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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Oct 14. 2023

독일어도 영어도 못하고 생각만 많은 아저씨

이윽고 슬픈 외국어, 자동 묵언수행


 봄이 가까워질 무렵, 어학원에 가서 독일어 코스 4개월 과정을 무작정 끊었다. 독일에서의 진학이나 취업을 목표로 어학을 배우는 주변 친구들과 달리 나는 별 다른 목적이 없었다. 그저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물론 외국어를 배우고 그 언어를 통해 좀 더 새로운 관점과 시야를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당장 그런 것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베를린의 경우에는 다양한 외국인들이 살고 있는 글로벌 도시이기 때문에 독일어가 안된다면 영어로도 생활에 불편이 없는 도시다. 하지만 난 한국에서 영어공부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 하는 심정으로 매일을 보냈다. 


 의지할 언어가 없는 상태로 보내는 매일매일은 답답함의 연속이었고 때로는 슬픔을 동반하기도 했다. 왜 여여기까지 와서 시키지도 않은 고생을 이렇게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몇 번이고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기의 백지장 같은 경험은 갓난아기 때 이후로는 처음 해보는 제법 흥미로운 일이기도 했다. 듣는 귀와 말할 입이 역할을 못하니 자연스럽게 그 외의 감각들은 더욱 예민하고 섬세해졌다. 사람들의 표정이나 제스처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음성 그 자체에 담긴 감정 같은 것들을 전달받기 위해 애썼다. 논리적인 것보다 피부로 느껴지는 직접적이고 원시적인 생각들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특히, 어린 시절에나 떠올렸을 법한 뚱딴지같은 질문들이 내 머릿속에 자주 떠올랐다. 남의 눈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베를린의 환경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봄 햇살에 어디를 가도 나는 실로 자유롭다는 기분을 느꼈다. 다양한 인종, 형형색색 유행의 흐름 따위는 읽을 수도 없는 무분별한 패션들, 장르를 알 수 없는 그림, 노래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내 눈에 포착됐다. 누군가에게 외국어로 말을 못 한다 뿐이지 머릿속엔 더 다양한 생각들과 의견이 넘쳐흐르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더라도 적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어떤 감정이 뭉게뭉게 피어날 때마다 SNS에 글을 썼고 손으로 쓱쓱 그림까지 그려 나름 '그림일기'라는 테마로 기록을 했다. 아래에 그 글 몇 개를 소개해본다. 어쩌면 유치하고 투박한 글이라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그 시기의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 삶의 본질적인 부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 - 18년 4월 17일

 며칠 전, 집 앞 나무에 미미하게 보였던 초록 점들이 금세 밝고 눈부신 잎들로 활짝 돋아났다.

자연은 무엇보다 상냥하고 고요하며 거부할 수 없이 아름답다.



[어학원 친구들] - 18년 4월 19일

 내가 다니는 어학원 같은 반에는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루마니아, 브라질, 페루, 콜롬비아, 스페인, 영국 국적의 사람들이 있다. (축구 잘하는 나라 천지다.) 처음 학원에 간 날, 선생님은 쪽지에 각자 자신의 나라를 적고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있도록 지도에 붙여보자고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유럽, 남미 쪽에 몰려서 서로 쪽지를 붙일 자리가 없을 정도였고 나만 먼 땅 한반도에 쪽지를 붙였다. (코딱지만 한 크기에 '남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했다.) 나는 그 커다란 지도를 보면서 새삼 반도의 작은 우리나라를 실감했고 위로는 북한이 가로 막고 있는 현 상황이 섬나라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한국어를 쓰지않고 독일어로만 소통할 수 있도록 같은 반에 한국인이 없기를 내심 바랬는데 막상 한국인은커녕 동양인도 없으니 이게 잘 됐다고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어순도 다르고 영어도 못하고... 그저 맨 앞자리에 앉아서 악착같이 쫓아가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어느 날 독일어 선생님 Mira가 나를 불렀다. 그녀는 내게 "여기 학생들 중 너희 나라만 알파벳이 다르네. 힘들지?"라고 말하며 천천히 열심히 해보자고 말해주었다. 그런 세심한 말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그들의 눈에 나는 어떻게 보일까 늘 궁금하다. 하루종일 커다란 눈, 툭 튀어나온 눈썹에 코 큰 사람들만 보다가 지하철 창문에 비치는 내 얼굴을 문득 봤을 때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이방인으로의 삶이 싫지만은 않다. 어쩌면 한국에서도 난 늘 이방인이라는 기분으로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자유롭지만 살벌한 베를린의 대중교통 시스템] - 18년 4월 24일

