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미국 자동차 여행(013)-6월 14일(토)
2008-06-16 오후 10:15:51
아내는, 이 번 미국여행 계획을 짤 때 Google map을 바탕으로 하였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을 각 정하고 구글맵을 통하여 각 구간 별로 어떤 도로를 어떻게 이용하여야 할지, 그 거리는 어떻게 되는지를 파악하여 프린트해 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우리가 가야 할 도로가 폐쇄된 경우에는 쓸모가 없었다. 정상적으로 도로가 열렸을 때를 전제로 한 자료니까.
다시 구글에 들어가 지도검색을 하여야 하였으나 어제처럼 차안에 있어서 인터넷 접속이 안되는 경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다음에는 비상시를 대비하여 휴대폰으로 인터넷 접속을 하는 방법을 연구해와야 할 것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인터넷에 접속한 후 Google 에 들어가서 지도 검색을 하였다. 우리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아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가야 90번 West Highway로 진입할 수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필요가 발명을 만든다고 했던가. 이 번 기회에 구글의 지도 사이트를 활용하는 방법을 확실히 배웠다. 그리고, 구글의 map site는 훌륭하였다.
우리는 네비게이터에만 의존하였기 때문에 지도를 준비하지 않은 실수를 범했다고 어제 생각하였으나 사실은 우리처럼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하는 상황에서는 지도를 준비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었다.
지금 처한 상황에서는 지방의 작은 도로가 나오는 세세한 지도가 필요하고, 또한 인접하는 넓은 지역의 지도가 필요한데, 서점에서 파는 어떤 두꺼운 지도책을 사도 그런 요구를 만족시켜 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지도책이 있다면 1000페이지가 넘어야 할 것이다.
구글은 Zoom-In, Zoom-out 기능을 이용해서 이 모든 요구를 만족시켜 주었다.
어젯밤 우리는 39번을 타고 북쪽으로 계속해서 올라왔었다. 구글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 위스콘신주의 Plover라는 작은 도시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90번 하이웨이로부터 상당히 북쪽에 와 있는데 남서쪽으로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내려가면 Tomah 근방에서 90번 하이웨이를 만나고 그 쪽은 홍수가 난 지역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므로 90번 하이웨이가 개방되어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지방도로상의 특정 지점을 네비게이터에서 경유 지점으로 설정하기로 하고 그곳을 수첩에 메모했다. 경유 지점을 설정하지 않고 바로 Tomah를 최종목적지로 입력하면 네비게이터는 또 가까운 곳에 있는 90번 하이웨이의 진입 ramp로 안내할 것이기 때문이다.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였다. 차의 계기판에는 또 타이어의 공기압력이 부족하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이틀 전에 타이어 공기를 주입하였는데 벌써 공기가 샜다는 것은 타이어에 이상이 생겼다는 징후였다.
마침 이 동네에는 Toyota의 Auto Service Center가 있었고 아내는 어젯밤에 용케 그 간판을 발견하고 기억하고 있었다.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그곳은 문을 열고 일을 하고 있었다. 점검을 해보더니 타이어에 못이 박혀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그 간단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려 2시간이나 걸렸다. 미국에서는 매사 일의 진행이 느리다.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다 그렇다. 유럽이나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은 미국에 오면 그래도 미국이 빠르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도 대한민국은 매우 훌륭하다. 일에 대한 의욕이 있다.
거기서 시간을 빼앗겼지만 우리는 그곳의 매니저로부터 귀중한 도로 정보를 얻었다. 그 매니저는 우리가 가기로 계획을 세웠던 도로는 거리상으로는 가까울지 모르나 작은 도로이므로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른다면서 새로운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54번 도로를 서쪽으로 타고 가다가 80번, 21번을 타고 가서, 90번을 타기로 하였으나 그는 그렇게 가면 경치는 좋겠으나 시간이 많이 걸리니 계속 54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94번 하이웨이를 타고 그것을 타고 내려가다가 90번 하이웨이로 바꿔 타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수리요금으로 32달러를 지불하였다. 이 돈에 대해서는 렌터카 회사로부터 보상받기로 하고 우리는 다시 출발하였다.
우리가 묵은 조그만 타운인 Plover를 빠져 나와서 54번 도로를 따라 달려갔다. 길은 그리 넓지 않았으나 차들이 하나도 없어서 시속 100km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시골길을 달려 보면 도로 양쪽으로 나무들이 듬성듬성 있는 풀밭만 있을 뿐 1시간을 달려도 아무 것도 없는데 아주 가끔씩 외딴 집 한채만 덩그러니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대체 저기 사는 사람들은 뭘 먹고 살며 왜 이곳에 살까. 가족은 있을까. 아이가 있다면 학교 교육은 어떻게 시킬까가 궁금해진다.
local 도로를 달리다 보면 심심찮게 Korean War Veteran Memorial Way라고 도로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벌서 그런 도로를 필라델피아에서도 보았고 뉴저지에서도 보았고 이곳에서도 보았다.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많은 미국장병들이 전사하였고, 이를 추모하기 위하여 도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한국전쟁때 이들이 이렇게 피를 흘려가면서 공산화를 막아 주었는데 지금의 극렬한 반미적 태도를 보면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 전쟁이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등, 그 전쟁 때문에 한반도가 분단되었다는 등 하는 주장도 있으나 그러면 그 때 적화통일이 되었다면 좋았다는 이야기인가.
