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살아남은 내 친구 K
파리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파리에 있는 동안 L누나는 매일 근사한 아침을 제공해 줬다. 그날은 쫀득한 바게트와 버터, 사과, 복숭아 그리고 적당히 거품이 올라간 커피였다. 누나는 볼 일이 있어 먼저 외출을 했다. 나는 천천히 집 안팎을 구경했다. 어제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주변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편엔 푹신한 소파, 채광이 좋은 커다란 창문이 있었고 정면의 벽엔 다양한 예술가들의 그림과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 집 안의 분위기는 편안하고 아늑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옆집 건물과 안뜰의 정원이 내려다 보였다. 잘 정돈된 화단과 화분들을 둘러보았다. '프랑스 주택은 이런 느낌이군' 생각하며 여유를 느끼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젯밤 날씨가 좀 춥다고 느끼긴 했는데 눈까지 내릴 줄이야... 어영부영하다 보니 벌써 시간은 정오를 넘겼다. 나는 목도리를 단단히 둘러매고 밖을 나섰다.
그날은 대학 동기 K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약 십 년 전 우리는 학교에서 요리를 공부하며 알게 됐다. 나는 일찍이 전혀 다른 진로를 택해 살아갔지만 K는 여전히 전공을 살려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무작정 파리로 넘어갔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2013년. 어느 날 갑작스럽게 녀석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홍대 근처 고기뷔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당시 우리의 가벼운 주머니와 커다란 위를 고려한 최적의 장소였다.
K는 말수는 많지 않아도 종종 유치한 농담을 하며 싱글벙글 잘 웃는 친구다. 그날도 역시 밝은 모습이었지만 가끔씩 마음이 복잡해 보이는듯한 표정이 포착됐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파리로 떠날 날이 정말 며칠 남지 않은 것이다. 이제 막 회사생활 2년 차였던 나는 친구의 갑작스러운 도전이 그저 놀라울 다름이었다.
" 파리에 가서 뭐 할 생각인데? 과자? 초콜릿? 취업? 학교? "
" 딱 정한 건 아닌데~ 많은 걸 보고 배우고 싶어 디자인도 인테리어도 디저트도 전부~ "
이렇게 두루뭉술할 수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티켓과 비자를 제외한 나머지 준비는 전부 빈약해 보였고, 간간히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반쯤은 자포자기 심정 같아 보였다. 막연한 친구의 계획이 조금 염려스러웠다. 또 서글서글한 인상 때문인지 국내에서도 임금 체불로 고생한 적이 있고, 예전부터 힘든 일은 무작정 부딪혀보고 그 이후에 괴로워하는 친구였다. 물론 그 힘든 순간들을 매번 강한 인내심과 성실함으로 극복했지만 외국에서도 그런 방식이 통할지 의문이었다. 매사에 자기 속마음을 숨기고 당찬('척'인지도 모르겠지만) 모습을 잘 보여주던 친구였는데 그날만큼은 꽤 심정이 복잡해 보였다. 그 불안한 감정이 내게도 전달됐다. 분야는 다르지만 가슴이 이끄는 희미한 무언가를 막연히 좇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닮아있었다. 밥을 먹으며 서로 하소연과 위로를 주고받았다. K는 당시 회사생활을 하면서 퇴근 후 목적 없이 그림을 그리던 나를 뭐라도 되는 듯 멋있다고 치켜세워줬다. 난 웃으며 너스레 떨지 말라고 말했다. 평일 저녁, 홍대역 부근 대로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 버스정류장에서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렇게 약 5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친구가 일하고 있다는 디저트 가게 근처로 향했다. 거리엔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역 근처에 다다랐을 때, 멀리서 갈색 빵모자에 알록달록 목도리를 맨 K가 걸어왔다. 우린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야 내가 파리에 5년 동안 살면서 눈 내리는 걸 처음 봐~! 이런 날 파리에 오다니 너가 아주 축복을 받은 것 같다. 푸하하" 친구가 놀리듯 말했다. 전보다 훨씬 밝고 여유 있는 친구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산책을 하면서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을 향했다. 가는 데 시간이 꽤 걸렸고 미술관의 대기줄도 길었던 탓에 그동안 쌓인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부지리로 도망치듯 파리에 온 나에 비해 더 어린 시절 용기를 내 이곳으로 와 잘 적응하고 있는 K가 더없이 멋져 보였다. 늘 그렇듯 어느새 나는 인터뷰어가 되어 친구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가족과는 연락을 자주 하는지, 마지막으로 본건 언제인지, 보고 싶지는 않은지... 와 같은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가족, 친구들을 염려시킨 채 외국을 떠나온 나의 부채감과 그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으리라. 친구는 덤덤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부모님을 두고 왔다는 마음도 있지만 각자의 인생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고, 반대로 이곳의 터전을 잘 닦아놓으면 상황에 따라 부모님을 모셔올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삶의 방식이라는 게 정답은 없지만 친구의 그런 태도가 당시의 나로선 존경스럽고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우리 입장 차례가 다가왔다.
전시를 관람하고 밖으로 나오니 날은 어두워졌고 하늘엔 달이 차올랐다. 길거리엔 분주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 둘 간판에 불이 켜지고 맛있는 요리 냄새와 시끌벅적한 저녁 소리가 내 감각을 자극했다. 배가 고팠다. 저녁 자리에는 K의 여자친구인 L도 함께 했다. 늘 어리바리하고 썰렁한 개그를 던지는 이 친구와 몇 년을 함께 지내는 여자친구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무척 궁금했다.