 베를린의 대중교통에는 카드를 찍거나 돈을 내는 개찰구가 따로 없다. 역에 처음 갔을 때는 표 검사하는 사람도 없이 탑승구가 자유롭게 오픈되어 있어 당황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티켓은 알아서 구입하는 거고 불시에 사복 직원이 들이닥쳐 "티켓 보여줘"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티켓이 없으면 약 30배의 벌금을 걷는다. 현금이 없다는 핑계는 안 먹힌다. 왜냐하면 친절하게 카드기를 들고 다니니까... 사복 직원에게 걸리는 독일인을 본 적이 있는데 그동안의 무임승차로 본전은 뽑았는지 생각보다 굉장히 쿨한 태도로 벌금을 지불하는 것을 봤다. 사복직원을 만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언제는 나가다가 한번, 돌아올 때 한번 하루에 연속 두 번 만난 적이 있어서 오늘은 한번 쫄깃한 마음으로 돈 좀 굳혀볼까-하는 생각은 아예 접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자유롭고 살벌한 규율이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빨주노초파남보 다양한 사람들] - 18년 4월 25일

 인종에 대한 차별이나 뭐 그런 이야기는 아니고, 난 그냥 순수하게 아직도 나와 다른 종류의 피부색과 머리카락을 가진 외국인...아니(여기선 내가 외국인이지) 독일 내 여러 인종의 내외국인들을 보는 일이 흥미롭고 재밌다. 어쩜 저렇게 눈동자에서 하늘색, 파란색 빛이 날 수 있으며 어떻게 피부가 저 정도로 까맣고 탄력 있게 보일 수 있을까? 다리, 머리, 가슴에서 어찌 저런 미칠듯한 꼬불꼬불 털들이 수북하게 뿜어져 나올 수 있으며 또 어쩜 똑같은 두피에서 금색, 붉은색 머리카락이 나오는 걸까-하고 생각한다. 이토록 다양한 세상의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나는 자연의 다양성에 감탄한다. 그렇게 가지각색의 인파들을 구경하다 보면 눈동자가 오렌지색이 아닐 이유는 무엇이고 피부가 흑과 백으로 표범 같으면 안 될 건 또 무엇이며 머리카락은 민트색으로 나지 않을 이유는 또 뭘까 생각해 본다. 신이 있다면 다음 세상에는 좀 더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잘게 쪼개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피부색에 대한 우월감, 차별, 박해도 없어지고 천편일률적인 성형이나 미의 기준도 뒤집히지 않을까? 의식의 흐름대로 마구 적다 보니 어느덧 나는 또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모를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군...



[개를 많이 키우는 독일인들] - 18년 4월 26일

 독일 사람들은 개를 정말 많이 키운다. 조금 과장해서 5명 중에 1명은 개를 키우는 것 같다. 1인 가구가 많아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은듯하다. 태어날 때부터 스무 살까지는 쭉 나도 개를 키웠어서 말 못 하는 동물이지만 개를 키우면서 느끼게 되는 정서적인 안정감과 위로를 너무 잘 안다. 그리고 한 생명체를 키우는 일이 육아만큼은 아니지만 소모되는 물질적 감정적 비용이 꽤 크다는 사실도 안다. 나도 개 참 좋아하는데... 막연하게 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 낯선 땅에서 나 자신이나 잘 키워야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니' 생각하면서 고개를 가로젓는다.



[왜 하늘이 가깝게 느껴질까?] - 18년 4월 27일

 유럽 도시의 하늘은 서울에 비해 푸르고 또 왠지 가깝게 느껴진다. 그 이유를 그냥 내 멋대로 생각해 봤는데

첫째로는 최근 한국에서 크게 대두되고 있는 미세먼지 때문인 것 같고, 지금 말하고자 하는 또 하나는 서울의 높고 빽빽하게 세워진 아파트, 고층빌딩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갔던 베를린, 파리, 암스테르담, 런던은 일단 수도여도 그렇게 서울만큼 고층 빌딩이 가득 차 있지는 않았다. 아마 급격한 경제발전과 좁은 영토, 서울중심의 인구과밀 탓도 있을 거다. 가정이 생긴다면 내 가족들은 푸른 하늘과 밤하늘의 별들을 편하게 올려다볼 수 있는 곳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 흙냄새도 맡으며 땅과 가깝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미 높게 자라 버린 건물들의 키가 낮아질 리는 만무하니 나중에 내가 살게 될 곳은 서울이 아닌 다른 지방의 어딘가가 되지 않을까. 닿을 듯 하늘과 가깝게 되고자 하고, 높은 곳에서 여유롭게 아래를 내려다보기 위해 진보된 기술력으로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정서는 반대의 효과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역설적으로 하늘을 가깝게 벗 삼기 위해서 오히려 우리 모두가 더 낮아져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사람들이 모두 두더지처럼 땅 속에 들어가 살면 되려 하늘 바라보기에는 참 좋겠다 싶다.)



