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생 어머니의 노트

by Agnes

내 시어머니는 올해로 여든둘이시다.

30대 중반인 내가 어머니와 나란히 길을 걸으면, 누구나 우리를 할머니와 손녀 사이로 본다. 할머니뻘인 어머니가 어렵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나를 손녀딸처럼 귀여워만 해 주신다.


우리의 대화는 항상 짧다.

"밥 먹었냐?" "네, 방금 먹었어요." "애비 들어왔냐?" "예, 들어왔어요." "끊는다. 에미야 사랑한다." "저두요, 어머니." 대화가 짧을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와 핑계가 있지만, 결정적으로 우리는 서로의 말을 잘 듣지 못한다. 어머니께서는 귀가 어두워지셔서, 30대 서울 며느리는 어머니의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서.

그래도 우리는 그저 말하고 대꾸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어머니는 글을 모르신다.

본인 이름도, 숫자 '하나', '둘', '셋'도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신다. 그런데 재작년 여름엔가 어머니댁에 갔다가 공책을 하나 발견했다. 선풍기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낡은 공책. 열어 보니 조그만 동그라미가 줄을 따라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몇 십장 째, 같은 크기로.


"이게 뭐예요?" 묻자, 수줍게 웃으며 하시는 말씀. "나 일한 날 수다." 어머니는 아직도 감자를 캐고 묘목을 심는 소일을 하러 다니신다. 일당은 한 달에 한 번 모아 받는다. 그런데 일당이 잘 계산되는지 걱정스러운 어머니께서 궁리 끝에 일자를 기록할 방법을 찾으신 거다.

이렇게나 현명한 어머니. 나와 남편은 빼곡한 어머니의 흔적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애틋해서 눈물이 차올랐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지혜. 학교에서 얻은 배움과 또 다른 지혜를 따르다 보면, 인생의 질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80이 넘은 어머니께서 그걸 몸소 가르쳐 주신다.

나는 이때부터, 어머니를 좋아하게 됐다.


어머니 나이 83세의 일

(이 이야기는 2014년 9월호 샘터에 실린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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