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바삭 거리는 수의(壽衣)

by Agnes

어느 날엔가, 어머님이 나와 남편을 안방으로 들어오라 하더니 그것을 보여 주셨다. 수의(壽衣). 그것은 감색이었는데, 빛바랜 감색이었다. 그것이 어머니의 장롱 한켠을 차지한 지 꽤 오래됐다는 의미다. 언젠가 나이 많은 시골 노인들을 대상으로 본인이 죽으면 사용해야 할 수의, 자식들이 입어야 할 상복, 그 밖의 장례물품 등을 판매하는 방문 판매가 기승이라는 뉴스를 본 적 있는데, 어머니도 그즈음 사 두신 것 같았다.


아마 파는 사람들은 그 레퍼토리를 팔았겠지.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시면 수의도 상복도 장례물품도 사려면 다 돈인데, 그건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 텐데, 깔끔하게 어머니 아버지 손으로 마련해 놓으신다면 얼마나 마음이 놓이시겠냐고, 그런 레퍼토리를 들은 노인들은 주저 없이 지갑을 열었겠지.


어머니께서 나에게 그걸 보여주신 것이 어머니 나이 80 초반 때였다. 도대체 몇 살의 나이에 이런 것들을 사 두신 것인지, 수의도 상복도 모두 빛이 바래다 못해 천이 삭으려 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우리가 내려갈 때마다 그 박스를 열어 보여주고 또 보여주고, 걱정 말라고 내가 다 준비해 두었으니 아무 걱정 말라고 그러셨는데, 어느 날 그 박스가 홀연 사라졌다. 시누이 중 한 분이 엄마 이거 오래돼서 다 좀 먹어 버렸다고, 그러길래 뭘 그리 미리 일찍 사 두셨냐고, 괜히 돈 버렸다고, 그런 잔소리와 함께 버려 버리신 거다. 아마도 '좀이 슬었다'는 말이 없었더라면, 그냥 두라고 또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을 텐데. 쓸 수 없게 되었다니 버리게 두신 것 같다. 홀어머니의 청승을 보며, 수의를 보며, 나이 많은 딸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계산해 보면 어머니 나이 환갑 즈음에 그 물품들을 사 두셨고, 그건 무려 30년 전이다. 30년 전이라면 60 초반의 일인데, 그렇게 젊은 나이부터 어머니는 본인의 죽음을 준비한 셈이다. 어머니는 어떤 노년을 보내신 걸까.


처음 그 바삭바삭 거리는 수의를 보았을 때, 나는 아직 젊어 부모의 죽음은 딴 세상 일로 생각하는 나이였다. 와닿지 않았고, 그러므로 어머니의 행동에 깜짝 놀라지도 않았다. 그냥 옛날 분들이 하는 많은 고리타분한 행동 중 하나라고 여겼는지, 그 이후 그 일이 다시 기억나지도 않았다.


언젠가 시누이 중 한 분이 나와 형님에게, 상조회에 가입해 두면 어떻겠냐고, 보험 들 듯이 한 달에 얼마씩 불입하면 나중에 큰일 생겼을 때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 본인도 남편이 형제가 많지 않아 기회가 될 때 가입해 두었는데, 가입해 두길 잘한 것 같다고 하면서. 그때 나는 기분이 좀 상했다. 남편과 나는 30대 청춘이었고, 내 부모의 나이와 관계없이 부모의 죽음은 나에게 아주 먼 일이었기에 그런 말을 하는 시누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부모의 죽음을 준비하라니, 아직 (내가 보기엔) 창창한 우리 어머니를 두고, 다른 것도 아니고 상 치를 것을 대비해 보험을 들라니, 뭔가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제안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냥, 얼마나 부모의 죽음을 더 가깝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인 듯하다. 시누이와 나는 15년 이상 차이가 난다. 어머니는 위로 딸을 다섯 낳고 마지막에 아들을 둘 낳으셨다. 누나들이 보기에 남동생들은 아직 어리고, 철이 없고, 경제적으로 탄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말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신 것뿐인데. 아직 어렸던 나는 상조회에 가입하는 것이 어머니를 배반하는 일이라 느꼈다. 피식, 웃음이 날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또한 뭐 그렇게까지 생각이 뻗어나갈 일인가 싶은데. 아무튼 나는 여러모로 많이 젊었나 보다. 그래서 그랬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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