[왜 안돼? Warum nicht?] - 18년 4월 30일

 "Warum Nicht?" 독일에 와서 가장 좋았던 말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가장 좋아할 말이다. 독일어 선생님이 각자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고 내가 자의든 실수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면 하는 말이다. 청소를 얼마나 자주 하니..라는 질문을 티비를 얼마나 자주 보니?라고 잘못 이해해서 '아예 안 봐 (안 해)'라고 했다. 교실 안의 친구들은 술렁였다.("나훔은 청소를 아예 안 한 대") 선생님은 당황하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Warum Nicht? (왜 안 돼?) hahaha" 나중에 사대를 파악하고 다시 정정했지만... 이런 유의 해프닝에서 볼 수 있는 선생님의 태도는 참 좋다. 창피하지만 하루는 학원 끝나고 용기 내 선생님한테 말했다. “난 영어를 진짜 못해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에게 선생님이 설명할 때 저만 이해를 못 할 때가 있어요. 수업이 끝나고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요? "아, 물론이에요. 나훔 그런 말 해줘서 고마워요." 질문을 하고 고맙다는 말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솔직히 정말 감동을 했다. 어릴 적에 궁금한 걸 물어보면 "그게 대체 왜 궁금하니?", "쓸데없는 질문하지 마.."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궁금한 게 있어도 목구멍에서 안으로 꾸역꾸역 삼켰던 일들이 정말 많았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했던 말이 "이게 뭐야"라고 한다. (지금 독일에서도 Was ist das...제일 많이 한다.) 할아버지가 집에 놀러 왔는데 내가 하도 할아버지를 보고 "이게 뭐야, 이게 뭐야" 하는 통에 크냥 집으로 돌아가버리셨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다. 내 호기심은 어릴 적부터 타고났던 건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어른이 되기까지도 내 안에는 늘 질문사항이 넘쳤지만 질문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했던 게 늘 아쉬웠다. 오바마와 한국 기자들의 질문권.. 사태? 만 봐도 우리는 질문하기보단 늘 답만 찾아가는 분위기에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틀린 것은 실패라는 개념이 박혀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난 "물어볼 게 있는데요.", "질문 있어요"라는 말에 늘 흥분되고 두근거리는데, 설령 아이들이 던지는 뚱딴지같은 소리에서 내가 평생 몰랐던 진리를 배우게 될 줄 누가 알까? 질문을 받고 거기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선생과 제자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믿는다. 쓸데없는 질문이라는 건 없다. 내가 꼭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온전히 물어보고 들을 수 있다면 죽기 전의 100세 노인이나 갓 태어난 아기의 생각을 듣고 싶다. 그보다 홍미로운 일은 없을 것 같다.


이탈리아 친구가 날 보면서

Warum? (왜) Nahum? (바굼~? 나훔~?) 이라고 장난치며 말한다.

어감도 비슷하고 그것마저도 좋다.



[마지막 이사] - 2023년 5월 5일

 오늘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는) 이사를 했다. 리모델링을 마치고 막 급하게 들어가는 집이라 청소하고 짐 정리를 하고 보니 벌써 새벽 두 시가 되었다. 베를린에 와서 이번이 벌써 네 번째 이사. 아마 큰 이변이 없는 이상 이곳에서 쭉 지낼 것 같다. 세 달 동안 파리, 런던, 암스테르담, 베를린 등... 가방과 캐리어를 들고 여기저기 잠자리를 일곱 번 옮겨 다니다 보니 어느새 나는 떠돌이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가끔 눈을 뜨면 몇 초 동안 '어? 여기 어디더라'했다가, 이내 '아~ 맞다.' 하고 현실을 파악하기도 했다. 문득 두꺼운 겨울옷들을 네 겹, 다섯 겹. 정말 말도 안 되게 껴입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던 버스 안이 생각난다. 벌써 계절은 바뀌어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졌고 그냥 외계어처럼 들리던 독일말들 중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하나라도 발견되면 혼자 신나서 킥킥댄다. 이제 오래 묵을 집도 구하게 되니 새삼 지금의 내 신세가 낯설게 느껴진다. 독일어 수업 중 날짜 공부를 하다가 내가 말했던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 노래를 독일어로 불러준 Mira 선생님, 그리고 그녀가 선물로 준 달고 맛있는 컵케익 한 조각, 말은 통하지 않아도 온갖 언어로 소통하는 어학원 친구들, 늘 바르고 즐거운 룸메 동생들, 사진 전공 친구들까지... 짧은 시간 소중한 기억과 인연이 제법 많이 생겼다. 얼마 전에는 반에서 제일 말이 없는 얌전한 페루 친구가 내가 쓴 일기를 페북 번역 기능을 통해 읽어봤다며 내용이 흥미롭다고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줬다. 불안불안 미숙하고 변칙적인 일상 속에서 이런 소소한 체험은 행복감을 준다. 비 온 뒤 땅이 조금씩 굳고 있는 걸까 싶다.



