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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Nov 18. 2023

신변정리를 위해 다시 한국으로

생존신고 및 관계 정리


 나의 베를린 생활이 반년쯤 지나고 있던 여름 무렵, 난 신변정리를 위해 잠시 서울에 돌아왔다. 대책 없이 떠나버린 뒤로 내 안위에 대해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할 필요를 느꼈다. (일종의 생존신고랄까...) 또한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어느 정도의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중이었던 그녀는 나와 달리 서울살이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고 무탈한 일상을 영위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당장의 계획은 없지만 다시 한국에 돌아오더라도 서울에서 살 생각은 접은 상태였다. 그동안 별문제 없이 연애를 이어왔지만 냉정하게 말해 장기적 관점으로는 우리 삶의 방향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종종 통화를 할 때에도 우리는 미래의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각자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어둡고 우울했던 과거와 달리 내 자존감이 조금씩 살아나고 삶의 방향을 수정해 나갈수록 그녀와 나 사이의 생각차이는 벌어졌다. 하지만 내 뜻을 굽힐 생각은 없었다. 사랑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나라는 토양이 바로서야 그 위에 우정이나 사랑도 싹틀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관계에 정체된 부분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에 돌아오게 된 것은 그 이유가 가장 컸다. 마음의 짐도 서로에 대한 감정도 어느 정도 정리를 해야, 해외에서든 국내에서든 내 다음 스텝을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독일에서 학업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귀국 후 맨 처음 먹은 음식은 동네 분식점 떡볶이




 반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지만 나로선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서울의 모습은 어딘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높은 빌딩과 엄청난 자동차, 인파까지... 특히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이나 옷 입는 스타일이 상당히 비슷해 보였다. 여자들의 메이크업 방식이나 남자들의 헤어스타일에도 어떠한 유행 같은 것이 감지되어서 정말 신기했다. (새로운 유행이 그 짧은 순간에 생겨난 것은 아니리라,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이 맞을거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인파를 바라보며 묘한 반가움과 동시에 어떤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서울을 벗어나 사는 최근에도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 중심지에 가면 묘한 감정에 휩싸이는데 이때의 감정과 비슷하다.


 공덕역 카페에서 오랜만에 여자친구를 만났다. 영상통화도 자주 했지만 역시 실제로 보니 반가웠다. 짧지 않은 시간을 만나온 우리지만 왠지 우리 사이에 어색한 기운이 흐르기도 했다. 그녀도 나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는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나 없이도 전혀 문제없이 잘 지냈던 그녀의 안부를 전해 들었다. 심지어 내가 없는 덕분에 그녀는 자기계발에 집중할 수 있었고 수영수업을 다녀 중급코스까지 마스터했다고 했다. 역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난 그녀의 이런 면을 좋아했다.) 어쨌든 오랜 시간 혼자 두어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건 내 과도한 오지랖일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유럽에서 지내는 동안 한식에 굶주렸던 나는 그녀와 그동안 가지 못했던 여러 밥집들을 돌아다녔다. 여름 햇살은 눈부셨고 뜨거웠다. 그녀는 특히 여름을 좋아했다. 오랜만에 나와 보내는 시간이 즐거운 듯 보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우리가 불편해할 주제의 이야기를 미루지 말고 꺼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며칠 뒤, 데이트를 마치고 그녀의 집에서 나는 숨겨왔던 이야기를 했다. 난 이제 서울에서 살 생각이 없다고, 다른 지역이 됐든 다른 나라가 됐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내 인생을 보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녀가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도, 굳이 새로운 모험을 시도할 의사가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로선 사실상 이별을 고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 잠깐의 정적 뒤에 우리는 헤어졌다. '이렇게 이별하게 되는구나'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그녀가 집에 찾아왔다. 어쩐지 결연한 표정의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나도 모험하면서 살고 싶어,

지금도 좋지만 새로운 시작도 좋아.

뭐가 됐든, 어디가 됐든 같이 해보자."


난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기쁜 마음 이전에 놀라운 마음이 들어 어안이 벙벙했다. 당차고 올곧은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뒤 우리는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한 날도 물론 특별한 계기가 되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날 아침의 그 일이 '너와 나, 각자의 길'에서 '우리의 길'로 삶의 방향이 합쳐진 변곡점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또 그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불안 가득한 내 삶의 방향에 동참하기로 결정한 지금의 아내에게 몹시 감사한 마음이다.




 가족들도 오랜만에 밝은 미소를 되찾은 나를 보며 안도했다. 그들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또 어떤 생각의 변화를 거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과거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일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과거에 대한 사과와 감사보단 지금 그리고 미래에 내가 어떤 자세로 당당히 살아가느냐가 가족들에게 내 마음의 빚을 갚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베를린에 있는 동안 어머니는 강릉으로 이사를 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강릉에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마침내 그 뜻을 이룬 것이다. 덕분에 나는 강릉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강릉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물론 스치듯 느꼈던 인상이긴 했지만, 유럽의 어느 곳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자연경관에 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유럽대륙의 가운데에 위치한 베를린에 살며 그토록 염원했던 바다도 실컷 보았다. 청소년기 수년간 속초에 살면서 지겹도록 보아왔던 바다인데 그날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파란 바다는 파란 바다대로, 노을 진 바다는 또 그 나름의 빛으로 나를 감동시켰다. 여행자의 시선이란 이리도 얄팍한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베를린을 떠나 국내에서 살게 된다면 이곳도 나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아시겠지만 그 일은 현실이 되었죠.)



해질녘 동해바다



 그렇게 한국에서 어느 정도의 신변정리를 마친 뒤 나는 다시 베를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유학생활을 시작할지 짐을 챙겨 다시 한국에 돌아올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처음 베를린으로 향할 때의 망연자실했던 마음가짐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내 무릎엔 한창 즐겨 읽고 있었던 하루키의 에세이 '먼 북소리'가 올려져 있었다. 타국에서 고군분투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다양한 경험으로 축적해 나가는 작가의 기록을 보며 내 가슴까지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책에서 작가가 언급한 먼 북소리의 울림이 내 귀에서도 희미하게 들리는 듯했다. 당장 어디로 흘러갈지는 알 수 없지만, 정신만 바짝 차린다면 그곳엔 분명 불안함을 대가로 한 설렘이나 성취감이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달팽이, 바다를 건너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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