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어머니의 첫 수술

by Agnes

어머니의 어깨가 탈구됐다. 밤에 화장실 다녀오시는 길에 철퍼덕, 가볍게, 엉덩 방아를 찧으면서, 오른쪽 팔로 바닥을 짚었을 뿐인데 어깨가 빠져 버렸다. 응급실에서 의사 선생님이 끼워 보려고 수 차례 수 십분 동안 시도해 보았지만, 실패했다. 어깨를 끼우는 것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시술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경우 근처 관절과 연골이 닳고 닳아 끼워도 빠지고 끼워도 빠지길 반복한다고 했다. 아이구 아이구, 아파유. 나좀 살려줘유. 응급실 커튼 너머로 어머니의 처량한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마른 피부와 눈에 고인 눈물을 보면서, 정말 50,000가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어머니는 서울 큰 병원으로 옮겨졌고, 일주일 후 인공 관절을 넣어 어깨를 끼우는 큰 수술을 하셨다. 오른쪽 어깨기 때문에 왼손으로 숟가락질만 가능했고 처음에는 반찬만 올려 드렸지만 곧 어머니는 아기가 되어 기운이 없으니 떠 먹여 달라셨다. 어느 날 방문한 어머니 집 거실 찻상 위에는 진통제가 사탕처럼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마약성'이라고 쓰여 있었다. 어머니를 만난 이래 최고로 많이 아프시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머니께서 내가 상상 못 할 통증에 시달리고 계시다는 게 그제사 실감이 났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밥도 잘 잡숫고 간식도 잘 잡수니까, 강단이 있으시니까, 곧 털고 일어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응급실과 병실에서 추석 명절을 보냈고, 그러는 사이 어느덧 3주가 흘렀다. 이게 2020년 10월의 이야기다.


인공 관절을 넣고 어깨를 끼우는 수술을 한 어머니는,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하셨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고령이라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근력도 좋으시고 그래서 경과도 좋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통원 치료를 하라고 했다. 혈당이 종종 떨어져서 때때로 포도당을 맞아야 하고 산소포화도가 종종 떨어져서 산소 흡입을 해야 하지만 사실 병원 입장에서는 중병이 아니니까 퇴원하라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싶었다. 그리고 가족들은 병원의 그러한 판단에 조금은 위로를 받았고 안도했다. 우리 어머니는 연세에 비하면 건강하신 거구나. 병원에서 퇴원하라고 하는 것 보면 괜찮은 걸 거야.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했다. 실제로 어머니가 머물렀던 5인실에서 부축을 받고라도 걸어서 화장실을 가는 건 우리 어머니뿐이었다.


그런데 통원 치료를 하러 두 번째 방문한 날 어머니께서, 시누이와 의사 앞에서 이런 말을 하셨다고 한다.


"독약 좀 줘요"
"구찮고 힘들어서, 살기 싫어"
"나만 말 안 하면 비밀 되잖어유"


의사는 시누이를 불러 신경정신과 협진을 제안했고, 시누이는 어머니와 단 둘이 되자마자 "의사와 딸을 범죄자 만들고 싶으면 다시 그런 소리를 해라, 오늘부터 밥을 먹지 않으면 금방 죽을 수 있으니 약 달라 말고 밥을 먹지 말아라" 라고.... 했다고 한다. 시누이는 직업이 요양보호사이기 때문에 환자를 케어할 줄 아시는 분이다. 신파에 빠지지 않고 시간이 답인 것에는 연연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다. 어머니께서 이번 상실을 받아들이시는 데 3개월쯤 소요될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하셨다.


그러면서 누군들 매일 살고 싶기만 한 사람이 있겠느냐며, 몸이 저 지경이 되었는데 하루는 살고 프고 하루는 그냥저냥 그렇고 하루는 살기 싫지 않겠느냐고, 오히려 젊은 자식이어서 본인의 마음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막내 동생 부부를 위로해 주셨다.


퇴근길에 운전대를 잡을 때 어머님에게 가 볼까, 점심에 일이 끝나고 점심을 먹을 때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 볼까, 당분간 자주 가서 뵐까 싶다가도, 이 모든 나의 염려와 마음들이 과연 어머니에게 위로가 되기는 할까, 라는 생각을 반복하는 요즈음이다.


내 어머니 88세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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