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길 8번지

이육사 생가

by 서휘

길이 주는 선물은 다양하다. 이날도 계획에 없던 길을 가다가 선물처럼 육사의 생가를 만났다. “포도길”이라고 적혀 있는 푯말은 대문만큼이나 낡아 있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나무대문은 허술해 보이지만 굳게 닫혔다. 육사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낡은 나무대문 하나 차이로 금 그 듯 나눠져 있다. 까치발을 하고 돌담 안에 있을 육사의 시간들을 넘봤다. 어린 육사를 기억하고 있을 흙과 돌들이 바람과 함께 마당에 오붓하다.

"이육사(본명 이원록). 독립운동가, 시인. 일제강점기에 저항 시인으로 의열단 활동을 하다 쇠약해진 몸으로 더 이상 활동이 어렵게 되자 총칼 대신 펜으로 싸"(인물사전)운 그의 언어들이 바람을 탄다. “청포도” 굵은 알알이 사이로 햇살이 익어 간다 그의 언어가 익고 시가 익어 시공간을 초월하여 내게 온다. 264.


- 2017년. 체칠리아정 <포도길 8번지>




​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 이육사. <청포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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