민족이 분단이 되지 않고 같이 살 수만 있다면 우리가 지금 북한수준으로 사는 것이 좋다는 말인가.
전쟁 중에 국가적 이익의 고려 없이 오로지 순수한 희생적 의도로 자기 나라 국민의 목숨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경우가 과연 있을 수 있는가.
터키가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다고 월드컵 때 형제의 나라니 은인의 나라니 떠들었는데 터키는 순수하게 우리나라를 도와주기 위하여만 참전한 것이고 미국은 한국을 약탈하기 위하여 참전한 것인가.
우리나라가 월남전에 참가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미국의 꼭두각시이기 때문에 아무런 이익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미국이 시키는대로만 한 것인가. 아니면 경제부흥을 위한 중요한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던 것인가.
중국인들이 백주에 우리나라 영토에 들어와서 티벳인들을 폭행하고 한국인들을 구타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고 거기에 대하여 중국정부는 뚜렷한 사과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조용하면서 미국이 하는 짓에 대해서는 왜 사사건건 시비인가.
친미를 하면 중국이 등을 돌릴 것이라는 등 국제정세나 국제 역학관계에 밝은 듯 하면서 반미를 하면 어떤 불이익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다.
석휘가 졸업식 때 한 말이 있다. 미국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 보다 대체로 공부를 못하여 그저 그렇게 생각하다가 졸업할 때쯤 되서야 미국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우수한 학생들은 공부만 잘할 뿐이지만 미국의 우수한 학생들은 다 잘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저력을 느꼈다는 취지였다.
미국이나 중국이나 어떨 때라도 우리의 적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하루 아침에 대만을 버리고 중국에 붙었듯이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그렇게 좋은 편, 나쁜 편으로 편가르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딱 수준이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의 미취학 아동 수준이다.
2시간 가까이 54번 도로와 94번 하이웨이를 달리다가 드디어 Tomah 근처의 90번 하이웨이를 만나는 지점까지 왔다. 우리는 다소 불안하였다. 이곳 진입로까지 막아 놓았다면 우리는 정말 황당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처음 계산대로 이곳은 열려 있었다. 드디어 90번 하이웨이에 진입한 것이다. 어제 90번 도로만 막혀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마운트 러시모어를 향하여 벌써 상당히 진행하였을 터인데 이제 다시 시작하게 되는 는꼴이다.
90번 웨스트로 진입하자 네비게이터는 이 도로상으로 600마일을 그대로 진행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상상이 되는가. 일직선 도로를 1000킬로미터 가까이 방향도 바꾸지 않고 도로도 갈아타지 않고 그대로 서쪽으로 서쪽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양쪽에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도로는 곧게 무한정 뻗어 있다. 운전석에 앉아 앞을 보면 지평선이 끊김이 없이 반원으로 계속하여 연결되어 있다. 하늘은 도로 끝에 붙어 있고, 구름은 눈 앞에 내려 와 있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파노라마 사진을 찍어서 여러분에게 보여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실제로 이 일직선 도로를 따라 계속하여 가속을 하면 자동차가 마침내는 이륙하여 하늘로 날아갈 것 같다.
이곳의 speed limit은 미네소타주에 들어서면서부터는 75mile이다. 자동차는 헉헉 숨을 내쉬면서 잘 달리고 있었다. 자동차야, 미안하고 고맙다.
하이웨이 중간에는 곳곳에 rest area가 있다. 화장실이 있고 공중전화가 있으며 근처 풀밭에 나무 탁자와 의자가 준비되어 있는 곳이다.
우리는 rest area에 들러서 그 나무 탁자에 아내가 호텔에서 아침에 전기밭솥으로 지은 밥과 필라델피아의 한국 슈퍼마켓에서 사온 밑반찬으로 꿀맛 같은 점심식사를 하였다.
밑반찬들은 아이스박스에서 잘 보관되어 있었다. 미국의 숙박업소에서는 모두 각층마다 얼음을 무료로 공급해주는 기계를 설치해놓았다. 원래의 취지는 그 옆에 있는 음료수 자판기에서 콜라를 꺼내 먹을 때 필요하면 얼음을 타서 먹으라는 것이겠지만, 우리처럼 아이스박스를 가지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매일 얼음을 바꿔 채워 넣을 수 있으니까.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출발하였다. 갈 길이 머니까. 그런데 계기판에 또 무슨 이상한 불이 들어왔다. 이건 또 뭐야 하였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석윤이가 매뉴얼을 꺼내서 읽어 보았다. 엔진 오일 교체 사인이라단다. 계속 켜져 있으면 즉시 교체하라는 신호란다. 석윤이가 ‘단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날이 없구만’하면서 낄낄 거렸다.
