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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seen Universe Nov 30. 2019

3화.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스물다섯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보내며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 <신화와 인생>



2015년 1월


오늘 아침, 첫 직장의 동료 하나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여전히 그곳은 고되고,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다며 어젯밤도 새벽 3시에 잠들었다는 푸념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빛나야 잘 나갔어, 하고 싶은 일 해, 도전하길 정말 잘했어, 부럽다 빛나야’ 라며 나를 엄청나게 부러워하는 것이 아닌가. 


흔한 직장인의 푸념이었을 텐데 뻔한 푸념마저 위로가 되는 것을 보면, 나도 참 스러질듯한 용기를 가지고 여기까지 왔구나 싶다. 이상하게 그날 저녁에도 동기에게 이런 문자를 받았다. ‘꿈이 있어 용기 있게 나아가는 네가 늘 부럽기도 하고,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끝까지 파이팅이다.’ 나는 그만 눈물이 나버렸다. 


첫 직장을 후회 없이 퇴사하고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은 무용축제를 만드는 조직위원회였다. 명목 상 나는 제휴 마케팅 담당자로 입사를 했지만 작은 축제조직위원회에서 직무의 경계는 흐릿했다. 제휴 제안서를 기획하고 피칭하는 일도 있었지만, 프로그램북을 번역하고 제작하고 검수하는 일, 행사 홍보전단을 만들고 배포하는 일, 이외에도 자원활동가를 관리하고, 통역을 하고, 때로 해외 공연예술 마켓에 참가해 우리 조직을 알리는 등을 했다. 


캐나다 공연예술비엔날레 'CINARS' 에 참가했던 2014년 겨울 (Montreal, Canada)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모든 과정이 만족스럽고 즐길 만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다만 하루 최소 삼분의 일의 시간 동안 나의 몸과 마음이 헌신하고 몰두할 이유가 있는 곳에 거하고 있음에 안도하고 정진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대학을 졸업하며 지원한 원서는 단 한 장. 단 한 장의 원서밖에 쓰지 못할 만큼 구체적이고 뾰족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던 내가, 어영부영 뜻 없는 회사를 다닌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역이었고 그런 점에서 나에게 방향성이란 실로 중요한 일이었고, 사실 상 전부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꿈의 방향 위에 서 있음에 날마다 감사했고 또 뿌듯했다. 



봄의 한가운데에서 시작한 새로운 도전은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로 이어졌다. 일은 때로 재밌었고 삶은 때로 고단했으며 사람들은 때때로 힘들었다. 어쩌면 일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연대가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몇 되지도 않는 회사 사람들과 부딪치고 논쟁하며 때로 나는 가라앉았고, 그래도 마음이 맞는 몇몇과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해를 쬐며 커피 한 잔 하는 것으로도 즐거워하기도 했다. 어쩌면 회사생활은 직업적 사명 내지 목표의식과는 무관하게 지겹고, 질리고, 치이고, 그러다가도 마음 맞는 몇몇 이들과 깔깔대며 살아가는 것인듯했다. 


이것은 꿈을 이루고, 마침내 그 삶을 살아가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떳떳한 삶을 사는 것을 기대했던 내게 의도치 않은 깨달음이었다. 꿈을 이룬 것은 한순간이었지만 꿈을 살아가는 것은 매일의 분과 초였다. 인생은 꿈을 이루기 전과 후로 나뉜 것이 아니라 어떤 날은 열심히, 어떤 날은 가열차게, 어떤 날은 느리게, 어떤 날은 멈추어, 또 어떤 날은 침잠하며 간신히 한 발 한 발 내딛은 매일의 연속이었다. 모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니 나는 분명 알지 못했다. 모든 순간이 다 인생이라는 사실에 대해. 



동시에 한 발 한 발 간신히 내딛으며 꿈을 이뤘다는 자부심이나 스스로를 증거 했다는 만족감은 계절과 같이 앙상해져 갔다.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아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두려워졌다. 첫 월급을 받던 날이 생각난다. 급여일은 월말이었는데 나는 월 중순에 입사를 해 보름치의 급여를 받았다. (이해를 잘하려면 천천히 읽어야 한다) 그러니까 '전에 받던 월급의 / 삼분의 일의 / 절반의 / 3.3%의 소득세라는 것을 뗀' 나머지 돈이었다. 통장의 앞자리가 변하지 않는 급여는 생에 처음이라 국장님께 급여가 안 들어왔다고 두 번 세 번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당시에는 쥐꼬리 월급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며 삐져나오는 허탈한 웃음과 헛헛한 마음을 다독이며 꿈을 좇아온 내 결정을 위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통장의 잔고는 빠르게 사라졌고, 다음 달 급여일은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멀리 있었다. 증발하는 잔고보다 두려운 것은 미래였다. 미래가 전혀 그려지지 않는 매일은 차가운 밥과 같아서 나는 하루하루를 찬밥 삼키듯 열심히 씹어 간신히 소화했다. 이윽고 사 계절을 다 소화하기도 전에 나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목 끝까지 울컥울컥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그토록 바란 꿈이 고작 이 정도라는 생각과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입이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동기에게 연락을 받은 그 날은 날마다 줄어가는 푼돈을 헤아리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줄다리기를 하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햇볕이 책상 위로 떨어졌다. 책상 앞에 앉아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다음 축제를 알아보기 위해 사이트에 접속했다. 위장 장애가 심해 커피도 마실 수 없었고, 좀처럼 입맛도 나질 않아 점심은 건너뛰기로 했다. 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지다 보면 평범한 급여를 주는 곳들이 눈에 들어왔다. 결코 내가 많은 것을 바란 게 아닌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저 약간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정도를 바란 것인데. 이게 큰 바람일지도 모르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의욕 없이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나는 차오르는 눈물에 결국 고개를 숙여버렸다. 


평생을 품어온 꿈이었지만 결국 돈 앞에서 한 해를 올곧게 버티지 못할 수준의 열정이었구나 싶어 나는 많이, 많이 속상했다. 학교 갈 차비가 없어 수능 전까지도 고깃집 알바를 하던 내게도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이라는 내일이 있었고, 감당 못할 여덟 번의 대학 등록금 앞에서도 열심히 하면 전액 장학금을 받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대학에 들어갔고, 끝끝내 전액 장학금을 받아 졸업했다. 언제나 돈이라는 숫자 앞에서 엎어지는 일 없기 위해, 꿈과 열정을 접어버리는 일 없기 위해 두 배, 세 배 노력했는데. 돈을 생각지 않고서 가슴에 품은 꿈을 이룬다는 것이 이토록 고단한 일이구나. 


그리하여 나는 내 열정이 괴로워서, 혼자와의 싸움이 외로워서 울어버렸다. 오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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