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1일, 22:08
12년 전 함께 회사에 들어온 공채 동기를 무척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오래전 퇴사해 캐나다로 기술 이민을 떠났는데, 부모님을 뵈러 귀국한 차에, 나를 포함한 동기들을 만나러 회사에 들렀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그의 송별회가 열린 6년 전 양재의 어느 술집이었다. 당시의 그는 낯설고 불투명한 미래에 운명을 밀어 넣고, 출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렴풋하지만 그날 밤 그의 얼굴에 두서없이 섞여있던 희망과 불안을 기억한다. 얼마 후 그는 태어난 지 100일이 채 안된 딸, 그리고 아내와 함께 미지의 세계로 떠났다.
오늘 만난 그는 무척 편안한 얼굴이었다. 그곳에서의 첫 몇 년이 많이 힘들었고, 지금은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행복하다 담담하게 말하는 그에게서, 나는 어떤 든든함을 느꼈다. 나는 그가, 오래도록 구르고 깎여 반질 반질한 표면을 가지게 된 큰 바위 같단 생각을 했다.
나는 이민에 대해서, 내가 이민을 떠날 가능성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진지한 고민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뿐더러, 그 단어 자체가 주는 막막함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도전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내가 본 그의 편안한 표정은, 그가 구태여 말하지 않은 단련의 결과일 것이다. 낯선 땅, 낯선 직장과 사람들, 서툰 언어와 육아까지. 그가 수 없이 버텨낸 어려움의 흔적일 것이다. 그가 떠나던 6년 전에는 몰랐지만, 아이를 키우는 지금은 그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전부터 꿈이 컸다. 이민도 본인의 커리어를 위한 것이었다. 앞으로 6년의 시간이 더 흐르면, 그를 한 번쯤은 더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때는 본인이 품은 꿈처럼, 지금보다 더 매끈하고 큰 바위가 되어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오랜만에 내가 늘 맴도는 궤도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그도, 그가 상기해준 내 지난 여러 장면들도 참 반가웠던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