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작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 그러니까 큰 아이 1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 지역번호가 찍힌 낯선 일반 전화가 몇 차례 며칠간격으로 걸려왔던 것을 나는 직업 특유의 본능과 받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못하여 그냥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 버리거나 아예 무음으로 바꿔놓았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가고 큰 아이와 이야기를 하던 중 나는 내가 무심코 저지른 사소한 행동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실망과 상처를 주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그 무렵, 나는 오히려 지금보다 많은 이유들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던 상태였고 가급적이면 외부와의 소통을 끊은 채로 오로지 나 자신만의 생활을 꾸려나가기에 여념이 없었고 솔직히 누군가 먼저 내게 손을 내밀면서 내 마음의 문을 열고자 했다 한들 손을 뿌리쳐 버렸을 정도로 매우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던 때였다. 그 만큼 서툰 대인관계만큼이나 자신감도 바닥까지 깊숙이 꺼져버린 상태였다.
“엄마! 그런데 왜 내 전화 안 받아?”
“무슨 전화?”
“내가 학교에서 콜렉트 콜로 전화를 했었는데 한 번도 안 받았잖아.”
순간적으로 내가 무시해버렸던 그 낯선 번호가 내 아이의 전화였다는 것을 알았고 때 늦은 미안함에 엄마가 일을 하느라 몰랐을 경우, 전화기 벨소리를 무음으로 바꿔 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나쁜 뜻으로 전화를 해서 엄마 돈을 빼앗으려는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들을 들어 아이를 이해시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는 내 부끄러움을 감춰보려는 변명일 뿐이었다.
그 일이 있은 뒤 하루에 한두 번은 꼭 그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면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전화만큼은 꼭 받으려고 했고 수화기 너머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쩌면 무작정 어둠으로 침체되어만 가던 내 마음을 환한 바깥으로 끌어주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그런 의미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은 설령 그 대화가 아무 의미가 없을지라도 초당 얼마만큼의 요금에 기꺼이 몇 배를 더 지불한다더라도 나와 아이에게 작은 행복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큰 아이가 처음 콜렉트 콜을 거는 법을 배운 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 큰 아이는 더 이상 콜렉트 콜로 전화하지 않는다. 꼭 통화해야만 할 일 – 엄마와 아이의 평상시의 일과들 – 에서 계획의 수정이 필요하거나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생기는 경우에는 친구의 전화기를 빌려 전화를 건다. 나는 그러면 큰 아이에게 말했던 ‘휴대전화는 막내가 학교로 가게 되면 사주겠다.’ 했던 것을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뜸하던 콜렉트 콜 전화는 요즘 다시 내 핸드폰에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온다. 이번에는 둘째아이다. 형한테서 전화하는 법을 배운 뒤 특별한 일이 없어서 꼭 하루에 두 세 번은 전화를 하고 있다.
“엄마, 지금은 2교시 쉬는 시간이고 이제 앞으로 점심을 먹고 딱 한 번만 더 전화할게. 엄마도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말고 좀 쉬면서 일해. 알았지? 엄마 사랑해, 엄마 최고.”
언제나 이런 말로 마치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공중전화기 앞에 써 붙은 것처럼 순서를 어기지 않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아침에 못 참고 화냈던 일이 마음에 걸려 한없이 더 미안해진다.
평소에 나는 힘들다는 말을 잘 하지 않던 사람이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쌓여온 불만은 타인에 대한 불신과 나에 대한 불평으로 늘어갔고 점점 나를 어두운 침묵으로 파고들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나마도 없던 대인과의 교류는 점점 더 하나 둘씩 줄어들고 대게 그렇듯 사람들도 내게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극적인 일이나 한바탕 재미로 대화를 할 때는 나를 꼭 그 대화에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 같았고 왠지 직장 내에서 내 존재가 너무 미미하게 취급당하게 될 것이 두렵게 느껴졌던 날에는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뒤에 남는 것은 막연한 후회와 허탈함이었다. 그렇게 허투로 타인에 대해 지껄이거나 비판하는 일처럼 쓸데없는 일도 없었다. 그것은 마치 떨이로 판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여 계획보다 큰돈을 지출했는데 막상 집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 물건들이 하나같이 마땅히 쓸모가 없는 것들이어서 남을 주기에도 그렇다고 버리기에도 아까워 집 안 구석에 먼지만 쌓이도록 쟁여놓은 꼴 밖에는 안 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듬해 계절 대청소를 할 때 마음속으로 아주 조금 갈등을 할 테지만 결국 내다버리는 물건들 틈에 섞여 버릴 것이었다. 이런 게 바로 과소비이며 나를 후회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타인의 괴로움을 진정으로 동정하지 않으며 처음 한두 번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고 들어주기는 하지만 곧 싫증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한테서도 간혹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나는 아무 책임과 의무감도 없는 그들에게 내 괴로움을 쉽게 털어 놓지 않게 되었다. 속내를 보여주고 났을 때의 미안함과 잘 살아오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그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데 대한 자괴감까지 겹쳐서 위로받았다는 마음보다는 오히려 지혜롭지 못한 나의 행동과 말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후회감이 더 크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혼자 울고 혼자서 생각하는 것이 견디는 편에 있어서는 훨씬 나았다.
오히려 섣불리 잘 모르고서 내게 이런 저런 시선과 말로 위로하는 사람들에 내 마음은 더 굴욕적으로 변해갔고 그들에게는 이런 나의 행동이 마치 억지를 부리는 아이와도 같은 데가 있어서 그들의 기분을 더욱 더 냉담하게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것이 나를 지켜가며 살아내는 또 다른 나만의 방식이고 삶의 태도였다. 그러나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이런 나를 설명하려고도 이해시킬 이유와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았다.
little hope........
아이의 콜렉트 콜이라도 없다면 아마 나는 벌써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볼 뿐이었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올리는 것은 어쩌면 반항적인 용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남들에게 하찮은 것들이 내게는 삶의 큰 위안이며 희망이고 행복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전과 달리, 한 번 써진 글과 블로그에 올린 글은 두 번 이상 읽지 않았다. 미련이란 물 속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조약돌과 같은 것,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과 꼭 같은 것이다. 마치 유혹과도 같은 것이어서 뒤돌아 봐서는 안 되는 것, 점점 미련을 둘 의미가 있고 없는 대상이 점차 분명해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