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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쿠크다스

by 유자와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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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아직 뱃속에 있을 때, 에스더(Esther) 왕비 사진을 거울에 붙어 놓았다고 한다. 에스더처럼 예쁜 딸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에스더는 구약 성경 인물 중 한 명으로 여성의 일대기를 기록한 <에스더>라는 책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왕과 결혼한 에스더는 어느 날 왕이 전국으로 보낸 조서를 읽게 된다. 하만이라는 신하의 음모에 넘어간 왕이 그 나라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몇 날 몇 일에 몰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에스더는 유대인이었지만 왕은 그 사실을 몰랐다. 에스더는 민족을 살리기 위해 왕에게 간청하려 했으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왕의 부름 없이는 그 누구도 먼저 왕 앞에 설 수 없다는 법이었다.


왕의 허락 없이 모습을 드러내면 누구든 사형이었고, 혹여나 왕이 금 규(왕의 지팡이)를 내밀면 살 수 있었다. 에스더가 부름을 입지 못한지는 삼십 일째, 하지만 언제까지 왕의 부름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 삼일 후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뚜벅뚜벅 걸어 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다운 왕비를 보자 마음이 풀린 왕은 손에 잡고 있던 금 규를 내밀었다.


엄마가 거울에 붙여놓았던 사진 속 에스더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디서 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시지만, 추정컨대 여러 화가들이 그린 작품 중 하나였을 거다. 수많은 화가가 에스더를 상상하며 수많은 그림을 남겼다. 그 중 마음에 드는 그림 몇 점이 있다.


1869년 장프랑수아 포타엘은 예복을 차려 입고 서 있는 에스더의 모습을 그렸다. 화려한 장신구를 걸친 에스더는 결의를 다지며 생각을 정리하는 표정이다. 1879년 에드윈 롱이 그린 에스더 왕비는 왕 앞에 나가기 직전 옷을 입는 모습을 포착하고 있는데, 허공을 바라보는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에 근심이 가득하다. 1888년 어니스트 노르망드가 그린 작품에서 에스더는 손을 뻗어 하만을 가리키며 왕에게 그의 음모를 폭로하려 하는데 그 모습이 당당하다. 세 작품에서 에스더는 참으로 우아하다.


뱃속에서부터 에스더 그림을 보고 태어나서인지 나는 우아한 여성으로 자라났다. 라고 말하며 끝을 맺고 싶지만 주변 사람들이 돌을 던질 수 있으니 표현을 바꿔보기로 하자. 나는 언제나 우아한 여성이 되고 싶다. ‘우아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는 의미이다. 얼굴이 예쁘지 않아도, 몸매가 날씬하지 않아도 우아한 사람은 될 수 있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우아함의 기준도 개인마다 다르다.


나 역시 내 방식대로 우아하게 살려고 노력중인데, 그 중 하나가 단정하게 옷 입기다. 집 앞 편의점을 나가더라도 제대로 입고 나간다. 여기서 ‘제대로’란 늘어난 티셔츠와 헐렁한 추리닝 바지 대신 깨끗한 셔츠와 바지로 갈아입고 나간다는 뜻이다. 집 근처 초록마을에서 가끔 장을 본다. 그러다 직원 한 분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직원이 말했다.


“오늘은 일찍 퇴근하시나봐요.”

“어.,.제가 직장에 다니지는 않는데요.”

“어머, 그래요? 항상 단정하게 입고 오셔서 직장 다니시는 줄 알았어요.”


1986년 크라운에서 나온 쿠크다스는 이름부터가 우아하다. 쿠크 라고 발음할 때 모아진 입술 모양이 다스라고 말할 때 살짝 풀리며 우아한 표정이 된다. 쿠크다스는 벨기에 아스 지방에서 만든 쿠키를 뜻한다고 한다. 혼합분유 4.2%가 들어 있어 분유 맛이 나는, 곱디고운 쿠크다스는 홍차를 마실 때 함께하면 좋을 티푸드다.

포트넘메이슨 혹은 웨지우드 티팟에 잉글리쉬 블랙퍼스트 찻잎을 진하게 우린다. 3단 트레이에는 샌드위치, 스콘, 마카롱 등 쁘띠 디저트들이 차곡차곡 놓여 있다. 그리고 쿠크다스. 우선 뜨거운 차를 충분히 마신 후 쿠크다스를 한 입 먹어보라. 우아함으로 충만한 에프터눈 티타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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