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hum Nov 04. 2023

인생을 너무 무겁고 거창하게만 생각했다.

저지르는 사람이 주인이다.

 베를린에서 지내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나로선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유럽에서도 특히 베를린은 수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 살기로 유명한 도시였다. 여러 인종이 모여있는 어학원 친구들, 길거리에 다양한 외모의 사람들을 보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어딘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물론 인상적으로 느꼈던 것이 단순히 외모적인 부분만은 아니었다. 각자 자유롭게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또한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내가 살던 집은 베를린장벽에서 가까웠는데 난 그 근방의 공원을 종종 산책했다. 평일에 어학원 가는 것 말고는 딱히 일정이 없었던 나는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길거리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봄이 다가오니 많은 사람들은 죄다 잔디 위에 누워 햇살을 받고 있었다. 웃통을 벗고 한 마리 사자처럼 햇살을 맞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난 조금 놀랐다. 겨울의 사악한 일조량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저 정도인가-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베를린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서울에서 사는 동안 나는 햇살을 얼마나 맞으며 살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반지하 집에서 출근을 준비하고 지상으로 올라와 역까지 잠깐 걸어가고 다시 또 지하로 들어가 지하철을 탄 뒤에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는 게 수년간 나의 일상이었다. 햇살을 보거나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는 거의 없이 살았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어쩌면 내가 우울증에 걸린 건 식물이 광합성을 못하면 죽는 것처럼 지극히 원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우리도 그저 한 마리의 동물일 뿐인데... 무슨 더 위대한 목표와 가치가 있다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들을 미루며 살아온 것일까' 나는 생각했다.


공원에는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하는 예술가들도 많았다. 특히 매주 일요일엔 공원에 벼룩시장이 열려 더욱 활발한 에너지를 만끽할 수 있었다. 꼭 공원에만 예술가들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하철에도 역에도 말 그대로 거리의 예술가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공원 산책을 하던 나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있는 한 남자를 본 일이 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그는 3유로 정도를 받고 낱말을 뽑아 즉흥적으로 시를 지어주는 사람이었다. 난 그 사람에게 시 한 편을 부탁했고, 남자는 깡통에서 낱말 두 개를 뽑더니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내게 짧은 시 한 편을 적어주었다. 나를 위한 시 한 편이라니 무척 근사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단순하지만 따뜻한 예술 하나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그런 거리의 예술가들을 보면서 마음 한편에 의문이 싹트는 것을 느꼈다. '과연 저걸로 생계유지가 된단 말인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정도는 되겠지만 저게 장기적으로 재산을 축적하거나 삶의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단 말인가?', '정말 한 번뿐인 인생, 저 정도로도 괜찮단 말인가?'


 그 이후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이런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는 단순히 먹고사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배꼽티를 입고 머리를 양갈래로 딴 남자(옆에 여친있음), 외계인처럼 연두색으로 모자, 티셔츠, 바지, 신발을 맞춰 입은 남자, 의미조차 알 수 없는 한글 타투를 등, 허리에 덕지덕지 도배한 여자, 강아지와 함께 길바닥에 앉아 이상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사람들까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베를린의 모습을 마주칠 때마다 머릿속에 그런 보수적인 생각이 꼭 떠올랐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그 개성 넘치는 사람들을 주변 누구 하나 특이하다거나 놀라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삶의 다양성을 보는 것이 일상인 사람들이었다. 전체적인 전경으로 봤을 때 가장 비상식적인 사람은 그 개성 넘치는 사람들을 동그란 눈으로 유난스럽게 지켜보는 바로 나 하나였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내 시야가 매우 딱딱하고 닫혀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무력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난 뭘 그렇게 인생을 정답이 있다는 식으로 여기고 또 딱딱한 자세로 살아온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삶은 무척 소중하고 단 한번뿐이기에 누구보다도 멋지고 가치 있는 선택을 심사숙고해야 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 사실 때문에라도 거침없이 달려들고 내 마음 가는 대로 흠뻑 살아봐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그저 유행이나 평판에 휩쓸려 ‘남 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매우 소박한 척 하지만 절대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모두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100명이 있다면 100가지 다양한 색을 뿜어내면서 살아가는 사회가 흥미롭고 서로가 행복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다양성'이란 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건강하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그 부분이 내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