퇴근 후 친구의 여자친구인 L이 합류했고 우린 인사를 나눴다. 자신감 넘치는 눈빛과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둘은 즐겨 가는 가게가 있다며 그곳으로 날 안내했다. 걸어가는 길에도 아담한 상점들이 즐비해 천천히 구경하며 걷느라 내 걸음은 느릿느릿했다. 고맙게도 둘은 내 보폭에 맞추어 천천히 걸어주었다.
낮동안 서로의 최근 근황을 나눴다면, 저녁식사 때는 5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금은 디저트 가게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잘 지내고 있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어떻게 지냈는지 무척 궁금했다. 파리로 떠나기 전 서울에서 만난 뒤로는 나도 내 앞길만 보며 살았기에 우린 약 5년 정도 전혀 근황을 주고받지 못했다. 싱글벙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K는 지나온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예상보다 훨씬 충격적이고 어떤 부분에선 굴욕적이기까지 해서 싱글벙글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저 미소가 실로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K는 '인생은 실전이다'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스타일이다. 한국에서도 그 어떤 고난 앞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인내하며 힘든 제과제빵업계에서 수년간을 버텨낸 그다. 하지만 인생이 실전이긴 해도 인터넷 검색의 도움을 받으면 그 난이도가 제법 많이 낮아진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그는 처음 한국에서 파리로 올 땐 공항이 시내에 인접해 있는 줄 알고 교통편도 알아보지 않고 그냥 공항에 내렸다. 시내로 진입을 해야 하는데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아 거의 울기 직전, 기적적으로 한 한국인 유학생의 도움을 받아 유학원을 찾아갔다. 이뿐만이 아니다. 파리에선 세제나 이불 같은 것들이 비쌀 것 같아서 6개월치 정도 사용할 세탁세제와 두꺼운 이불 그리고 통기타까지(그는 의외로 낭만파다.) 챙겨서 비행기 탑승수속을 했다고 한다. 해외를 처음 나가보는 그는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수화물의 무게가 있다는 것을 몰랐고 때문에 몇 배의 초과 수화물 비용을 지불해 파리에 도착했다. 이런 편리의 시대에 아직도 이런 막무가내식의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 날 아연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돌아서 가는 삶 속에서 또 배움이 있다면 있겠지...'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난 배꼽을 잡고 웃다가 다시 심각해졌다가를 반복했다.
물론 모든 것이 K 자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외부 상황도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한국의 유학원을 통해 방을 구했는데 사전에 나눈 이야기와 달리 무척 위험한 우범지역의 난방도 안 되는 10층 숙소에 살게 된 일, 한 밤중 소매치기를 만나 지갑도 핸드폰도 전부 잃어버려 길바닥에 누워버린 일, 새벽 아르바이트 출근길에 괴한을 만나 유리병으로 머리를 가격 당했던 일 (그는 머리에 흐르는 피를 적당히 닦아내고 출근을 했다고 한다.),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출근날이 아닌데도 한인마트에 출근해서 직원식당의 밥을 얻어먹고 미안해서 서빙, 청소를 도왔던 일... 등 도저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수많은 고난들이 그에게 불어닥쳤다. 싱글벙글 만화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는듯한 그의 쿨한 태도에 나는 일종의 존경심 같은 것이 생겨났다.
'이렇게 대책 없는 사람도 쉽게 망하거나 죽지 않는구나'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내 속으로 생각했다. 일종의 위안이기도 했다.
그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한인마트에서 바로 운명의 여자친구 L을 만났다. 그녀는 파리의 패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K와는 정반대로 하루하루 철저한 계획 속에 살고 있으며 단 한 번도 자기가 계획하지 않은 대로 일이 처리된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나로선 솔직히 그 말을 완전 믿을 수가 없었지만...) 매사에 기민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다. 이런 K와 L이라니... 난 둘을 보며 K가 믿고 있는 신이 어쩌면 이 친구에게만은 정말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그는 조금씩 그녀와 함께 파리 생활에 적응을 해나가고 있었다.
당시 둘은 새로 이사할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K는 저렴하지만 조금 춥고 불편한 집을, L은 약간 투자를 하더라도 쾌적한 환경의 집에서 살고 싶다고 의견을 다투는 중이었다. 나는 전적으로 L의 의견을 따르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아마 그렇게 결정된 듯 보였다. 난 이제 K가 좀 더 인갑답게 안락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두 사람은 디저트 가게를 차릴 계획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L은 인테리어부터 브랜딩 작업까지 벌써 큰 가닥을 잡았다며 몇 가지 시안과 샘플사진들을 내게 보여줬다. 그녀는 내 예상보다 훨씬 디테일한 내용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둘 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중인데도 이렇게 미리 사업에 대한 구상까지 잡아놓았다니... 앞선 K와는 정반대의 느낌으로 L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를 옮겨가며 여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버렸고 지하철이 끊길 시간이 되었다. 우린 같은 역으로 내려갔지만 돌아가는 방향은 반대였다. 건너편으로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타국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그렇게 둘은 떠났고 나는 잠시 멍해졌다가 이윽고 습관처럼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졌다.
난 누구? 여긴 어디?
내 삶은 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거지?
불안하고 고독한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당시 날짜는 2018년 2월 말.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23년 9월. 현재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귀여운 아들을 낳아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며 당시의 계획대로 파리 중심에 디저트 가게를 열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구글맵에 검색을 해보니 벌써 400개에 가까운 리뷰로 파리의 시민과 여행객들에게 사랑받는 가게가 되었다. 작년 우리 부부도 파리로 여행을 갔을 때 두 사람을 만나 식사도 하고 그간의 안부를 나눴다. 딱 십 년 전 홍대 앞 버스정류장에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서로의 길을 응원해 주던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마음 한편이 뭉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