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31분. 오늘도 역시 눈이 번쩍 떠졌다. 그래도 어제 보다 1시간 늦게 일어난 거니까 시차적응이 되고 있는 건가... 잠자는 건 역시 육체적 피로도와는 별개인가 보다.
오늘은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셰 미술관으로 큰 틀을 잡고 나머지 일정은 상황을 봐서 선택하기로 했다. 작년에 이탈리아에서도 느낀거지만 프랑스는 길거리 흡연이 너~무나 많아서 담배 냄새에 취약한 나로서는 엄청난 고역이었는데 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에서 일부러 준비해온 잇템! 마스크를 써보기로 했다. 사실은 길거리 흡연은 생각 못했고 소매치기와 사인 사기단이 하~~도 많다길래 좀 세 보이려고 선택한 게 검정 마스크였다. 한국에선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검정 마스크가 과연 효과가 있으려나? 괜히 더 눈에 띄어서 타깃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지만 일단은 시도해보기로 했다. 부디 소매치기들의 공격 없이 살아남기를 ~~~!
(프랑스에 갔다 와서 알게 된 이야긴데, 대다수 유럽에서는 테러방지를 위해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고 있단다. 심지어 마스크를 쓰면 벌금을 낼 수도 있다고... 무슨 이런 법이 다 있나 싶다.)
루브르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서 버스를 타고 가보기로 했다. 여전히 파리의 지하철은 타고 싶지 않았으므로... 가면서 루브르 박물관 정류장을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도 한참이 지나도 루브르 박물관이 보이질 않는다. 구글맵을 켜보니 이미 한참 지난 상태였다. 할 수 없이 차선책으로 뤽상부르 공원을 선택하고 다음 정류장에 내렸다. 파리지앵들이 피크닉과 산책을 즐기는 공원이고 무엇보다 소매치기단이 거의 없대서 더 마음에 들었다. 공원엔 예상대로 가벼운 산책과 운동을 하는 파리지앵들이 평화로운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겨울이라 나뭇잎이 다 져서 아쉬웠지만 지금도 충분히 예뻤다. 특히 공원 옆에 있는 이름 모를 대학 건물이 너무 예쁜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여긴 정말 딱! 내 스타일~ 어제 갔었던 베르사유 보다 여기가 더 맘에 든다면 내가 이상한 건가? 암튼 마음까지 여유로워지는 아름다운 공원이다. 초록 초록할 때! 아님 알록달록할 때! 꼭 다시 오고 싶을 만큼... 의도치 않게 들른 곳이지만 정류장을 지나친 게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루브르에 가는 길. 망할 놈의 구글맵 때문에 버스정류장을 헤매다 드디어 버스를 타고 루브르에 도착했다.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러 갔는데 직원이 신분증이 없으면 안 된단다. 호텔에 여권을 두고 온 터라 어쩔 수없이 돌아 나오다 생각해 보니 렌터카 운전 때문에 운전면허증 갖고 온 게 생각났다. 한국 신분증이 과연 될까 싶었지만 다른 직원은 신분증은 묻지도 않고 바로 티켓을 끊어준다. "뭐지? 아까 그 남자 직원은 대체 왜 안된다고 한 거야? 우리가 못 미더워 보였나?" 엄청나게 구시렁대며 오디오 가이드를 받으러 갔더니 직원이 신분증을 맡겨야 대여해 줄 수 있단다. 세상에 아까 그 남자 직원 말이 맞았다. 그 남자는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했을 뿐 잘못이 없다. 운전면허증을 내미니 직원이 신기했는지(신분증으로 한국 운전면허증을 내는 사람은 없었겠지) 이걸 한국어로 뭐라고 하냐며 발음을 적어달래서 적어줬더니 우리 발음을 한 자 한 자 따라 하며 즐거워한다. 그녀의 유쾌함에 덩달아 우리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 좋게 오디오 가이드를 받아 들고 입장을 했는데,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우린 '그알못' 이라 그림을 봐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아는 작품이 많지 않다 보니 흥이 나질 않는다. 박물관을 몇 바퀴씩 헤매가며 간신히 밀로의 비너스와 모나리자를 찾았다. 역시나 유명 작품들 앞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고 특히나 모나리자의 그림은 크기도 생각보다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역시 미술작품은 나랑 안 맞는 것인가?
