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립니다 오래도록 그대를 기다립니다 잠도 자지 않고 기다립니다 기다린다는 것조차도 잊고 기다립니다
빗금으로 온통 낡아버린 골목길에 하얀 발자국을 질서 없이 늘어놓습니다 심장은 나를 고립시켜놓고 멀어져갑니다 골목길에 마주선 벽들이 뒤로 물러섭니다 먼 시간으로 돌아가는 비그림자 발자국이 더 분주해집니다 기다림은 벼랑 끝에 와 있습니다 주변이 낯설어 집니다 마치 지독한 몸살을 앓고 난 다음 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처럼 어젯밤 밤새 달빛을 품었던 감나무 겨드랑이의 움직임이 낯설고, 골목 귀퉁이에 멋쩍게 서 있는 전봇대가 낯섭니다.
행길로 이어진 젖은 골목길이, 4차선 도로에서 시뮬레이션처럼 움직이는 수많은 군중들이, 말발굽처럼 우르르 달아나는 고요가,
낯.섭.니.다.
묵음의 세계는 나를 감싸고 돕니다 빗물이 점점 차가와 집니다 기다림은 이제 소멸 되고 나는'나'자신 밖으로 나와서 서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