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는데 80대 중반 할머니가 나온다. 양 어깨는 불쑥 올라갔고 얼굴 피부는 버석버석하다. 몸통은 굵고 팔다리는 가늘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가 떠오른다.
노인에게서 보이는 많은 신체 변화 중 유독 팔뚝과 어깨에서, 나는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많은 것을 대체했던 어머니의 두 팔과 그러느라 망가져버렸던 어깨. 굵어진 관절과 뼈대만 남고 근육과 살이 다 빠져버린 팔과 손. 어머니는 그 팔을 휘져으며 나에게 어서 가라 말했고, 두 팔을 벌리며 이리 와 안기라고 말했고, 손사래를 치며 싫다고 했었다. 내가 본 어머니는 내내 앉아 계셨다. 함께 어딘가를 걸은 기억보다도, 어머니가 걸어오는 것 또는 서서 움직이는 것을 본 기억보다도 앉아 계신 것을 본 기억이 개중 제일 많다. 몸이 불편하셨기에 그랬던 것이지만 내 기억에 어머니는 항상 거기, 어머니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자리는 내 마음속에서도 실제 물리적 공간에서도 늘 한결같았다.
모처럼 날이 좋아 천변을 달리는데, 휠체어에 탄 아주 나이 많은 노인과 휠체어를 밀어주는 초로의 노인이 보인다. 아마도 딸과 엄마 또는 며느리와 엄마 사이일 것이다. 작은 체구의 할머니는 봄볕이 좋은데도 마스크에 모자에 재킷에 무릎담요까지, 겹겹이 쓰고 입고 덮었다. 아마도 간혹 부는 찬바람이 걱정이 되어 자식이 이것저것 챙긴 것 같았다.
시골길을 운전하는데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뒷짐을 지고 조용조용 걷는 것이 보인다. 그 모양이 너무 느리고 조용해서 발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것 같다. 어디를 가는지 모르겠지만 그 옆을 차로 스쳐 지나가기가 영 아쉽고 미안하기만 했다.
이번엔 영화를 보는데 영화 속 주인공의 직업이 요양보호사다. 요양병원에 계신 노인들은 밥을 먹고 색칠 공부를 하고 봄볕을 쬐고 목욕을 한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고 모두 같은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다. 요양보호사들의 일상이 영상의 주인이고 노인들은 배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비슷비슷하고 조용하고 안온한 듯 지루한 삶만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서 어머니가 보인다. 날이 좋아도 날이 흐려도, 운수가 좋은 날에도 운수가 나쁜 날에도,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매일은 아니다. 가끔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생각이 난다.
오늘도 천변을 달리는데, 멀리 산책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인다. 그런데 달리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이제 돌아가신 내 시어머니뿐 아니라, 그들에게서 내 엄마와 아빠가 보이기 시작한다. 내 부모까지도, 그런 나이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