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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앞에서 한 번 울어 봤더라면

by Agnes

문득 어떤 생각이 났다. 나는 어머니 앞에서 한 번도 울어보지 못했다는 사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살면서 울 일 한 번 없이 살았던 것도 아닌데, 어머니 앞에서는 한 번도 울어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지척에서 살지 않았고 그리 빈번히 만나면서 살지 않아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도 아니라면, 성인이 된 후로 슬플 때 부모를 찾아 우는 것을 상상해 본 적 없는 내 기질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요즘 들어 슬플 때 어머니 생각이 자주 난다. 내가 어머니 손을 잡고 운다면, 어머니가 눈물을 닦아 주면서 도현 엄마 왜 우냐고 다정하게 물어 줄 것만 같다. 어머니라면 그러셨을 것 같다. 늘 그랬던 것처럼 본인이 나에게 다가오지는 못하고 앉은 채로 손을 벌려 나를 불러 앉혀, 왜 그러냐고 뭐가 힘드냐고 무슨 일이 있냐고 등을 다독여 주었을 것 같다.


언젠가 내가 작은 수술을 하고 어머니를 처음 만나러 갔을 때, 어머니는 내 배를 자꾸 만지셨다. 만지면서 여기 어디를 수술했냐고, 이젠 괜찮냐고 재차 물으시면서 아팠겠다고 힘들었겠다고 하셨다. 배에 손을 얹으며 물으시다니, 어머니는 정말 진심을 보이는 방법을 잘 아셨다.


고요한 주말 밤, 거실에 있는데 위층에서 아이들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보통 때보다 길게 뛰는 것을 보니 아마 주말이라고 친구 또는 친척들이 모여서 노나 보다. 아마도 윗집에는 부모는 아직 젊은 노인이고 아이들은 세상 신나게 뛰어노는 나이인 젊은 부부가 살고 있겠지. 부럽다. 부모가 살아계시고 아이가 젊은 누군가 모두가.


살아 계실 때 함께 좋은 곳에 여행 가 보지 못한 것이, 좋은 집에 살게 이사시켜드리지 못한 것이, 그런 것이 후회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손을 잡고 울어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다니. 나는 세상에서 없어진 어머니의 인생이 안타까운 것이 아니다. 어이없게도 나는, 내가 응석 부릴 부모가 없어진 것이 제일 안타깝다.


가정의 달이어서 그런가. 카네이션이 곳곳에서 보여서 그런가. 아니 그냥 이런 건 당연한 건가.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난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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