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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Apr 05. 2024

분갈이


“얘네들은 집안에만 있었는데 봄이 온줄 어떻게 알았지? 우리 집은 항상 21도인데.

봄이 온 걸 알았나봐. 꽃피는 것 좀 봐. 새잎이 많아지고 있어.”    

 

눈뜨자마자 화분 점호를 실시하던 남편이 말한다. 

봄이 왔다는 건 식물이 사는 집을 바꿔줘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매년 4월은 식물들 이사하는 날이다.

사람이건 식물이건 이사는 힘들고 귀찮다.


아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한 후 그에 맞는 화분을 개수에 맞춰 주문해야 한다.

흙도 필요하다.

처음엔 20L면 충분하겠지 해서 온라인으로 구매했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근처 화원에 가서 30L를 샀는데 여전히 모자라 10L를 또 사러가야 했다.

이게 무슨 짓인지.

영양제도 주문했다.

비실비실해 보이는 아이들 위주로 주사를 한방씩 놓아주었는데, 진짜 효과가 있는지는 매번 의심이 든다.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새 화분에 식물을 옮긴다.

하나, 둘, 셋, 넷..........열 셋.

이틀에 걸쳐 진행된 이사가 끝났다.

비어있던 베란다에 식물을 가져다 일렬로 배치한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아이들이 살 공간이다. 

베란다가 식물로 꽉 찼는데 왜 거실과 부엌에 있는 식물은 조금도 줄지 않은 걸까?1

     

6년 동안 한 번도 이사를 하지 못한 식물이 하나 있다.

뱅갈 고무나무.

처음 이곳에 이사 왔을 때 기념으로 큰 나무 한그루를 들였다.

한겨울이었다.

화원 주인은 말했다.     


“겨울이라 관리가 힘들어요. 얼마 못살고 죽을지도 몰라요. 작은 식물로 하시는 게 좋을텐데.”

“관리 잘할게요. 이걸로 주세요.”

“겨울이라 힘들텐데. 작은 걸로 하시지는...”    

 

나는 잘 관리하겠다고 굽실거리며 겨우 식물을 얻어냈다.

우리 집 대장인 고무나무는 늠름한 모습으로 겨울을 났고 아름다운 새 잎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화분이 너무 커서 분갈이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거다.

몇 년이 지나자 화분 가장자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돈을 주고 분갈이를 하려고 찾아보니 10만원은 줘야 할 것 같다.

쟤를 15만원 주고 사왔는데 그건 좀 아니지.

일주일에 한번 쌀뜨물을 주어 영양을 공급하는 것으로 어찌어찌 버티고 있다.

이번에 과감히 잔가지도 쳐냈다.

뱅갈아, 힘내렴.     


식목일이다. 

나무 심는 건 어렵지만 식물 사는 건 쉽다.

집 안에 작은 식물 하나라도 있고 없고 차이가 크다.

생명 있는 존재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어마어마하다.


새끼손톱만한 연두 빛 잎사귀는 마음을 말랑하게 만든다.

나도 저렇게 어릴 때가 있었는데, 몸은 시들지만 마음은 파릇파릇하게 살아야지, 어린 것들은 식물도 동물도 사람도 모두 예쁘구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바라본다.     

내 마음에도 새 잎이 움트는 4월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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