막 월경 시기와 나이를 고려해 보면 모호하다고 했다. 그리고 협력병원인 에스병원 산부인과로 진료의뢰서를 써 주셨다. 에스병원 산부인과 진료는 8월 중순에 잡혔다. 


황정은 작가의 단편소설 [낙하하다]에는 하염없이 낙하하는 사람이 나온다. 

"어디든 충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삼년째 떨어지고 있으니 슬슬 어딘가 충돌해도 좋을 것이다. 부서지더라도 충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엔 뭘 할까 뭐라고 말할까 고마워요 정도면 친절할까."


젊음과 생명의 에너지는 포물선을 그리며 완만하게 떨어질 줄 알았는데, 평행선을 그리다가 수직 강하하는 게 틀림없다. 이대로 죽을 때까지 계속 떨어진다. 

뭔가 킹받는다. 바닥은 전혀 보이지 않고 이제 남은 생애 동안 추락과 추락과 추락뿐이라니....

또 다른 암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는 또다시 계속될지도 모를 치료과정이 벌써 지겨워진다.


마지막 항암주사를 맞고 샴페인을 정말 너무 빨리 터트린 거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유방외과, 종양내과와 함께 산부인과까지 모두 한 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왕 터트린 샴페인은 마셔야지. 일단 다음 산부인과 진료까지 계속 추락하면서도 삶을 즐기자. 항암주사 완주 기념으로 홋카이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래! 죽을 때까지는 살아있는 거니까.


항호르몬 치료 전에 또 한 명의 부고를 들었다. '십시일반 식사연대 밥묵차'의 대표 유희님이었다. https://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504828

투쟁 현장에서 밥차로 연대하며 활동해 왔던 분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분인데 그분의 막내아들의 부고문이 너무 좋아 옮겨본다. 내가 죽었을 때도 내 가족 중에 누가 이런 부고문을 써주면 좋겠다.


어머니의 막내아들입니다.

우리 어머니께서 

"밥은 하늘이다!!!"라고 하다하다 

이제는 위에 먼저 가신 분들과 

함께 투쟁하며 밥 연대를 하러 

하늘로 직접 소풍을 가십니다.

아마도 긴 소풍이 될 것 같습니다. �

그전에 "유희"의 이름으로 내어드리는 

마지막 밥 드시러 오세요. 

"밥 먹고 가! 먹어야 더 열심히 싸우지!"

밥 앞에선 누구나 당당하게 밥상을 받아야 한다며 

늘 웃으며 말씀하시곤 했다고 합니다.

오셔서 

"맛있게 드세요"

[訃告]

故 유희님께서 별세하셨기에

아래와 같이 부고를 전해 드립니다.


박풀고갱은 유희 님과 활동 영역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장례식에 다녀왔는데, 장례식장 입구에 이런 플랭카드가 걸려있었다고 한다.

"어서 와! 절하고 얼른 밥 먹어!"

죽는 날까지 고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너무 잘 보이는 장례식인 거 같다. 감동스럽다.


나는 뭐라고 쓰지?

"어서 와! 절은 됐으니까 술 한 잔 하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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