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자유와 낯선 허기. 4

봄 편지

by 서휘

어느 날 문득 현실이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오히려 낯선 곳이 익숙한 때가 있다. 여행지에서 그렇다. 아마 현실에서는 나를 잃어버리고 살다가 오지에 있는 나를 여행지에서 만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현실에서의 존재를 낯선 곳에서 느끼곤 한다. 시간과 언어 밖으로 나가서 결국 시간과 언어를 안고 들어온다.



허락도 없이 그대에게 길 하나 엽니다

꼬물꼬물 몸 비틀며 내미는 고개 위로

선잠 깬 연둣빛 바람 미명 사이 붑니다

아침 귀는 환해져서 새벽에 뒹굴다가

서늘한 틈으로 흘러드는 마음 하나에

화들짝 놀란 새처럼 눈부심을 맞이합니다


다부진 생각들이 자라나는 고요에


눈 감으면 길은 더 가까이에 와 있고

하얗게 흐드러진 웃음, 그 끝에 그대 있습니다


영혼이 씻겨지는 그 착한 시간에


축복처럼 햇살 알갱이들 와르르 쏟아져


몸 다 연 그리움들이 서둘러 길을 나섭니다


- 정온유.「봄 편지」 전문


무작정 떠난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새벽은 참으로 어리고 여렸다. 그렇다. 하루의 앞자락은 어리다. 즉, 새벽은 여려서 자그마한 기척에서 ‘화들짝’ 놀란다. 그런 어린 새벽을 허락도 없이 길을 열면서 ‘영혼이 씻겨지는 그 착한 시간’을 ‘축복처럼’ 맞이했었다. 그럼에도 나를 맞이하느라 ‘몸 다 연 그리움들이 서둘러 길을 나’ 서며 나의 낯선 허기를 채워 갔었다.

봄편지.J.

모든 것이 따로 인 것 같지만 결국 함께임을 또 낯선 공간에 흐르는 시간을 보며 깨닫는다. 겨울과 봄이 포개지는 계절의 틈, 밤과 새벽이 겹쳐지며 어슷하게 물드는 미명의 빛이 그렇다. 뿐만이랴, 우리는 날마다 죽음을 먹고 산다. 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살면서 또 매일 죽는다. 생과 사가 동시에 일어나는 행위에서 죽음은 거울 앞에서 바라보는 나 자신과도 같다. 죽음은 저 멀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나와 함께 있다.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 끊임없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낯선 것을 만나는 것은 긍정적이다.”<활과 리라>(옥타비오 파스) 그러니 나의 “낯선 허기”는 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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