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hum Aug 19. 2023

학자금을 전부 상환한 날, 꿈의 몰락

이제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느 정도 프리랜서 일이 안전 궤도에 오르고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직 회사를 관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장님도 나의 직장생활과 개인 일 사이의 밸런스를 존중해 주셨고 회사에서의 내 역할도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충분히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정도였다. 물론  언젠가는 퇴사를 하고 독립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 안락함에 안주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내 인생의 커다란 산처럼 여기던 학자금 대출을 갚았던 날을 기억한다. 당시 난 카톡 프로필 상태메시지에 남은 대출금 액수를 적어놓고 조금씩 갚아나가면서 숫자를 바꾸는 것에 큰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숫자는 나만 알아볼 수 있도록 뒤죽박죽 암호처럼 적어놓았다. 종종 친구들은 바꾼 프로필 상태명이 대체 무슨 의미냐고 물어봤고 난 비밀이라고 했다. 마치 테트리스 게임을 하듯 대출금을 착착 없애나갔다. 거기엔 묘한 재미와 쾌감 같은 것이 있었다. 돈을 모으는 재미가 아니라 갚아나가는 재미가 있을 수도 있구나-하고 신기해했다.  상환 마지막 날, 은행 앱을 열었을 때 더 이상 상환할 금액이 없다는 문구를 확인한 뒤 회사 앞에 있는 은행 건물을 올려다보며 감격의 순간을 맛보았다. 그리고 이내 머릿속엔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이제는 어떤 목표로 살아야 하지?'



내 인생 (2018)


 대출금을 갚고 나서 나는 약간의 혼란을 겪었다. 이제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 내 삶의 큰 화두로 떠올랐다. 마이너스였던 돈을 제로로 만들었으니 이제 남은 건 모아가는 일이었을 텐데도, 그 모으는 일에 약간의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이런 순서로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돈은 왜 모으는 걸까?', '집을 사기 위해서인가?', '지금 서울의 아파트는 얼마인가?', '그런 큰돈을 버는 건 또 얼마나 걸릴 것인가', '열심히 돈을 모아 집을 샀다고 치면?', '그 집 방안에 들어가 있는 내 모습이 최종 행복의 한 장면인가?'... 정녕 그게 장기적으로 꿈꿔야 할 내 인생의 방향일까. 이런저런 사춘기 소년 같은 질문이 머리에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그때 인생에서 돈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나 삶의 목적 같은 것들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명확한 답을 내리진 못했다. 철없는 생각일지 몰라도 당장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저축만 해나가는 건 뭔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선 시간이 나는 대로 여행을 갔다. 작은 회사에서 사장님과 둘이 일을 하다 보니 일주일 이상 휴가를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때문에 주말을 끼고 3-5일 내로 갈 수 있는 일본이나 대만으로 몇 차례 여행을 갔다. 딱히 어떤 장소에 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고 그저 이방인이 되어 지금의 환경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건대, 당시 회사에 묶여 지낸 지가 꽤 된 나는 약간의 권태감에 빠져있었고 때문에 스스로에게 꾸준히 자유를 상기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그중 그래도 가장 뿌듯한 여행은 어머니와 함께 일본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는 어머니에게 좀 더 다양한 삶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도 종종 그녀는 자랑처럼 그날의 추억을 회상한다.


어릴 적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살 엄두를 내지 못했던 물건들을 과감히 사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랄까... 그런 이상한 명분의 지출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싼 차나 명품을 살 정도로 큰돈을 번 것은 아니었다. 나라는 인간이 부릴 수 있는 사치라는 것도 사실 하찮은 수준이어서, 그저 체감상 '이 정도면 풍족하다'라는 느낌이 있었다.


내 근무지였던 인현동 인쇄골목에 꽃상가 건물


 그렇게 투잡으로 생활을 이어온 지 6년째 되던 해. 내 인생에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선 다양한 작업 의뢰로 정점을 찍었던 4년차를 기점으로 천천히 내 개인 일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 정도가 급격하진 않았기에 나도 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회사 사정도 그다지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말을 사장님께 우연히 듣게 되었다. 불현듯 위기감이 들어 나는 통장내역을 살펴보았다. 반년 간 회사 급여를 제외하고는 아무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다.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머리가 띵- 해지는 것을 느꼈다. 불안감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내 개인 일이 완벽하게 궤도에 오르면 그때 회사를 관두고 전업작가로 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 경제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공황이라는 게 이런 느낌일까? 갑자기 땀이 나고 속이 메슥거렸다. 바깥바람을 쐬러 사무실 근처 청계천으로 향했다. 강가 계단에 걸터앉아 냉정하게 현재 내 상황을 파악해보려고 했다. 뭔가가 잘못 흘러가고 있었다.


 '그동안 나에게 쏟아지던 관심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 정도로 일이 사라질 때까지 난 왜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나', '다시 사람들에게 관심받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생각보다 빠르게 일이 잘 풀린다 했는데, 돌이켜보니 이제껏 소모품처럼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살아왔다는 생각,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거의 꿈의 목적지에 다 왔다고 믿었는데, 눈앞엔 브루마블처럼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가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허무와 불안이 엄습하면서 다시 어지럼증이 도졌다. 나는 그렇게 청계천 계단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일렁이는 하천을 바라보았다. 그 위로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군중들이 보였다. 눈부신 태양 아래, 강가의 나무와 풀들은 유감없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날 제외한 모든 것들이 멀쩡히 돌아가고 심지어 눈부시게 아름다울 때, 그 안에 대비되는 나의 우울은 한층 더 짙어진다는 것을.


꿈의 도시 서울은 천천히 내게서 멀어지는 것 같았다.






이전 01화 꿈의 도시 서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