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특권이자 슬픔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탑승수속에서부터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공항의 직원은 내가 베를린으로 들어가는 편도 티켓밖에 없다며 체크인을 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독일에 들어갔으면 나가는 티켓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시간은 10분 남짓. 이대로 비행기를 떠나보낼 순 없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베를린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기내에 탑승하자마자 서둘러 전화를 걸어 간신히 티켓을 취소하는데 성공했지만 외국도 아닌 자국에서부터 일이 이렇게 꼬인다는 것은 찝찝하고 불쾌한 일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전 날 잠을 설친 탓에 장시간 비행에도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인천과 베를린은 직항 비행기가 없어서 모스크바에서 환승을 했다. 그곳에서 3시간 정도 대기를 했는데 그때부터 내가 먼 곳을 떠나왔다는 사실이 점차 실감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러시아어, 나와는 전혀 다른 외모, 인종의 사람들… 공항 무선인터넷은 뭐 때문인지 먹통이었는데 이제 진짜 혼자가 되었다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동시에 약간의 희열이 차올랐다. 집을 나선 지 약 18시간째. 마침내 나는 베를린 쇠네펠트(Schönefeld)공항에 도착했다.
아무 계획도 없이 도착한 베를린에서의 첫 달은 정말 천천히 흘러갔다. 우연히 구한 숙소가 하필 시 외곽 쪽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나는 ‘베를린은 생각보다 엄청 시골풍경의 도시이구나’하고 착각하며 지냈다. 그도 그럴 것이 집 밖을 나가면 주변엔 넓은 들판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고 닭, 말, 당나귀 등이 그곳에서 자유롭게 뛰놀고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대부분이었지만 저녁녘 노을빛의 풍경은 따뜻했다. 그런 풍경이 당시의 대책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던 나에겐 제법 큰 위로가 되었다. 어느 날은 내 옆으로 지나가는 자동차와 벌판의 풍경이 평화로워 사진으로 찍어놓고 그림으로 옮겼다. 참 오랜만에 그려보는 그림이었다.
당장은 별 계획이 없었다. 그저 하루종일 방 안에 있거나 한적한 동네를 걷고 또 걸었다. 마트에서 먹거리를 장 봐오는 것이 내 특별한 일과 중 하나라면 하나였다. 한국에는 없는 것들도 꽤 많았다. 안정적인 물가로 유명한 독일답게 공산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식재료들이 한국과 비교했을 때 훨씬 저렴했다. '장 보는데 이 정도 비용이 든다면 굳이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그림만 그리면서 먹고는 살겠는데?'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어느 날은, 무슨 뜻인지 모르는 독일어의 통조림 진열대 앞에 서서 '이게 개 사료인가 사람 음식인가'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스마트폰을 보며 한참을 그곳에 서있던 내가 우스워 웃음이 나왔다. 계산을 할 때 미리 외워둔 독일어로 용기 내 인사를 했고, '혹여나 못 알아듣는 말을 직원이 건네면 어쩌지'하고 두려워했다. 별 탈없이 직원이 상냥하게 인사를 하면서 잔돈을 건네주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그런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들이 두려움이자 설렘으로 다가온다는 것. 바로 이방인의 특권이자 슬픔이었다. 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상태로 돌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사는 곳이 베를린의 남쪽을 벗어나 3킬로 정도 더 떨어진 시골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뒤였다. 베를린에서 유학을 준비 중인 친구와 연락이 닿았고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베를린 중앙역으로 가게 되면서 '내가 중심지로부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구나'하고 깨달았다. 친구는 나에게 "아무 계획이 없다고는 해도 베를린 중심으로 와서 이것저것 경험을 해봐야 하지 않겠냐"라고 제안했다. 나도 동의했다. 얼마 후 친구는 베를린 중심 쪽에 방 하나를 소개해줬다. 유학생 친구가 쓰는 방이었는데 잠시 한국에 가게 되었다고 하여 한 달 정도 빌려 쓸 수 있었다. 이전 숙소 주인분께는 양해를 구하고 짐을 옮겼다.
이사를 한 뒤로도 내 생활에 큰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하루는 제 멋대로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늘 그렇듯 집 근처의 마트를 찾아 그곳에서 식재료를 사고 집에 와서 요리를 해 먹었다. 베를린 안으로 들어온 건 다양한 미술관, 카페, 건축물들을 보다 자주 편하게 접하려는 의도였지만 그전에 나에게는 수수께끼인 독일 마트에서 다양한 품목을 살펴보는 게 더 즐거운 일이었던 것 같다. 마트의 신기한 재료와 저렴한 가격에 신이 나서 카트에 이것저것 담다가 돌아오는 길에 무척 애를 먹은 날도 있다. 앞뒤 재지 않고 순전히 본능적인 방법으로 장을 보는 그런 대책 없는 인간이 나인 것이다. 더 웃긴 사실은 내가 어떤 요리를 해 먹을지 생각을 하고 장을 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직감에 따라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아와서 부엌 테이블에 펼쳐놓고는 이 품목들을 어떻게 먹을만한 형태로 조합, 조리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식사를 하기 전 완성된 요리를 접시 위에 올려보면 식전이 아니라 식사 후로 보일 정도로 형편없는 꼴인 경우가 허다했다. 오븐을 잘 사용할 줄 모른다는 점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한국에선 가스레인지만 사용했다보니 간단한 제품도 오븐에 조리를 하려면 꽤 애를 먹었다. 그렇게 마트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해 먹고 나면 시간은 벌써 오전에서 오후로, 낮에서 저녁으로 훌쩍 흘러가버렸다. 신기한 체험이었다.
