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이 계획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내던 나는 베를린에서 유학 중이거나 유학을 준비 중인 친구 몇몇을 가끔 만났다. 그들은 내게 새로운 친구를 소개해주기도 했는데, 한국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여러 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모두가 각자 자신만의 야심찬 목표를 갖고 이곳에 왔다. 처음엔 당연히 모든 게 무서웠고 힘들었지만 이제 많은 부분에서 적응을 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다만 상대방의 경험담에 깊이 몰입하다가 이내 다시 나의 입장으로 돌아와 현실을 자각하면 한숨 섞인 헛웃음이 나왔다. 공부? 취업? 그들에 비하면 난 그 무엇 하나 뾰족한 목적이나 계획 없이 이곳에 오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경험을 하는 일은 내게 여러모로 위로와 응원이 되었다. 모든 선택의 답은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나 아닌 다른 환경의 인생을 만나 거기에 내 인생을 비춰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수년간, 내 주변에는 유럽에서의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었다. 언어를 배우고 싶어서, 관심 있는 분야에 더욱 깊이 빠져보고 싶어서, 자신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사고방식에 지쳐서, 현재의 직업에 회의나 권태를 느껴서 떠난 사람 등... 저마다 그 이유는 달랐지만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한 선택으로 떠나는 그들의 모습이 내 눈엔 어딘지 멋지게 보였다. 내 생활에 쫓겨 지내다 보니 한 동안 그들의 소식을 제대로 묻거나 듣지 못했다. 그런데 유럽의 한가운데 덩그러니 떨어지니 잊고 살던 사람들의 안부가 다시금 궁금해지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들에게서 이젠 희미한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소식과 안부가 진심으로 궁금해 조심히 연락을 시도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사하게도 내 연락을 기쁘게 받아주었다. 더불어 다양한 방식의 친절까지 베풀어주었다.
수십 년간의 커리어를 자랑하던 디자인일을 접고 요리를 배우러 돌연 파리로 떠난 L누나, 초콜릿이건 빵이건 인테리어건 뭐든 제대로 맛보고 배우고 싶다며 아무 대책 없이 파리로 떠난 동창 B, 멋진 파티셰를 꿈꾸며 2년째 런던에서 생활하고 있는 K, 높은 입사경쟁률로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동반 취업했지만 과도한 직장 내 스트레스에 지쳐 사표를 던지고 런던으로 떠난 H부부까지. 늘 내 마음에 도전과 모험을 꿈꾸게 만들었던 그들이 유럽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특히 미대를 나와 겸임 교수, 대기업 디자인 회사에서 까지 일하다 모든 것을 접고 오직 요리를 시작하기 위해 파리로 온 누나 L은 내게 큰 용기와 위로를 주었다. 퇴사를 앞두고 우울이 깊어져 잠이 안 오던 어느 늦은 밤. 파리에 있는 누나에게 뜬금없이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 누나, 파리에서 지낼만해요? 저 곧 회사 관둬요.
그림도 이제 그만둘까 생각하고 있어요.
독일에서 기술이라도 배워볼까 생각해요.
사실 아무 계획이 없어요. 무서워요. "
" 잘 생각했어. 좋아. 뭐든지 할 수 있어.
나훔아 나도 계획 없어. 무계획이 계획이야."
무계획이 계획.
가장 힘들 때 들었던 그 말이 그 이후로도 곱씹을수록 달달한 맛이 나서
지금까지도 인생의 신조로 삼고 있다.
20년도 봄에 치러진 개인전 제목도 '계획은 없습니다'였다.
베를린에서 백수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파리에 있는 L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도착해서 어떻게 지내는지... 난 "밥은 적당히 대충 때우고, 오늘은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라고 솔직하게 내 건조한 일상을 전했다. 그러자 누나는 "할 거 없으면 파리 놀러 와. 떡볶이나 해 먹자"라고 했다. 이건 마치 이웃주민이 저녁에 떡볶이나 만들어먹자고 말하는 것과 같은 담백함이 아닌가. 마침 누나도 시간이 남고 그동안 지내던 큰 집을 얼마 후에 빼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한다고 그전에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스무 살 때, 함께 학교에서 제과제빵을 공부했던 동창생 B도 파리에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을 보러 파리에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인터넷 창을 열어 베를린 테겔에서 파리 오를리 공항행 티켓 가격을 알아봤다. 약 90유로. 한화로 12만 원 정도였다. 한국에 있을 때 제주도 항공 티켓이 이 정도 가격이었던 거 같은데... 이 가격으로 국경을 오갈 수 있다니. '확실히 유럽은 우리와 다른 세계구나' 생각하며 티켓을 예매했다.
밤 9시,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했다. L누나는 "Bienvenue à Paris.(파리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김나훔. 떡볶이를 먹으러 파리에 온 당신!!"이라고 적힌 A4용지를 들고 나를 맞이했다. 낯선 이국땅에서 이런 귀여운 환대라니, 오랜만에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늦은 밤 공항은 한산했고 우리가 탄 버스도 그랬다. 제법 추운 날씨였다. 누나는 내게 "올 겨울 들어 파리의 가장 추운 날 이래. 아주 좋은 날 왔어"라고 말하며 웃었다. 조용한 버스 안에서 우린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창밖으로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딱히 에펠탑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처음 보는 그 모습에 역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전부터 서울의 남산타워가 조금만 더 아름다운 조명으로 장식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하고 어김없이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에 잠겼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누나는 요리 신동(?)의 포스를 뽐내며 칼칼한 한식이 먹고 싶다고 했던 내 말을 기억하고 떡볶이와 함께 맛있는 프랑스 맥주를 꺼내왔다. 밤늦게 이것저것 짐들을 들고 오느라 노곤한 상태였는데 짐을 풀자마자 이런 멋진 대접을 해주니 굳었던 몸과 마음이 단번에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10년 전에 요리를 하고 있던 나와 디자인을 하고 있던 누나. 지금은 누나가 요리를 하고 있고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어. 그치?"
우리는 지금 상황을 새삼 신기해하며 계속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금 우리의 모습과 더욱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의 장소 파리. 그곳에서 일주일간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