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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고래밥

by 유자와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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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밥이 뭐냐고? 고등학교 때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살았잖니. 오빠들은 돈 번다고 타지로 가버리고. 외할아버지는 엄마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기억도 가물가물하네. 그러고 보니 그때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혼자 살았구나. 지금 살라고 하면 못살 것 같은데. 겨울이면 산에 올라 땔감으로 쓸 나뭇가지를 모으고, 먹을 게 없으면 그냥 굶고 그랬지.

어느 날이었어. 쌀독에 쌀이 똑 떨어져 아침도 못 먹고 학교에 갔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데 배가 너무 고픈 거야. 점심도 굶었으니 오죽했겠니. 저녁은 먹어야겠고, 주머니에 있던 전 재산 100원으로 라면을 사먹으려고 했어. 당장 내일 일은 모르겠고, 저녁이라도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저 앞에 깡통을 들고 길가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이 보이는 거야. 구부정하게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계셨어. 보는 순간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봐버렸지. 나는 이 돈으로 라면을 꼭 사먹어야 하는데. 그래서 할아버지를 외면하고 고개를 다른 데로 돌린 채 그 곁을 지나가는데 마음이 너무 괴로운 거야.


지나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할 수 없이 안 되겠다 싶어 다시 할아버지에게로 막 달려갔어.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100원을 꺼내서 깡통에 넣는데, 땡그랑 동전이 떨어지는 순간 기쁨이 막 차오르는 거야. 세상에 그런 기쁨 없다 하림아,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 밥도 먹지 않았는데도 막 배가 부른 느낌이고, 참 신기하지.


그렇게 집에 오자마자 장독대로 갔어. 장독대 위에 바가지를 엎어놨거든. 물이라도 마셔서 배를 채우려고 바가지를 들었는데, 세상에 장독대 안에 흰쌀이 소복하게 들어 있는 거야. 참 신기하지. 누가 갖다놨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어. 엄마가 주변 사람한테도 물어봤는데 모두 모른대. 천사가 갖다 놓은 건지. 그래서 얼른 밥을 지어 흰쌀밥을 배부르게 먹고 잤단다. 반찬도 없이 밥만 먹는데도 얼마나 맛있던지.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구나.


이건 뭐니? 고래밥이라고? 고래가 물고기를 먹어야지 왜 밀가루를 먹겠니. 그리고 하림아, 몸에 안 좋은 거 먹으면 안 된다. 아직도 과자를 좋아하면 어떡하니. 엄마 소원이다. 엄마는 밥 잘 먹는 사람이 제일 좋더라. 이 과자가 1984년에 오리온에서 만든 거라고? 84년이면 강은이가 태어난 해네. 그때도 못 먹었지. 네 동생을 낳고 뭘 먹어야 젖이 나올 텐데, 먹을 게 있어야지. 먹은 게 없으니 젖이 나올 리가 있나. 그때 잘 먹였어야 했는데, 강은이한테 아직도 그게 미안하다. 그래도 강은이가 건강하게 자랐으니 괜찮다고? 엄마 맘은 그게 아니야. 너도 얘 낳아봐라.


고래밥 한 번 먹어보라고? 엄마 과자 싫어하는 거 알면서 왜 이걸 사왔니. 근데 얘내들 좀 봐. 귀엽게 생겼네. 물고기 모양이라고? 어디 보자. 고래도 있고, 얘는 오징어고, 불가사리, 돌고래, 가재도 있네. 이건 새우인가? 꽃게라고? 넌 그게 보이니? 과자를 이렇게 작게 만들다니. 이건 뭐지? 문어라고? 엄마 고향이 고흥이라 어릴 때는 문어도 자주 먹었는데, 네 아빠가 회를 못 먹으니 결혼하고 나서는 먹을 일이 없네. 사주겠다고? 식당에서 파는 게 얼마나 비싼지 아니?


짭짤한 맛이네. 과자가 맛있기는 맛있지. 맛없는 게 어딨어. 몸 생각해 자제하는 거지. 근데 너 집에 소금은 있니? 몸에 좋은 소금을 먹어야 된다. 우리 몸이 산성이라 알칼리성인 소금을 먹어야 중화가 되는 거야. 천일염 있다고? 엄마가 이번에 기가 막힌 소금을 샀는데 하나 가져가서 먹어봐. 싫다고? 이게 얼마나 비싼 건데. 미네랄이 40%나 들어있어. 아침 점심 저녁에 1g씩만 먹으면 돼. 아빠도 이거 먹으니 속이 편하다더라. 엄청 맛있어. 제발 엄마 말 좀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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