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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May 06. 2020

2. 둘이서 라면 하나 - 짜파게티

짜파게티

어제 신라면을 먹고 흐뭇하게 잠든 남편이 오늘도 좀 늦을 것 같으니 먼저 저녁을 먹으라고 문자를 보낸다(자꾸 그럴 거면 때려 쳐). 저녁 먹고 함께 산책을 가려던 내 계획은 무산되었다. 만둣국을 끓여먹을까 감자를 구워먹을까 고민하며 찬장을 열어보니 라면 몇 개가 종류별로 놓여있다. 남편이 라면 그림을 그리겠다며 슈퍼에서 하나씩 사온 거다. 이런. 나트륨이 많은 식품을 남편 혼자 먹게 둘 수는 없지. 남편을 도와주자는 심정으로 짜파게티를 고른다. 오늘이 일요일은 아니지만 짜파게티는 혼자 먹어도 맛있는 라면이니까.


 팔팔 끓는 물에 짜파게티 면과 후레이크를 넣고 4분(조리법은 5분)을 끓인다. 이제 불을 잠시 끄고 면발이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냄비 뚜껑으로 살짝 누른 후 라면 물을 조심스레 따라낸다. 물을 너무 많이 남기면 짜파게티 국이 되어 버린다. 신중하게 물의 양을 조절하여 버렸다면 과립스프를 넣고 다시 가스 불을 켠 후 젓가락으로 뒤적거리며 섞어준 후 불을 끈다. 조리법에는 첨가된 올리브유도 같이 넣으라고 되어 있다. 원재료명을 보니 혼합 올리브유라고 적혀 있다. 흠...올리브유에 뭘 섞었다는 말이지? 나는 건강을 생각하여 혼합 올리브유 대신 집에 있는 유기농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살짝 두른다(마음이 좀 놓이는군). 엑스트라 버진은 생 올리브를 처음 압착하여 받아낸 오일로 풍미와 산도가 일반 올리브 오일보다 낫다.


 짜라짜라짜짜짜짜, 짜~파게티~!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로고송이 귀에 울린다. 아빠는 일요일에 한 번 짜파게티만 끓여도 요리사라 불리는데 매일 삼시 세끼 밥을 해야 하는 엄마의 존재는 지워져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어느 사회이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집에서는 주로 엄마가 장을 본 후 식료품을 분류하고 씻고 썰고 끓이고 볶아 음식을 식탁에 차린다. 가족 구성원들이 보는 건 결과물일 뿐 그 과정이 얼마나 고단하고 지리멸렬한 일인지 쉽게 잊는다. 회사에서는 주로 말단사원이 전화 응대를 하고 서류를 정리하고 음료를 놓고 보고서를 복사한다. 임원과 사장님 눈에 보이는 건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보고서일 뿐이다.


 나도 예전에 남편에게 말한 적이 있다.


“봐봐. 너는 회사에서 힘들게 일해서 월급을 받잖아. 월급을 받으면 나는 늘 너한테 한 달간 고생해서 고맙다고 말하지. 근데 난 집에서 힘들게(아이가 없으니 그리 힘들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일해도 월급을 못 받아. 다행히 나는 청소하고 밥하는 게 즐겁지만 그렇다고 너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노동을 잊지는 말아줘.”


남편은 진지하게 내 말을 경청하더니 자꾸 주말만 되면 자기가 요리를 하겠다고 나선다. 그런 뜻이 아니라고!

 짜파게티를 한 입 먹는다. 쫄깃쫄깃한 면발이 좋다. ‘춘장, 양파 등을 볶아 고소하고 진한 짜장맛’이 난다고 적혀 있는데 정말 밖에서 파는 짜장면처럼 맛이 있다. 한 그릇 더 먹고 싶다. 짜파게티 역시 농심에서 만들었다. 짜파게티 포장지는 전체적으로 올리브 색이다. 왼쪽 하단에 올리브 라고 적혀 있고 그 주위로 올리브 열매가 달랑달랑 매달려 있다. 디자인이 옛날 느낌이 난다.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걸까?


 찾아보니 짜파게티는 1984년에 출시되었다.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오래되었다. 3위는 안성탕면으로 1983년에 출시되었고 2위는 너구리로 1982년에 출시되었다. 너구리는 나와 출생년도가 같다. 와. 우리 같이 늙어가는구나(나와는 다르게 너는 영화 한 편 때문에 스타가 되었지만). 갑자기 너구리에 대한 애정이 솟구친다. 아참 이건 짜파게티 글인데...그래도 다 같은 농심이니까. 1위는 아시다시피 삼양라면이고 5위가 1986년에 출시된 신라면이다.

 1980년대는 굵직굵직한 라면들이 쏟아진 시기였다. 역사적인 라면들과 함께 태어나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너도 나도 힘든 세월 잘 견뎌왔구나. 우리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짜파게티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식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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