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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seen Universe Nov 25. 2019

2화. 떠남으로 남긴 이에게 쓰는 편지

축제기획가로의 삶으로 내딛던 그 시작에서

2013년 10월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이다. 아빠가 떠난 지 벌써 그리 되었다는 사실이 나는 아직도 생경하다. 할머니는 먼저 당신을 기다리고 있던 아빠를 만나 당황하셨을까, 슬퍼하셨을까? 우리 가족은 할머니께 만큼은 그녀의 생가에서 화재로 떠나버린 아빠를 비밀에 부쳐 두기로 했다. 할머니가 평생 살았던 생가가 전소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과 그래서 넷째 아들이 자기보다 생을 먼저 떠나버렸다는 것을 차마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할머니에게 아빠는 바빠서 연락도 못하고, 찾아오지도 못하는 아들이었다. 할머니가 종종 ‘니 아비는 잘 있냐’ 물을 때에도 네,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나도 그러길 바랬으니까.


6년 전. 아빠에게 큰일이 생긴 것 같다는 친척 민수의 전화를 받던 그 시간, 나는 마감회의를 하고 있었다. 유통업계 중에서도 힘들고 열악하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직원들은 매일 밤 열 시 반까지 매출이 마감되기를 기다렸고 매출이 경영계획 대비 미치지 못하면 어김없이 마감회의를 해야 했다.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이 마감회의를 하는 밤이었다. 무슨 말인지,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 체 그저 집에 들어가면 몇 시간 잘 수 있지 세어보던 나날 중에 하루. 이상하게 처음 보는 전화번호로 자꾸 연락이 왔고, 그것은 사촌 민수의 바뀐 전화번호였으며 주변의 경황없고 산만한 소리와 함께 아빠의 소식을 전했다. 집이 다 불타버렸다, 아빠는 주무시고 계셨는데 병원으로 이송 중이야, 상황이 안 좋으신 것 같다 빛나야.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건 기억도 나질 않았고, 통화는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잠시 떠올리다가 그마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또 그다음 날 어떻게 할머니 댁까지 내려갔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내려가서 상복을 입었고 손님을 맞이했고 인생 처음 있는 일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장례식장에 아빠의 운구는 없었다. 가족의 동의와 관계없이 사고사는 국립과학수사대에 부검을 거쳐야 한다고 했고, 그곳에서 아빠의 죽음이 혹여 다른 힘이 개입되지는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그 힘에는 자기 자신의 힘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아빠의 죽음이 스스로 정의한 죽음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주 요상하고 비통한 것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빠의 죽음은 단순 화재로 인한 사고사로 결론지어졌다.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고 따뜻해진 아빠의 뼈를 무릎에 올려 서울로 올라와 아빠와 오랜 시간을 지냈던 동네 인근의 절에 아빠를 모셨다. 작은 항아리에 담긴 아빠의 잔재는 내 품 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았고, 서울에 올라올 때까지 무릎에 올려 두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가벼워졌다. 



모두의 끝은 그토록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아빠는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생을 마감했다. 모든 것은 불씨 속에 타올라 훨훨 날아가 버렸다.  아빠의 형제들은 불타 이내 스러져버린 집을 말끔히 정리한 뒤 터를 다듬어 새 집을 올렸다. 아빠는 그렇게 언제 이 세상에 오기나 했었냐는 듯이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났다. 



인생은 덧없고, 짧고, 다 죽는 것이라는 사실을 만난 건 그러니까 스물넷의 일이다. 달가워하는 형제도, 친구도 몇 없던 아빠를 좋아하고 따르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막내딸과의 영원한 이별이 아빠는 괜찮았을까. 나는 아마도 오래, 오래, 짓무른 상처로 남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빠가 영원한 이별로써 내 인생에 이토록 많은 메시지를 남길 것이라고는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가진 것 하나 없던 그가 영원히 떠남으로 남겨준 무수한 별들에 나는 고맙다고 해야 할지.



가을에 아빠가 떠나고 나는 이듬해 초에 퇴사를 했다. 그 두 사건 사이의 연결고리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얼마만큼의 연계성이 있었는지 재 볼 수는 없지만 아빠의 떠남으로 어떤 결심이 내게 섰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중 하나는 인생이 너무나 짧고, 유한해서 내가 가진 것이 ‘지금’밖에 없다는 사실이 담담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잠자리에 눕던 아빠에게 그것이 마지막 잠자리일 줄은 몰랐던 것처럼 내 삶에서도 내일을 기약한다는 것은 어쩌면 교만한 기대일지도 몰랐다. 



무릇 아낄 것 중에 더욱 때를 아끼자. 



나는 주저함 없이 곧장 내가 바라던 행복의 원형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퇴사 후 나는 무용을 좋아하던 철부지 여섯 살부터 키워온 예술판에 발을 들였다. 축제 기획자로서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축제기획자로서 내디딘 새로운 삶의 시작은 새로운 결단을 요구했다. 그리던 삶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삶의 여러 면에서의 변화를 소화해내는 일이었다. 소화의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아무렴 나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행복의 원형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스스로에게 오늘을 변명하던 삶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고 감히,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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