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gnes Dec 29. 2023

프롤로그

"도현아!"라고 불러야 하는데 "여러분!" 한다.

"엄마가~"라고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데 "선생님이~"라고 시작한다.

나는 선생님이다.

한국어 선생님이고, 무려 네이티브 스피커다. 한국어 원어민 선생님.


1급을 가르칠 때의 나는, 1 형식 문장을 사랑한다. 나는 1급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해야 한다. 말이 짧아지고 목소리가 커지고 표정이 풍부해지고 손짓이 많아진다.

초급 한국어를 가르쳐야 하니까. 문제는, 일상생활에 돌아와서도 모드 전환이 잘 안된다는 거다. 매일 아침 9시부터 1시까지는 1급 한국어 선생님이었다가, 1시 1분부터 그냥 한국인이 되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모든 선생님들이 그렇다. 초급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모든 말을 손짓과 함께 하고 단문으로 말한다. 어떨 때는 어린이집 선생님인가, 소리쳐 한 말을 또 하는 걸 보면 우리들은 1학년인가, 우리는 언어 선생님인 우리의 정체성 때문에 혼란스럽다. 

우리는 이걸, 직업병이라 부른다.


2급을 가르칠 때의 나는, 드디어 3 형식과 4 형식 심지어 5 형식 문장을 말해도 된다. 나의 의사소통 욕구에도 숨통이 트인다. 이제 기초 수준의 웬만한 단어는 다 가르쳤으니, 하려고만 하면 뭐든 한국어로 말할 수 있다. 2급 학생들은 이제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지 않고 '화장실 가도 돼요?'라고 세련되게 말할 수 있다. 기억 니은 디귿부터 가르친 학생이, "선생님 주말에 뭐 하셨어요?"라고 물을 때, 나는 전율을 느낀다.


3급과 4급을 가르칠 때의 나는, 수다스러워진다. 1,2급을 가르칠 때의 나는, 한 시간 내내 쉴 새 없이 말하지만 사람을 만나면 말이 하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소통 본능이 해소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3급쯤 되면 내 마음을 말할 수 있다. 분명, "어제 뭐 했어요?"와 "어제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빴어요?"는 다르니까.


고급 학생들을 가르칠 때의 나는, 내가 좀 더 박식했으면 그리고 언변이 좀 더 세련됐으면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한국인의 세계다. 그들은 선생님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를 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공부'와 '연구'가 다르듯이, 그들은 내 시각을 원하고 내 표현 방식을 원하고 내 사고방식을 내가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보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급 학생들을 가르칠 때의 나는, 종종 한국어 선생님으로서의 내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3급부터는 문법도 단어도 표현도 다소 복잡해진다. 이때부터의 나는, 하루 중에 많은 시간 동안 내가 가르치는 문법과 단어에 대해 생각한다. 물론 교과서와 워크북과 연습지에도 정말 많은 예문이 있지만, 내가 가르친 문법과 어휘를 실제의 내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들여다보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오늘 가르친 문장이 내 생활 속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걸 발견하면, 나는 학생용 인스타에 스토리를 올린다. 얼마 전에 만든 학생 공개용 인스타는, 도움이 많이 된다. 내 생각을 바로 활자화해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도 그렇고, 학생들이 배운 한국어로 SNS에 어떤 문장을 올리는지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으면 을수록'이라는 문법을 가르친 날, 집에 와서 나는 내 학생용 인스타에 어떤 사진과 어떤 문장을 올릴까 한참 고민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내 아빠의 사진을 올리고 이렇게 글을 썼다.


"나이 드실수록 멋있어지는 우리 아빠, 사랑해요."


'얌체같다'라는 단어를 가르친 날, 나는 집에 오는 길에 운전을 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주차하자마자 운전대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올렸다.


"출퇴근 시간에 운전을 하다 보면, 얌체같은 운전자를 많이 본다......."


학생들은 '얌체같다'라는 단어를 내가 찰떡같이 사용한 것에는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그 문장에 모두 깔깔대는 반응을 보였다. 세상 모범 단정한 선생님이 이런 글을 올리다니, 웃겼나 보다.


한국어 선생님이 되고 나서, 나는 모든 순간 한국어 선생님이다.

내가 이 말을 이렇게 쓰는 구나. 한국사람들은 이렇구나. 이 말을 내가 만약 학생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나는 한국어로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 이 외국어는 이럴 때 이렇게 문장을 조합하는구나. 등등.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아이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한국어 선생님이니까 그렇지." "지금 한국어 선생님이라고 티 내는 거야?"


나는, 한국어 선생님 유니버스에 살고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