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느 정도 프리랜서 일이 안전 궤도에 오르고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직 회사를 관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장님도 나의 직장생활과 개인 일 사이의 밸런스를 존중해 주셨고 회사에서의 내 역할도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충분히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정도였다. 물론 언젠가는 퇴사를 하고 독립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 안락함에 안주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내 인생의 커다란 산처럼 여기던 학자금 대출을 갚았던 날을 기억한다. 당시 난 카톡 프로필 상태메시지에 남은 대출금 액수를 적어놓고 조금씩 갚아나가면서 숫자를 바꾸는 것에 큰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숫자는 나만 알아볼 수 있도록 뒤죽박죽 암호처럼 적어놓았다. 종종 친구들은 바꾼 프로필 상태명이 대체 무슨 의미냐고 물어봤고 난 비밀이라고 했다. 마치 테트리스 게임을 하듯 대출금을 착착 없애나갔다. 거기엔 묘한 재미와 쾌감 같은 것이 있었다. 돈을 모으는 재미가 아니라 갚아나가는 재미가 있을 수도 있구나-하고 신기해했다. 상환 마지막 날, 은행 앱을 열었을 때 더 이상 상환할 금액이 없다는 문구를 확인한 뒤 회사 앞에 있는 은행 건물을 올려다보며 감격의 순간을 맛보았다. 그리고 이내 머릿속엔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이제는 어떤 목표로 살아야 하지?'
대출금을 갚고 나서 나는 약간의 혼란을 겪었다. 이제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 내 삶의 큰 화두로 떠올랐다. 마이너스였던 돈을 제로로 만들었으니 이제 남은 건 모아가는 일이었을 텐데도, 그 모으는 일에 약간의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이런 순서로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돈은 왜 모으는 걸까?', '집을 사기 위해서인가?', '지금 서울의 아파트는 얼마인가?', '그런 큰돈을 버는 건 또 얼마나 걸릴 것인가', '열심히 돈을 모아 집을 샀다고 치면?', '그 집 방안에 들어가 있는 내 모습이 최종 행복의 한 장면인가?'... 정녕 그게 장기적으로 꿈꿔야 할 내 인생의 방향일까. 이런저런 사춘기 소년 같은 질문이 머리에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그때 인생에서 돈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나 삶의 목적 같은 것들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명확한 답을 내리진 못했다. 철없는 생각일지 몰라도 당장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저축만 해나가는 건 뭔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선 시간이 나는 대로 여행을 갔다. 작은 회사에서 사장님과 둘이 일을 하다 보니 일주일 이상 휴가를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때문에 주말을 끼고 3-5일 내로 갈 수 있는 일본이나 대만으로 몇 차례 여행을 갔다. 딱히 어떤 장소에 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고 그저 이방인이 되어 지금의 환경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건대, 당시 회사에 묶여 지낸 지가 꽤 된 나는 약간의 권태감에 빠져있었고 때문에 스스로에게 꾸준히 자유를 상기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그중 그래도 가장 뿌듯한 여행은 어머니와 함께 일본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는 어머니에게 좀 더 다양한 삶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도 종종 그녀는 자랑처럼 그날의 추억을 회상한다.
어릴 적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살 엄두를 내지 못했던 물건들을 과감히 사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랄까... 그런 이상한 명분의 지출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싼 차나 명품을 살 정도로 큰돈을 번 것은 아니었다. 나라는 인간이 부릴 수 있는 사치라는 것도 사실 하찮은 수준이어서, 그저 체감상 '이 정도면 풍족하다'라는 느낌이 있었다.
그렇게 투잡으로 생활을 이어온 지 6년째 되던 해. 내 인생에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선 다양한 작업 의뢰로 정점을 찍었던 4년차를 기점으로 천천히 내 개인 일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 정도가 급격하진 않았기에 나도 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회사 사정도 그다지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말을 사장님께 우연히 듣게 되었다. 불현듯 위기감이 들어 나는 통장내역을 살펴보았다. 반년 간 회사 급여를 제외하고는 아무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다.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머리가 띵- 해지는 것을 느꼈다. 불안감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내 개인 일이 완벽하게 궤도에 오르면 그때 회사를 관두고 전업작가로 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 경제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공황이라는 게 이런 느낌일까? 갑자기 땀이 나고 속이 메슥거렸다. 바깥바람을 쐬러 사무실 근처 청계천으로 향했다. 강가 계단에 걸터앉아 냉정하게 현재 내 상황을 파악해보려고 했다. 뭔가가 잘못 흘러가고 있었다.
'그동안 나에게 쏟아지던 관심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 정도로 일이 사라질 때까지 난 왜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나', '다시 사람들에게 관심받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생각보다 빠르게 일이 잘 풀린다 했는데, 돌이켜보니 이제껏 소모품처럼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살아왔다는 생각,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거의 꿈의 목적지에 다 왔다고 믿었는데, 눈앞엔 브루마블처럼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가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허무와 불안이 엄습하면서 다시 어지럼증이 도졌다. 나는 그렇게 청계천 계단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일렁이는 하천을 바라보았다. 그 위로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군중들이 보였다. 눈부신 태양 아래, 강가의 나무와 풀들은 유감없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날 제외한 모든 것들이 멀쩡히 돌아가고 심지어 눈부시게 아름다울 때, 그 안에 대비되는 나의 우울은 한층 더 짙어진다는 것을.
꿈의 도시 서울은 천천히 내게서 멀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