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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r 06. 2024

책은 어떡하지?

내 인생에 책이란

이사를 알아보는 중이다. 

오랜만에 부동산에 집을 내놓고, 수시로 인터넷에 올라온 매물을 살피고, 부동산에서 연락이 오면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고, 해는 잘 드는지 구조는 어떤지 요것 저것 재보고. 그러고 있다.


이사하기로 결정했을 때, 나도 남편도 제일 먼저 이 말을 했다.

책은 어떡하지?


남편의 마음은 '이 많은 책을 어떻게 옮기지?' 였겠지만,

내 마음은 '이 많은 책 중 어떤 걸 버리고 어떤 걸 가져가지? 그걸 어떻게 고르지?'였다.


우리 집은 나름 미니멀이다. 일단 가구가 별로 없고, 큰 가구도 없다. 거실 한복판을 차지하는 큰 소파, 없다. 현관문을 열면 떡 하니 버티고 있는 큰 TV, 없다. 장롱 크기의 큰 양문형 냉장고, 우리 집엔 없다. 대리석 식탁도, 없다. 퀸 사이즈 침대도, 없다. 누울 수 없는 카페형 소파와 인테리어 하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작은 TV, 17년 전 결혼할 때 혼수로 해 온 아담한 냉장고, 남편이 만든 둥글고 작은 식탁, 그런 식이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책장이 있다. 5년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할 때 보니, 이삿짐센터 직원들께서 제일 힘들어하는 게 책이었다. 박스 하나를 옮길 때마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오시는 듯해서, 해가 질 무렵 나머지 박스는 그냥 놓고 가시라고 한 기억이 난다. 우리가 보기에도 그건 끝을 알 수 없는 화수분 같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많은 책을 가져갈 수는 없으니, 5년 만에 책 정리에 돌입했다. 

나는 항상 '나중에 다시 읽고 싶은가'를 기준으로 책을 정리한다. 언젠가 나중에 다시 읽고 싶은 책은 서가로 가고,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책은 알라딘에 팔고, 알라딘에서 재고 충분의 이유로 받지 않는 책은 아파트 재활용함으로 간다. 알라딘에 중고 판매 신청을 한 책은, 상자에 담아 집 앞에 내놓으면 택배사에서 반품 택배로 수거해 간다. 나는 주기적으로 이 과정을 거치는데, 때마다 택배기사님께 너무 죄송하다. 가끔은 '무거운 짐을 반복해서 반품 택배로 보내서 죄송해요'라는 메시지를 붙이고 음료수를 옆에 놓기도 하고, 가끔은 남편을 시켜 편의점 반품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 

반품 택배를 이용하기에 책은 너무나 무거워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에도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새로운 생각을 새롭게 하게 됐다. 

과연 내 책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나는 요즘 매일매일 '나무야 미안해'를 외치며 내 첫 책의 초판 1쇄를 어떻게 하면 한 권이라도 더 팔 수 있을까 고심하는데, 팔고 난 이후까지는 생각을 못 했다. 일단 어느 고객이 내 책을 샀다고 하더라도, 그럼 내 책의 운명은 거기서 끝인가? 아니었던 거다. 내 책은 어느 집 서가에 수년간 고요히 꽂혀 있을 수도, 가끔 책 주인의 손에 다시 닿을 수도, 한 번 읽힌 후 중고 시장으로 갈 수도, 중고 시장에도 가지 못해 재활용함으로 가서 다시 종이가 되는 운명을 겪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그렇다면 '나무야 미안해'라기보다는 '내 첫 책아 미안해'인 것인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언제고 현실화될 수 있는 내 인생의 이슈 중 하나가 있는데, 남편의 해외 주재원 발령이다. 우리는 요즘 그 가능성을 자주 타진 중인데, 그때도 나의 마음의 짐은 책이었다.  


책은 어떡하지?


내가 해외에 간다면, 이 많은 내 책들은 어떻게 하지? 이 많은 책들은 내가 늘 하던 그 프로세스를 거치면 어찌어찌 정리가 되겠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2년은 더 넘게 걸릴 내 해외 생활 중 나의 독서 생활은 어떻게 되지? 어이없게도 나는, 지금 있는 내 책들을 가져갈 고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해외에 있는 기간 신간 구입은 어떻게 하지?로 뻗어 나가 버렸다. 작은 출판사나 독립 책방의 책들은 이북으로 나오는 기간도 더디고 아예 안 나올 수도 있고, 해외 온라인 배송은 대형 서점들만 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들춰보지도 못하고 책을 사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나의 큰 즐거움 중 하나가 작은 동네 책방들을 다니며 들춰보고 책방지기님들의 북 컬렉션을 따라 책을 추천받는 것인데, 그렇담 그런 내 재미는 없어진다는 것인가!


아무래도 나의 해외 생활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은 느낌이다.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끝나는 내 인생인데, 책은 어떡하지?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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