설거지를 쌓아둔 채 그대로 침대 위에 눕는다. 그리고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며 현재의 나 자신을 자각하고 동시에 그동안 내 주변을 감싸고 있던 관계들을 떠올린다. 한국에서 각자의 위치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내 가족, 친구들... 나는 이곳에 무엇을 위해, 왜 왔을까? 도대체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그림을 계속 그려야 할까? 다른 기술이라도 배워봐야 할까? 독일어는? 왜 독일? 이런 사춘기 학생 같은 질문을 지금 이 나이에...? 겉보기엔 세상 누구보다도 편한 팔자의 모습이지만, 그런 질문이 날 에워싸고 현실을 자각하게 될 때마다 천장이 아래로 날 짓누르는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면 몸을 일으켜 어디로든 나가자는 생각을 하고 애써 밖으로 나갈 이유를 만들었다. 한 동안은 이런 하루의 연속이었다.
비 내리는 어느 저녁, 컴퓨터를 하다가 우연히 베를린 유학생 커뮤니티에 '맥도날드 빅맥 1유로 쿠폰!'이라는 글을 봤다. 행사 이미지를 폰에 저장해서 가져오면 1유로에 빅맥을 준다는 것이었다. '파격적이네...' 생각했다. 지출을 줄이고 싶었고 마침 저녁 해먹기도 귀찮던 찰나였던지라 우산을 들고 맥도날드로 향했다.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였다. 도착해서 주문을 하고 내 번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4-5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다. 모니터에는 주문 대기 번호가 적혀있었고 메뉴가 준비되면 직원이 직접 번호를 불러서 고객이 받아가는 시스템이었다. 그 시스템이 내게 조금 불리하다는 사실을 아는 데에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당시 초급 독일어 책으로 공부를 하던 나는, 숫자 독일어를 현지인의 입을 통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1(아인), 2(쯔바이), 3(드라이), 4(피어)... 한 자릿수까지는 그래도 더듬더듬 말하고 들을 수 있었지만 그때 나의 대기번호는 아쉽게도 389번쯤이었다. (독일어는 유난히 단어가 길기로 유명하다.) 목소리는 컸지만 말 속도가 빠르고 불친절해 보이는 직원은 빠르게 준비 완료된 메뉴의 번호를 외치고 있었다. 아무리 귀를 기울이고 노력해 봐도 그 소리는 내 귀에 외계어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던 찰나에 내 차례가 왔음을 알게 됐다. 왜냐하면 분주하던 프런트에 아무 고객도 나타나지 않았고, 주인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목청껏 번호를 외치는 직원과 나의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서둘러 번호표를 들고 직원에게 갔다. 직원은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빅맥을 건네줬다. 내 옆에 아빠 손을 잡고 있던 귀여운 남자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굳은 표정으로 날 이상히 쳐다보았다. 다시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임무는 완수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 맞은 생쥐꼴이 된 기분이었다. 독일어로 숫자 하나 제대로 못 알아듣는 서른 살 아저씨는 도대체 베를린에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버스정류장 전광판에 평창동계올림픽을 알리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날이 바로 올림픽 개막일이었다. 집에 들어와 노트북으로 개막식 생중계를 틀었다.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독일에서 보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당연하게도 내가 있는 곳은 낮인데 티브이 속의 풍경은 밤이었다. 목적의식을 갖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선수들을 보았고 그것을 보고 있는 내가 모니터를 통해 간간히 비치는 것을 보았다. 낮과 밤, 열정과 무기력. 모든 것이 상반된 그들과 나의 모습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저녁을 급하게 먹어서인지 속이 더부룩해져 산책을 하고 싶었다. 집을 나와 베를린 동물원 역 쪽으로 버스를 타고 산책을 했다. 역 근처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가게와 사람들을 구경했다. 삼삼오오 즐거운 목소리로 떠드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정처 없이 계속 걸었다. 갑자기 인터넷 뱅킹으로 돈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이 울렸다. '그럴 일이 없는데...' 확인해 보니 '예금결산이자'라는 이름으로 125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걷다 보니 오른편에 큰 쇼핑몰 건물 하나가 나왔다. 건물 꼭대기를 올려다보니 분홍색 글씨의 사인보드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거기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Life is beautiful'
그날 밤, 나는 세상이 나를 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