게다가 구조가 복잡해서 미로처럼 돌다 보면 또 그 자리, 다시 돌아봐도 또 그 자리! 정말 사람 환장할 지경이다. 위층, 아래층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한 번에 갈 수가 없다. 완전 개미지옥이 따로 없다. 그중 최고는 화장실 찾기! 표지판을 따라서 가보면 갑자기 반대로 돌아가라는 표지판이 떡하니 있고 다시 돌아가 보면 아까 그 자리고. 거짓말 안 하고 열 명이 넘는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하나같이~~~ 다 다른 곳을 가르쳐준다. 그들의 말대로 따라가 보면 역시 화장실은 없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니~ 볼 일이 급한 사람은 오줌 싸게 생겼다. 화장실 찾기 한 시간여만에 두 칸짜리 작은 화장실을 찾아 해결하고 또 투덜투덜... 그림을 더 보고 싶어도 힘들어서 돌아다닐 수가 없다.
배가 고프니 밥이나 먹고 나가야겠다 하고 카페테리아를 찾으니 또 화장실 찾기의 악몽이 재현됐다. 헤매고 헤매다 간신히 찾은 카페테리아에서 비싸고 맛없는 과일 샐러드와 탄두리 치킨랩을 먹고 미련 없이 나가려는데 이젠 출구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겨우겨우 출구로 나가보니 빙 둘러 화장실 천지다. 입구와 출구에만 화장실을 많이 만들어놨나 보다. 그리고 루브르 안내도를 다시 보니 뮤지엄 어플을 깔면 어려움 없이 작품들을 찾을 수 있단다. 처음부터 자세히 좀 읽어볼 것을.... 괜히 생고생을 했네. 다 내 불찰이다.
미련 없이 루브르를나와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오르세로 갔다. 여행책자를 읽다 보니 우리가 아는 작품은 오르세에 더 많아서 오르세가 보는 재미가 더 있다는 말에 힘을 내서 가보기로 했다. 오르세 미술관은 루브르 보다 규모는 작지만 한눈에 미술관이 다 들어오고 관람 순서도 단순해서 절~대 헤맬 일이 없어서 좋다. 그래! 이래야 볼 맛이 나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학교 다닐 때 미술 교과서에서 자주 보던 유명한 작품들이 많다. 고갱, 고흐, 르느와르, 마네, 모네, 세잔, 드가, 밀레 등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작품들이 널리고 널렸다. 게다가 러블리하고 아름다운 그림도 딱 내 스타일! 완전 예쁘다~~~~ 몸은 힘들어도 저절로 그림 쪽으로 발걸음이 옮겨진다. 그림에 문외한인 내게도 오르세 미술관은 정말 맘에 쏙 든다. 다음에 파리에 오면 꼭 다시 가고 싶을 만큼~♡
다리도 너무 아프고 비도 오락가락해서 역시나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한 번 택시 맛을 보니 마약처럼 끊을 수가 없다. 이러다 지하철은 못 타보고 파리를 떠나게 생겼다. 그래도 전~~~ 혀 아쉽지는 않다. 4시 20분쯤 호텔에 도착해서 침대에서 좀 쉬다가 근처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간 빵에 질리긴 했지만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점에 끌려 프랑스 자체 패스트푸드점인 Quick으로 정했다. 얼마나 빨리 나오면 이름이 퀵일까 싶다. 말은 잘 안 통해도 어찌어찌 베스트 메뉴를 추천받아 포테이토에 스프라이트까지 세트로 시켰다. 사이즈가 미디엄 사이즈인데도 엄청 크고 특별한 맛은 없으나 버거킹이랑 비슷한 맛이 났다. 남은 기간 동안 굳이 다시 먹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이 흘러가고 있다. 여행 전부터 애증으로 시작했지만 파리는 역시 매력적인 도시다. 그리고 파리의 랜드마크는 역시 에펠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