석휘가 렌트카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교환과 교환을 통하여 마침내 담당자와 연결되었다. 우리보고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석휘는 모른다고 하였다. 대도시에 들러서 다시 전화하라고 하였다. 그러면 차를 바꿔주든지 엔진오일을 교체해주든지 하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불안할 것 같아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네비게이터에게 근처의 auto service를 찾아달라고 입력하였다.
그 안내에 따라 exit를 빠져 나가서 10마일쯤 달렸다. 아주 조그만 시골 동네에 auto shop이 있었으나 토요일 오후 7시에 문을 열어 놓았을 리가 없었다.
마침 그 옆 주유소에 자동차 용품을 파는 가게가 있어서 그곳에 들렀다. 뺀질뺀질한 미국의 도시 인심과 달리 미국의 시골 인심은 어디 가나 좋다. 그 가게 주인인 듯한 친절한 할아버지는 우리 차의 본넷트를 열고 오일 점검을 몇번씩이나 되풀이 하더니 아직은 괜찮다고 하였다. 다만 엔진의 과열로 인하여 계기판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다시 90번 하이웨이로 진입하였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얀 구름이 바람에 흘러가면서 지는 해를 잠시 가릴 때는 구름이 붉은 빛에 물들면서 장관을 연출하였다.
때로는 구름뭉치가 크고 그것이 낮게 떠 있고 태양 빛이 구름을 통하여 수직으로 떨어져서 마치 우주인이 비행접시를 타고 상공에 떠 있으면서 우리와의 교신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너무 많이 봤는 모양이다.)
우리는 서쪽 정중앙으로 가고 있었고 해는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서쪽으로 지므로 점차 고도를 낮추더니 마침내 나의 시선높이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를 한참동안 말없이 바라 보았다. 숨이 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형형한 붉은 해를, 선글라스를 끼고 선바이저를 내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마주보았다. 붉은 해가 눈 앞의 지평선에서 오늘 하루의 임무를 다하고 조용히 그러나 장중하게 침몰해갔다..
하이웨이를 달리면 대형 트레일러의 횡포 외에도 두가지 위험이 있다. 펑크 난 타이어의 잔해가 길바닥에 떨어져 있을 때가 있다. 사슴이나 다른 동물들이 하이웨이를 무단으로 건너다가 차량과 부딪혀서 그 시체가 도로 한 가운데에 이리저리 찢긴채 널려져 있을 때가 있다. 캄캄한 밤에 고속으로 달리다가 갑자기 이런 것을 발견하면 놀라서 순간적으로 차량의 핸들을 좌, 우로 틀 수 있는데 이럴 때 위험할 수 있다.
오늘 마운트 러쉬모어에 도착하기는 어차피 글렀다. 그러나 나는 오늘 최대한 많이 가서 내일 아침에는 덜 가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참을 수 있지?”하고 물었다. 아이들은 “괜찮아요”하고 합창하였다. 갑자기 아내가 “그럼 아이들을 저녁마다 굶겨요? 몸 다 버리겠다.”하며 반발했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야단맞을 줄 알았다”면서 낄낄거렸다.
아이들을 저녁마다 굶기는 비정한 아버지가 되지 않기 위하여 9시까지만 가고 그 때부터는 가까운 exit로 나가서 숙박할 곳을 찾기로 하였다.
사우스 다코다 주는 가난한 주이다. 마운트 러쉬모어라도 없었다면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주가 될 뻔한 곳이다.
그래서 하이웨이를 아무리 달려도 주변에 도시가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 끝없는 평원만 계속 될 뿐이다.
마침내, 주유소나 Inn이 몰려 있는 exit을 찾아서 그곳으로 나갔다. 일단 호텔에 check-in을 하고 방 안에서 밥을 해먹으려고 하였으나 뜻밖에 그 일대가 모두 만원이었다. 거의 40분 가까이 돌아다녔다. 유일하게 방이 있는 곳이 하나 있었으나 smoking room이라고 해서 포기하였다.
맥도널드 같은 인스턴트 식품은 석휘가 더 이상 가기 싫다고 해서 subway를 찾아 갔다.
이곳에서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우고 한시간쯤 더 가서 숙박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아까 하이웨이에서 저 앞에서 먹구름이 뭉쳐 있는 곳을 보았는데 밤에 더 가다가 폭우를 만날지도 모르겠다면서 아까의 smoking room이라도 잡자고 하였다.
급하게 차를 몰아서 아까의 Kelly Inn으로 향하였다. 다행스럽게 그 방은 아직 남아 있었다. 담배냄새는 그렇게 심하게 배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괴로운 모양이었다. 석휘는, 엄마가 PC방에 나를 찾으러 왔다가 어쩔 수 없이 오래 있게 된 것으로 생각하라고 하였다.
결국 오늘도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잠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5시간을 계속해서 더 가야 마운트 러쉬모어를 만날 수 있다.
고생스럽지만, 행복한 고생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