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늘 늦다. 여행길에 내 발에 스쳤을 손톱만 한 들꽃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나서야 정신이 든다.
K노시인의 시조를 읽던 날, “돌멩이의 투덜거림”에 귀 기울이는 시인을 만났다. ‘옳거니!’ 했다. ‘그래, 시인은 흙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의 투덜거림”에도 반응을 해야 하는 것이지. 그것이 시인의 도리이지.’ 그런 생각에서 계획된 행위는 아니었는데 작년 한 때 나는 많이 아팠다. 시앓이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아픔을 견뎌내기 위해 혼자 여행을 하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차를 마셨다. 그때 진정한 돌멩이의 투덜거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시인의 십자가인 것이다.
들꽃 감상. J.
그러므로 나는 시가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쉽고 깊은 시를 쓰고 싶다. “시인이 시를 쓰고 독자들이 그것을 다시 살려내는 시적 행위의 의미”<활과 리라>(옥타비오 파스)를 나는 맛보고 싶다. 내가 써 나가는 ‘낯선 세계’가 독자들을 향해 겁 없이 걸어 들어갔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의 가장 깊은 곳까지 찾아 들어간 사람은 낯선 존재에 대한 성찰을 가져올 것이다. 그때서야 진정 참 되게 자신을 볼 수 있으며, 자신을 걸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