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파리를 떠나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날이다. 창밖을 보니 아직 어두컴컴한데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경찰차가 여러 대 서 있고 무장경찰들 여럿이 서성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오늘이 토요일이라 시위가 있을 거라고는 했는데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경찰들이 깔려있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너~무 우리 호텔 앞에만 경찰들이 많아서 순간 우리 호텔에 테러가 났나? 의심했지만 조식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가 보니 다들 너무 평화롭다. 그들에게 주말 시위는 이미 일상이 되었나 보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먹으러 하는데 먼저 와 있던 일본인 아줌마 네 명이 어찌나 시끄럽게 떠드는지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엄격히 교육받는다고 알고 있는데 이분들은 대체 뭐지?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지만 현지인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같은 동양인으로서 내가 다 창피할 지경이었다. 다행히 얼마 있다 그녀들이 나가고 식당 안은 평화가 찾아왔다. 난 일부러 두 손으로 양쪽 귀를 막고 고개를 흔들며 '난 저런 매너 없는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다.'라는 제스처를 했더니 앞에 앉은 할아버지가 싱긋 웃는다. 그리고 일부러 한국말이 들리게 말을 했다.
스트라스부르에 가는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누워있다가 "오 샹젤리제~" 샹송을 들으며 파리에서의 마지막을 즐겼다.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보니 아침부터 시위대들이 나와있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노란 조끼를 실제로 보니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뭔가 신기했다. 또 가다 보니 무슨 일이 생겼는지 소방차들이 엄청나게 많이 몰려있는 곳이 있었다. 물을 뿌리고 있는 걸 보니 불이 났다보다. 나중에 동생이 카톡으로 알려줬는데 우리 숙소 근처에 있는 빵집에서 가스폭발 사고가 있었단다. 우리가 떠나기 불과 30분 전에 말이다. 암튼 시위 때문에 차량통제가 걱정돼서 일찍 나왔더니 기차 시간까지 1시간이나 남았다. 역 안에도 담배연기는 여전히 우릴 괴롭히고 검은 마스크를 쓴 채 의자에 앉았는데 바로 옆에서 즉석 피아노 연주가 시작됐다. 건장한 체격의 흑인 남자였는데 연주에 몰입한 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분 덕분에 지루할 뻔했던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기차에 타고 2시간 만에 스트라스부르 역에 도착했다. 예약한 호텔이 역 바로 앞에 있어 바로 호텔은 찾을 수 있었다. 근데 호텔 문이 닫혀있다. 카운터에 직원도 보이지 않는다. 이건 무슨 경우지? 호텔이 파업을 하나? 아님 다른 문이 있나? 찬찬히 살펴보니 밤에만 누르라는 벨이 있고 카메라가 설치되어있다. 설마 이걸 눌러야 하나? 의심과 함께 벨을 몇 번 눌렀더니 자동문이 열린다. 뭐 이런 호텔이 다 있지? 3시부터 체크인이라고 하기에 짐만 맡기고 나와야 하나 했는데 다행히 체크인이 된단다. 그런데 안내받은 방은 트윈베드가 아니라 더블베드다. 다시 카운터에 내려가 트윈베드룸으로 바꿔줄 수 있는지 물었더니 있긴 한데 그러려면 50유로를 더 내야 한단다. 이런... 불편하긴 하지만 50유로나 더 내긴 싫어서 그냥 더블 베드룸으로 했다.
짐만 방에다 두고 쁘띠프랑스 쪽으로 걸어가려고 호텔 앞으로 나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역 앞부터 시작해서 골목 앞을 경찰차와 무장경찰들이 막고 서 있다. 경찰들은 검은 방탄복에 총을 들고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다들 체격들도 좋고 영화 속 어벤저스처럼 엄청난 포스가 느껴져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골목마다 경찰들이 서 있긴 한데 사람들의 통행을 막고 있지는 않아서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노란 조끼 시위대의 행렬이 보인다.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행진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줌마, 아저씨, 학생들까지 평범한 동네 사람들 같았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샌드위치를 먹으며 행진을 하고 친구들끼리 깔깔거리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고 마치 마을축제 행렬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우리가 방심한 순간 앞에서! 펑! 펑! 소리가 크게 들리고 흰 연기가 났다. 최루탄인가? 대학 다닐 때도 맡아보지 못 한 최루탄? 근데 최루탄 특유의 매캐한 냄새가 안 나는 걸 보면 그냥 겁주기용 공포탄인가 싶었다. 하지만 새가슴인 우리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돌아 나왔다.