[대한민국 사람들만 미개한가?] - 18년 5월 7일

 내릴 곳에 버스가 정차하기 전에 미리 벌떡 일어나는 사람들, 탑승한 승객이 앉기 전에 출발해 버리는 기사님, 길 가면서 담배 피우고 아무 데나 꽁초를 버리는 사람, 뉴스에 전해지는 한국인들의 행태를 보며 욕하고 또 국민성을 운운하며 서로가 서로를 욕하기도 하지만 막상 여기서 조금 지내보니 딱히 베를린도 상황이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다. 독일 전체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게 베를린은 유난히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 심지어 이사 가는 길에는 길가에 털썩 주저앉아 용변을 보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처음엔 잘못 본 건가 싶기도 하고 슈퍼마리오 마냥 길을 가다가 어디 맨홀 같은데 빠져서 끼었나 싶었는데 낮은 자세로 앉아있는 그분의 표정은 차분해 보였고 몹시 경건했다. 어쩌면 이기주의는 국가나 소속을 떠나 그냥 개개인 인간 본성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자국이건 타국이건 "미개하다"며 싸잡아서 어떤 국가나 소속을 욕하고 매도하는 건 그거대로 더 미개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나저나 '미개하다'라는 표현은 덜 피었다, 개척이 덜 되었다"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왠지 의미보다 어감은 더 심한 욕처럼 느껴진다. (나만 그런가) 스스로 "우린 아직 덜 피었다"라는 태도는 어쩌면 인간의 성숙에는 더 도움이 되는 자세일지도...



[노래 같은 독일어] - 18년 5월 8일

 내가 외국어를 못 알아들어서 그렇겠지만 얼핏 들었을 때 외국어는 노래처럼 들리기도 한다. 독일에 오기 전에는 독일어가 무척 투박하고 딱딱한 언어라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들어보니 상당히 부드럽고 귀여운 언어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해도 가끔 독일어를 부드럽고 자상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독일어 듣기 좋네~' 싶다. 이건 비단 독일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말하는 한국어가 타인의 귀에는 어떤 식으로 들릴까 궁금해진다. 언어는 정보전달 수단이기 이전에 소리로 전달되는 감정의 파동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생각이 이어지다 보면 나도 한국에서 안 좋은 음성으로 과격한 단어의 한국어를 사용했던 건 아닌지... 충분히 여유롭게 전달할 수 있는 말들도 급하고 흥분된 상태로 말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인생의 목표가 있는데 하나는 악기 하나를 잘 다룰 줄 아는 것이고 둘째는 외국어 하나를 할 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높은 관점으로 바라보니 언어도 일종의 악기인 거고 악기도 일종의 언어인 게 아닌가 싶다. 새로운 언어(악기)를 배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당장 내가 다룰 수 있는 언어를 듣기 좋게 다듬는 일 또한 게을리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도 다 동물이 아닌가?] - 18년 5월 11일

 해만 뜨면 사자처럼 아무 데나 벌러덩 드러눕는 독일 사람들. 해는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떨어지고, 그런 상황에 적응이 안 되고 뭔가 이상했는데 또 시간이 지나니까 익숙해진다. 그런 여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 역시 조금씩 조바심을 내려놓고 여유를 갖게 되는듯하다. 나도 어릴 적에는 바닥 아무 곳에 앉거나 누우면 "옷 더러워진다...", "거지처럼 거긴 왜 눕냐. 소리를 많이 들어서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여기서 보게 되는 이런 상황들은 내심 반갑다. 사자처럼 벌러덩 눕는 게 뭐 어때. 우리도 똑같은 동물 아닌가.








이런 식으로 인상적인 일들을 그림일기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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