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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Mar 29. 2024

일기의 시간 [28/365]

2024년 3월 28일, 22:03

오후의 마음은 이미 글밭에 가있다. 요즘은 점심을 먹고 자리에 돌아와 앉으면, 밤에 쓸 거리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주로 오전에 본 것들을 복기해 보는데, 기억에 남는 게 있으면 메모를 남기지만, 대체로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날이 많다.


매일 쓰는 일이 즐겁다. 아들이 잠든 고요한 집안, 노란 전구등 아래 오롯이 홀로 앉아 일기 쓰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때가 되었다. 한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쓸 수 없어 고통스러운 밤도 많았다.


최근엔 이 시간에 대한 몇 가지 고민이 있어, 정리를 한 번 해둘까 한다.




'매일' 쓰는 일


애초 시작은 내밀한 일기였다. 기록하지 않으니, 바로 한 해 전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아들 없이 둘이 살던 시절이나, 초년생 시절, 학부생 시절, 그 이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과거의 나는 몇몇 장면으로만 남아있고, 그나마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시시한 것이라도 짧게나마 매일 기록해 두면, 적어도 한 때의 나를 이질감 없이 기억해 낼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


매일 '내보이는 글'을 쓰는 일


매일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격무에 시달린 날, 아들이 아팠던 날 등, 일기를 건너뛸 사정은 차고 넘쳤다. 강제성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았고, 월/화/수/목/금/토/일 연재를 시작했다. 선언의 효과는 좋았다. 뭐라도 계속 쓰고는 있다.


내밀한 일기가 ‘내보이는 글’이 되면서, 무겁고 어두운 마음은 날 것 그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여러 번을 씹고 또 씹느라, 두 시간 넘게 몇 줄 적지 못한 날도 여럿이었다. 이렇게는 지속할 수 없을 것 같단 걱정도 했지만, 여전히 오후 내내 이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차마 드러내지 못한 마음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점차 더 무심하게 써지리라 생각한다.




이제 스물여덟 번째 일기를 썼고, 그저 여기에 매진하고 싶다. 올해는 특별할 것 없이, 아들 잘 키우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이 연재를 계획대로 마무리 짓는게 유일한 목표다. 제목에 [365/365]를 적는 밤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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