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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Aug 23. 2024

6월


* 오이  


택배가 도착했다. 시부모님이 옥상 텃밭에서 키운 상추, 깻잎, 대파, 당근, 오이가 들어있다. 

옥상에 오이가 주렁주렁 달렸다고 한다. 작년에 아버님은 수백 개가 넘는 오이를 수확했다. 

오이를 따고 돌아서는 순간 오이가 또 자란다나. 지인에게 실컷 나눠주고 오이소박이를 담가도 오이는 줄지 않았다. 

특유의 오이 향과 맛을 못견뎌하는 사람도 있다. 친가 쪽에는 오이를 전혀 먹지 않는 친척이 몇 분 계신다. 

아빠도 오이를 싫어한다. 

오이 냄새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단순히 취향 차이가 아니라 유전자가 원인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95%가 수분으로 되어 있는 오이. 아삭아삭 시원하고 향긋한 오이. 

다행히 나는 오이를 좋아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어서 오이냉국도 오이무침도 맛있게 먹는다.         


  

* 완두콩  


부모님 댁에 갔더니 소쿠리에 완두콩 자루를 담아 놓았다. 올해 첫 완두콩이 나왔구나. 

식탁에 앉아 껍질을 깐다. 꼬투리집에서 옹기종기 살고 있던 아이들을 매정하게 떼어내는 것 같아 미안하다. 방문을 조심스레 열어본다. 네 명이 사는 집도 있고 여덟 명이 사는 집도 있다. 

함께 모여 사는 모습이 예쁘다.

여름과 잘 어울리는 연두색 완두콩이 그릇 안으로 데구루루 굴러간다. 

밥 속에 콩이 있으면 골라내기 바쁘지만 완두콩은 예외다. 부드럽고 은은한 단맛이 도는 완두콩은 샐러드나 빙수 위에 뿌려도 맛있다. 

일본 선술집에 가면 콩깍지 그대로 삶은 완두콩을 안주로 시키는 사람이 많다. 

일본 사람은 완두콩을 진짜 좋아하구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일본 완두콩은 종자 자체가 다르다. 

에다마메라고 하는데, 모양은 완두콩과 흡사하지만 실제로는 여물지 않은 풋콩이다. 

콩 식감은 아삭하면서 부드럽다.           



* 블루베리  


국내산 블루베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6월에서 7월이 제철이다. 

국내산이 비싼 이유는 사람이 손으로 하나씩 따기 때문이다. 노동이 많이 들어가는 작물이다. 

보존 기간도 짧아 금방 무르기 시작한다. 

블루베리에는 노화를 막는 항산화물질이 풍부하다. 깊은 바닷물 색을 띄는 블루베리에는 안토시아닌 색소도 들어 있는데 이게 눈에 도움이 된다. 

노화가 시작되었고 시력도 좋지 않은 나는 반드시 블루베리를 먹어야 하지만 가격 앞에서 망설인다. 

올해는 시댁 옥상에서 키운 블루베리가 택배로 도착했다. 새콤한 맛이 난다. 

우아한 색감을 지닌 블루베리는 어디서건 존재감을 드러낸다. 

입술을 파랗게 물들이고 옷에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남긴다.          



* 신비 복숭아  


신비 복숭아를 주문했다. 천도와 백도를 개량해 만든 복숭아다. 

이름을 잘 지었다. 사람은 신비함에 끌리니까.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끌었는데 이제야 먹어본다. 

자두와 비슷한 크기라 이게 복숭아야? 하는 생각이 든다. 연둣빛과 붉은빛이 섞인 신비 복숭아는 표면이 매끈하다. 

코를 가까이 대면 천도복숭아 향이 난다. 후숙 후 말랑해지면 먹는다. 

한 입 깨물면 달콤하면서도 아련하게 백도 맛이 느껴진다. 속살은 하얗다. 천도복숭아와는 또 다른 맛이다. 

