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자유와 낯선 허기. 1

어느 여름 한낮,

by 서휘

며칠을 일상을 떠나 있었다. ‘강릉-7번 국도-포항-경주’를 여행하면서 출발 이틀 전에 받은 100인선집 원고 교정 뭉치를 노트북과 함께 트렁크에 실으며 정작 교정보다는 ‘자전적 시론’에 대해 마치 큰 과제를 떠안은 양 묵직한 생각도 짐처럼 싣고 출발했다.

그간의 여행이 낯선 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일상의 나로부터 벗어남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떠난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나가 내게 왔으며 나는 나를 만나는 것에 인색하면 안 되었다. 그렇게 수시로 사방에서 내게 온 나는 결국 시의 말들이었고 그게 나였다.

등단 십 년 만에 첫 시집을 낸 후 두 번째로 출간하게 된 ‘현대시조 100 인선’ 집. 13년 차에 ‘자전적 시론’이란, 나를 자꾸 시의 언저리에서 주춤거리게 한다. 그 언저리를 여행 내내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고독하게 자유로운 나를 만났고 결국 삶도, 여행도, 시도, ‘고독한 자유’라고 나는 정의를 내렸다.

결국 나를 위대하게 하는 것은 고독이었으며 그 위를 걷는 나는 시간과 한 몸이 되어 언어 밖에서 서성이거나 또는 걷거나 하는 행위였음을 깨달았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낱알갱이가 되어 순수하고 밝은 언어들로 빛나기를 기다리며 변화하고 있었음을 나는 느꼈다.

나의 대부분의 시들은 여행에서 얻어진다. 짧든 길든 나의 발길 닿는 곳곳에서 시간 속 언어들이 말을 걸어오면 나는 그 언어들을 갈고닦느라 몇 날을 책상 앞에 웅크리고 있기도 한다. 그 시간은 내게 거룩하고 신성한 일이다.

시는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와서 신성하게 들어와 앉는다. 이것을 언어로 끌어내는 일 또한 내겐 거룩한 신전 앞에서의 의식과도 같은 행위이다.


어느 날 문득 시가 내게 버겁게 느껴져 시를 떠나려고 한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목숨이 없어짐을 느끼며 아득한 세계에 영혼이 흩어짐을 느꼈다. 내가 죽는구나...... 무서웠다. 시를 다시 붙들었다 아니 시가 나를 붙들었다. 나는 깨달았다.


“시를 좇으려 하면 시는 멀게 있고 / 시를 떠나려 하니 오히려 시가 나를 찾았다. / 그래서 나는 시를 기다린다는 핑계로 철저히 게을러지기도 했던 것 같다. / 게으름은 시와 내가 한 몸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 그 게으름 속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시의 자비는 어김없이 찾아와 주었다. / 그때 나는 내가 시를 좇는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데리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온유 <무릎>의 ‘시인의 말’ 중에서)


그렇게 시와 리듬을 타며 살아야 내 목숨이 유지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날 나는 나를 내려놓고 한없이 게을러졌다. 게으름은 비워지는 과정이다. 비움은 다시 채워지는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에 이 순간이 멈추면 리듬이 깨지고 리듬이 깨지면 게으름을 피울 수 없고 게으름을 피울 수 없으면 비워내는 것도 내겐 버거워진다. 그래서 채움도 괴롭다. 내가 괴롭지 않게 시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어떤 언어들이 내게 오기를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한없이 게을러지거나 비워지거나 하는 것이다.

낡고 긴 탁자 위에 늘어진 시간이


지루함을 못 견디고 스르르르 흘러내려

엎드린 내 몸뚱이를 토굴처럼 덮는다

방 안엔 여름 한낮, 관절이 풀어지고

단단한 근육마저 헤살대는 낮 빛으로

나른한 강을 건넌다 정오가 엷어진다

창밖의 아이들 재잘대는 소리들이

희미한 안갯속으로 아득하게 사라질 쯤

하루치 뙤약볕들이 중력을 잃고 헤맸다

설익은 마음 틈새로 홍해가 흘러들고


육체 떠난 내 영혼이 돌아올 즈음엔

하늘뜰 먼 길 속으로 내 사랑을 본 듯했다


- 「어느 여름 한낮,」 전문

게을러지기. J.

-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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