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by 김현이

글쓰기를 시작하여 결말을 짓고 <끝>이라는 글자를 쓰기까지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을 꼬박 보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퇴고의 과정은 정말로 피를 말리는 과정이었다. 오늘로 2주일째 오탈자 검색 및 문맥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백지에 글자를 써내려 가는 일보다 몇 배는 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모든 내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읽었던 부분을 또 읽고 또 고치는 일이 반복되면서 내 글에 대한 식상함을 느끼게 되면서 자신감을 잃어버렸고 결국 나는 슬럼프라는 수렁으로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은 누구라도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적어도 내가 썼던 글을 단 한 개라도 읽어본 적이 있던 사람이라면 이런 나의 고뇌를 한낱 사춘기 어린애의 고민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정말로 내 자신한테는 심각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진심으로 내 안에서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끊임없이 솟아나고 있었고 무엇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바로 내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있는 사실을 그대로 써야 한다는 양심이 끊임없이 나를 심판하고 있었고 조금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사실과 다르게 쓰고 있을 때는 마음이 혼란스럽고 괴롭기까지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습작으로 내 아이들과의 일상생활을 위주로 수필을 썼던 것과는 달리 무엇인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점이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을 속여가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소설은 말 그대로 허구가 들어가 있는 fiction이어야 했다. 써지기는 했어도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서 거짓말을 써야하는 내 자신에게 결국 양심의 가책까지 느끼게 되었고 그 감정을 맛 본 뒤에는 급기야는 어떤 것이든 무엇을 쓴다는 것에 두려움까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내게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절제하고 통제하는 자기 관리 능력이 뛰어난 편이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어떤 누구의 진심어린 칭찬을 받았던 것도 아니었으며 누군가의 열정적인 응원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 본연의 의지에서 나온, 무엇보다 정말로 좋을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서 나온 용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 6월의 중순부터 미친 듯이 한 곳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양심에 가책을 느꼈을 정도로 내 자신이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이 못 마땅할 정도로 힘든 날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거의 마라톤 수준으로 달려서 <끝>이라고 마침표를 찍고 나서 느꼈던 감정이란 ‘아! 그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다시 편안해 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는 그 한 달이라는 시간을 글 속의 주인공이 되어서 그 사람의 입장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7월 25일, 어쩌면 나 혼자만의 세계에 묻혀서 그냥 이대로 잊혀 지게 될지도 모를 내 생애의 첫 장편소설의 퇴고 1차 과정을 마쳤다. 나는 두 번째 퇴고 과정에서도 지금 겪었던 것과 같은 슬럼프를 겪고 과 좌절감을 맛보게 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지금처럼 내 소질과 능력을 탓하며 좌절할 것이 아니라 단번에 내 노력의 부족함으로 알아차리게 될 것이라는 마음을 먹고 있다. 어쩌면 또 다시 상처받지 않으려고 방어막을 미리 쳐 둔 사람처럼 마음이 달리 변하게 된 것이다. 그냥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날이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이라고 여기며 그렇게 지나칠 것이다.


어쩌면 나는 뜬구름 잡는 사람처럼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른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서 손가락질하면서 비웃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내가 상처를 받게 되더라도 내 꿈이 결코 이뤄지지 않게 될지 몰라도 지금 내 아이들에게 매일 매일 조금씩 또 다른 꿈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는 것이라면 나는 결코 이 꿈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멈추지 않고 계속 밀고 나가는 이 길이 곧 또 다른 내 자신과의 힘겨운 인내심 싸움의 시작임을 잘 알고 있지만 내가 그렇게도 원하는 길이 이 길이라면 아무리 험난한 가시밭길이 된다고 할지라도 꼭 상처만이 있는 길이 아닐 것임을 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인 <나의 계절들>을 탈고하면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신영복 교수님의 한 강의 내용이 떠올랐다. 교수님께서 옥중에 계실 때 뵈었던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분에 관한 일화로 나이가 지긋하신 그 노인 죄수는 신입이 들어오면 아직 감방 분위기에 적응이 안된 사람을 붙들고 약간 지나친 친절을 베풀면서 자신의 과거 경험담을 늘어놓는다는 것이었다. 이미 한 감방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그 노인의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어 왔던 터라 '이쯤에는 어느 대목이 나와야지.'라고 예상하고 있을 정도이거나 '이 부분은 지난번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농담을 할 정도로 노인의 이야기를 훤히 알고 있을 정도였는데 다만 이야기는 되풀이될수록 나쁜 점들은 점차 좋은 쪽으로 각색이 되어 마치 영웅담처럼 미화되어져 갔다는 것이다. 아마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남아 있지 않던 그 노인에게 자신이 젊은 시절 겪었던 경험들은 그렇게 타인에게 반복적으로 이야기되면서미화되고 꾸며진 것처럼 마치 자신이 그렇게 사실대로 영웅적인 삶을 살아온 것처럼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회한이 뒤섞인 위안을 받았던 것이 아니었을까하던 말씀이셨다. 나의 경우도 비록 <나의 계절들>에 등장하는 이수인은 나를 모토로 만든 인물이지만 현실속의 나라는 아이는 수인이처럼 매우 영리하고 의리가 강하고 착한 아이, 꼭 그런 아이만은 아니었었기 때문이다. 나도 어쩌면 그 감방의 노인처럼 수인이에게서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찾아가서 그 안에서 나만의 행복과 기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끝으로, 정규적으로 출근을 해서 할당된 일을 해야만 하는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아직 열 살이 채 안된 세 아이의 엄마로서의 삶을 살면서 어쩌면 내가 이렇게 소설을 써 낼 수 있는지에 대해 수준과 내용을 떠나서 '너야말로 진정한 뮤즈이다.'라는 말로 용기를 북돋워 주시며 오랫동안 가슴 뛰게 해 주신 그 분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2017. 11. 가을의 막바지 문턱에서.

keyword
이전 12화시높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