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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Oct 21. 2023

28. 다이제초코


‘끼니’의 사전적 정의는 ‘아침, 점심, 저녁과 같이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밥‘이다.  ‘때우다’는 ‘다른 수단을 써서 어떤 일을 보충하거나 대충 해결하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끼니를 때운다는 건 당장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뭐라도 먹는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하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우리는 끼니를 때운다. 나는 천천히 식사를 하지만, 저녁마다 급하게 끼니를 때워야 할 시기가 있었다. 


 20대 중반 대형 학원에서 몇 년 동안 초중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나는 아이들과 코드가 잘 맞는다. 아이들도 선생님이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단번에 안다. 겉으로는 활짝 웃으며 다가가도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가까워지기 어렵다. 모든 사람에게는 고유의 기(氣)가 있고, 그 파동은 순식간에 상대방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착하고 성실한 아이를 사랑하는 건 쉽다. 하지만 장난을 심하게 치거나, 폭력적이거나, 버릇없는 아이를 사랑하려면 마음에서부터 아이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학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했고, 아이도 부모도 그 사실을 알았다. 내가 맡은 반은 활기가 넘쳤다. 엄마들은 아이의 형제자매도 그 반으로 넣어달라고 원장님께 요청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지만 동시에 끼니를 때울 정도로 바쁜 시간이기도 했다. 오후와 저녁 사이 수업이 없는 한 시간이 저녁 시간이었다. 시간표에 따라 저녁 시간은 달라졌다. 그때 나는 끼니를 때우기 위해 학원 옆 김밥 천국으로 달려가 김밥 한 줄을 샀다. 타지에서 자취를 하고 있어 돈은 항상 부족했고 저렴한 김밥은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한 끼 식사였다.

김밥은 또한 재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도 했다. 빨리 먹고 쉬어야 다음 수업을 진행할 에너지가 생겼다. 식사보다 중요한 건 쉼이었다.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쉬면서 머릿속으로 그날 마쳐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학원을 그만 둔 후 오랫동안 김밥을 먹지 않았다. 


 남편은 결혼 전에 전라도 광주에서 몇 년을 일했다. 본사는 서울이었는데 광주로 발령을 받은 후 몇몇 직원과 아파트에 함께 살며 근무를 했다. 세 명이 함께 살았는데, 그중에는 상사도 있었다. 평일에는 퇴근하고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끝이었지만 주말이 문제였다. 그 당시 남편에게는 여자 친구도, 광주에 사는 친구도 없었다. 하루 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어정쩡했고, 회사 직원이 다 같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기에도 어정쩡했다. 고민하던 남편은 금요일마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있는 대전으로 피신하는 방법을 택했다. 


매주 금요일 퇴근을 하면 남편은 송정역으로 달려갔다. 서대전역까지 가는 ktx를 탔는데 밥을 먹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배고픔을 참기에는 도착 시간이 너무 늦었다. 그때 남편은 끼니를 때우기 위해 다이제 초코와 딸기우유를 선택했다. 기차 안에서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창밖을 바라보며 남편은 다이제를 하나씩 꼭꼭 씹어 먹었다. 딸기 우유는 목 막힘을 방지하기 위한 음료였다. 가끔 초코우유를 살 때도 있었지만, 과자는 변함없이 다이제였다고 한다. 남편은 지금도 다이제를 좋아한다.


 1982년 오리온에서 출시한 다이제는 통밀이 들어 간 원형 비스킷이다. 오리지널 다이제는 통밀이 28%, 초코는 13% 들어 있다. 식사대용으로 먹기 든든한 과자이지만, 예전에는 입안에 다이제를 세로로 몇 개나 넣을 수 있는지 내기하는 용도로도 자주 쓰였다. 홈 베이킹을 할 때 비스킷을 가루로 만들어 버터와 섞은 뒤 치즈 케이크 맨 아래층에 깔아주는 틀로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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