어차피 점심은 먹어야 하니 밥부터 먹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까 호텔 옆에 있던 식당이 생각나서 가봤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일식집이다. 날마다 먹는 빵에 질린 터라 밥이 먹고 싶어 주저 없이 들어갔다. 메뉴를 보니 규동이 딱 보인다. 일단 규동을 시키고 맥주 한 잔이 생각나는데 뭘 시킬까 하다 하이네캔을 한 병 시킨다. 시키고 나서 조합을 보니 프랑스에서 규동에 하이네켄이라... 참으로 묘하다... 다행히 규동은 맛있었고 오래간만에 씹어보는 하얀 쌀밥은 행복감을 주었다.
맛있게 밥다운 밥을 먹고 밖에 나가보니 경찰들도 거의 없고 시위대도 보이지 않는다. 다 끝난 건가? 밥 먹고 나오니 시위가 끝나다니 타이밍 한 번 죽이네. 우리가 운이 좋은가보다 생각하고 쁘띠프랑스로 걸어갔다. 블로그에서 사진을 보며 꼭 가보고 싶었던 곳. 강 옆을 끼고 아기자기한 예쁜 집과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우중충한 날씨가 아쉬움으로 남지만 쁘띠프랑스는 예뻤다. 근데 정말 희한한 건 이 나라 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 우기라 비가 워낙 자주 오기도 하고 내리는 양은 이슬비 정도로 아주 적으니 다들 비가 와도 그러려니 하나보다. 우리도 며칠 프랑스에 있다 보니 그들처럼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게 됐고 무단횡단도 일상이 돼버렸다.
크리스마스 마켓 거리를 걷다 보니 노란 조끼 행렬이 다시 나타났다. 시위가 끝난 게 아니라 계속 행진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나 보다.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니 우리도 그들과 함께 걷는 게 더 이상 두렵지 않았고 그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줄 여유가 생겼다. 아기자기 예쁜 거리를 걷다 보니 노트르담 대성당이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스테인드 글라스가 완전 환상적이게 아름다웠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성당을 가봤지만 성당은 갈 때마다 감동적이다.
성당을 나와 거리를 걷다가 50프로나 세일을 한다기에 망고 매장에 들어가 쇼핑을 하고 막 나가려는데 갑자기 셔터가 내려오더니 출입구가 닫힌다. 이건 뭐지? 우리 여기 갇힌건가? 하는 순간 시위대 행렬이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지나간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서 셔터를 내렸나 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리며 밖에 있는 시위대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고 서로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우리도 그들을 향해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줬다. 셔터가 올라가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펑'하는 소리에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라하는데 뒤에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얼른 나가기나 하라는 듯 우릴 밀어낸다. 이분들에겐 이게 토요일의 일상이 됐구나 싶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시위가 조금 과격해졌다.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일단 호텔로 들어와 쉬었다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저녁때가 한국시간으론 새벽이다 보니 사실 배고픈지도 모르겠지만 안 먹기는 허전해서 슈퍼에 가서 바나나랑 과자, 맥주를 사서 돌아왔다. 근데 블랑 병맥주가 예뻐서 사 오긴 했는데 방에 오프너는 없는 것 같고... 들어오면서 카운터에 들러 오프너 있냐고 물어보니 있다면서 지금 따주냐고 묻는다. 당연히 '롸잇 나우~!'
오늘 스트라스부르 여행은 노란 조끼 시위대와 함께 한 느낌이다. 한국에서 뉴스로 볼 땐 무서웠지만 실제로 보니 너무나도 인간미가 있는 시위였다. 그런데 호텔에서 TV를 틀어보니 계속 생방송으로 파리 노란 조끼 시위단 뉴스가 나온다. 스트라스부르와 달리 파리는 굉장히 과격했나 보다. 난 시위의 자세한 내막을 잘 모르는 잠깐 스쳐가는 이방인일 뿐이지만 더 이상 누구도 상처 받지 않고 원만하게 잘 해결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