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자유와 낯선 허기. 2

거식증이 준 선물

by 서휘


게을러진다는 것은 이렇듯 찬찬히 내 속에서 부는 바람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느... 리... 게... 아주 천... 천... 히. 그러다 보면 아득한 저 너머의 세계에서 건너오는 언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 것들이 나를 만들어 간다. 내 언어에 리듬을 넣고 구句들을 채워 간다.

그렇게 넌,

혈관을 타고

내게

들어왔고

준비 없이 맞은

가을처럼

네 사랑이

그랬다 훅-!


내 몸속,

구석구석에

오랫동안

머문 너.

세포가 되고

혈액이

되는 동안

나는,


생각을 낳고

언어를 낳고

네 사랑을

낳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아픈 눈이

나을 것이다.

- 「링거르_거식증 5」 전문


작년 8월, 정신을 비우지 못하고 바쁘게 여름을 보낸 탓인지 내게 묵직한 손님이 찾아왔다. 거식증. 내 몸은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나섰고 오직 물과 커피만 받아들였다. 그렇게 내 몸이 나를 향해 반란을 일으켰고 끝내는 10kg 가까이 빠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아프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 생리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신기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지은 죄들이 이렇듯 눈에 보이게 쏟아져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느 해 강화도에서. J.

- 2017년. 체칠리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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