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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May 07. 2020

4. 둘이서 라면 하나 - 생생우동

생생우동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3대 음식은 김밥, 떡볶이, 우동이다. 남편은 뷔페에 가면 남들은 절대 먹지 않을 김밥을 종류대로 꼼꼼히 담아온다. 나도 김밥은 좋아하지만 떡볶이와 우동은 영양가가 전혀 없는 음식이라 생각하여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후 남편과 유명하다는 떡볶이와 우동 집을 순례하다보니 점점 이 음식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부부란 이렇게 닮아가는 것이다(그러니 짝을 고르려면 우선 식습관 점검부터 하시길).


 농심에서 나온 생생우동은 기름에 튀기지 않은 생생면이라 다른 라면보다 무게가 묵직하다. 중량은 일반 라면의 두 배인 253g이고 가격은 일반 라면의 세 배라 영수증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남편, 생생우동 가격 좀 봐. 우리 라면 프로젝트 한다고 너무 돈 막 쓰는 거 아닐까?”

“진짜 그렇네. 그래도 이건 우동이니까.”

“......”


우동에겐 한없이 너그러운 남편. 우동아. 넌 좋겠다.

 생생우동 봉지를 뜯으니 비닐로 포장된 우동과 액상스프가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 있다. 낱개로 구입 가능한 생생 우동 사리도 그냥 비닐 포장만 되어 있는데 굳이 생생우동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이유가 뭘까? 플라스틱이 없으면 부피가 너무 확 줄어들어 볼품없어 보일까봐 그걸까? 설마 이 용기에 우동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먹으라는 걸까? 이젠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도 많아졌으니 부피와 비닐 포장을 획기적으로 줄여 준다면 좋은 반응을 얻지 않을까 싶다.


 우동면은 익힌 생면이 들어있기에 물이 팔팔 끓으면 우동면과 액상스프를 넣고 1분 30초 정도 풀어주기만 하면 된다. 국물을 한 입 떠 먹어봤더니, ‘국물 맛이 끝내’준다. 가쓰오부시로 맛을 내었기 때문이라고 표지 우측 상단에 적혀 있다. 가쓰오부시 만드는 법은 이렇다. 가다랑어를 앞뒤로 포를 떠 삶은 후 뼈를 발라낸다. 발라낸 살을 연기에 그을려 훈연한 후 곰팡이를 여러 번 피우면 된다. 윽, 곰팡이라고? 곰팡이라는 세균은 음식과 만나 유익하게 바뀌면 발효가 되고 유해하게 바뀌면 부패가 되는 거니 안심하시길. 훈연된 가다랑어를 햇볕에 말릴 때 푸른 곰팡이가 생기는데 이 곰팡이가 풍미를 가둬두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꼬리꼬리한 맛의 고르곤졸라 치즈 역시 푸른 곰팡이를 피워 만든다. 같은 종류의 곰팡이인지는 모르겠지만 푸른 곰팡이는 맛있다는 결론이 난다.


 생생우동 봉지를 쳐다보고 있으니 잊고 있던 단편 한 편이 떠오른다. 제목은 <우동 한그릇>. 원제목은 우동이 아니라 소바라고 하는데 번역이 잘못되어 알려졌다고 한다.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의 소설인데 얼마나 감동적인지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용은 이렇다. 일본의 우동 집들은 12월 31일마다 우동을 먹으며 한 해를 마무리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삿포로에 있는 우동 집 북해정 주인 내외도 정신없이 우동을 팔다보니 밤 10시가 되었다. 그때 허름한 옷차림을 한 여인이 남자 아이 두 명을 데리고 가게에 들어온다. 그녀는 조심스레 우동 한 그릇만 주문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주인아주머니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주방에 있던 주인아저씨는 아내 몰래 우동 한 덩어리에 반 덩어리를 더 넣는다. 세 모자는 넉넉한 우동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주인 내외 역시 온 마음을 다해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한다.


 일 년 후 세 모자는 비슷한 시간에 우동 집을 찾아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한다. 주인은 역시 우동 1.5분을 요리하여 내어주고 그들은 맛있게 먹는다. 그 다음해도 세 모자는 우동 집을 방문하고 우동 이인 분을 주문한다. 그 말을 들은 주인은 기뻐하며 우동 삼 인분을 끓여 그들에게 내어준다. 우동을 맛있게 먹은 세 모자는 감사의 인사를 한 후 가게를 나선다. 그 뒤로 수년간 모자는 나타나지 않고 우동 집 부부는 매년 마지막 날 그들을 위해 좌석을 비워둔다. 10년이 지난 후 12월 31일 밤 10시 무렵 정장차림의 두 청년과 기모노를 입은 부인이 들어와 조심스럽게 우동 3인분을 주문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아들 한명이 말한다. "우리는 그 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금년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내년 4월부터 삿뽀로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우동집 주인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교토의 은행에 다니고 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삶 가운데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 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뽀로의 <북해정>을 찾아와 뜨거운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찾아 다시 읽다보니 역시 눈물이 난다. 따뜻한 우동 한 그릇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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