신비복숭아는 다른 복숭아보다 나오는 시기가 이르다. 복숭아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잘된 일이다. 

신비 복숭아를 먹다보면 천도복숭아가 나오겠고, 천도복숭아를 먹다보면 말랑이 복숭아가 나올테고, 말랑이를 먹다보면 딱딱이 복숭아와 납작 복숭아가 제철을 맞는다.

 6월부터 8월까지 복숭아를 듬뿍 맛볼 수 있으니 여름이 좋을 수밖에.     


      

* 하지  


밤 8시가 넘었는데도 밖이 환하다. 1년 중 해가 가장 높이 뜨고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가 돌아왔다. 

습도가 점점 높아지긴 하지만 장마 전이라 저녁에는 선선한 바람이 분다. 

남편이 퇴근해 함께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서도 어둡지 않으니 휴일 같은 기분이 든다. 

밤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다. 걷는 사람들로 천변이 북적거린다. 

야외 댄스 수업도 시작되었다. 저녁 8시부터 9시까지다. 매년 여름마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무료 수업이다.

 단상 위에서 강사님이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50명 정도 되는 여성들이 동작을 따라하며 소리를 지른다. 

구경하는 사람보다 춤추는 사람이 더 많다. 매일 매일 보고 싶은 풍경이다. 

남편이 한 곡을 따라 춤을 추더니 땀을 뻘뻘 흘린다. 

하지에는 하지 감자를 먹어야지. 분이 나는 햇감자로 1년 중 가장 맛있다. 

감자를 웨지 모양으로 썬 후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소금과 후추를 톡톡 뿌려 오븐에 넣는다. 

선풍기를 틀고 포슬포슬하게 구워진 감자를 후후 불며 먹는다.     



* 매실  


지인이 매실 원액 한 병을 선물로 주었다. 직접 딴 매실로 담근 거라고. 숙성한지 4년 되었다고. 

손발이 찬 걸 보니 잘 체할 것 같다고. 체할 때 마시면 좋다고. 

그분 말처럼 나는 체할 때마다 소화제 대신 매실 효소를 물에 타 마신다. 여름이면 탄산수를 부어 매실에이드로 마시고 겨울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 매실차로 마신다. 

고기를 재우거나 비빔면 양념장을 만들 때 넣기도 한다. 

일 년 내내 매실청을 활용하지만 직접 담가 본 적은 없다. 매년 시댁에서 넉넉하게 가져온다. 

어머님께 매실 장아찌도 해달라고 조른다. 

철없는 며느리를 위해 어머님은 매실 씨를 빼는 수고를 거쳐 장아찌를 만들어 주신다. 무더위를 잊을 만큼 상큼한 매실 절임. 

친구 밭에 매실을 따러 간다는 어머님 전화를 받았다. 

매실은 수확시기에 따라 청매와 황매로 나눈다. 

청매는 6월 중순에서 7월 초순에 딴 매실로 과육이 단단하고 신맛이 강하다. 

황매는 7월 중순에 딴 노란 색 매실로 단맛이 강하다. 올해도 매실 장아찌를 먹을 수 있겠구나.


           

* 자두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자두가 나왔다. 아빠는 새콤하고 단단한 자두를, 나는 푹 익어 달콤하고 물렁한 자두를 좋아한다. 

어릴 땐 자두보다 자두맛 사탕을 더 좋아했다. 입안에 넣고 요리조리 굴리다보면 살짝 혀를 베이고 마는 자두맛 사탕. 

요즘은 자두 가격도 만만치 않다. 자두는 대석자두, 후무사, 피자두, 추희자두 등 나오는 시기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다. 

코스트코에서 큼직한 햇자두를 구입했다. 자두는 통째로 입에 넣어야 제 맛이지만 가끔은 먹기 좋게 썰어 접시에 담기도 한다. 

쉽게 자르는 방법이 있다. 아보카도처럼 자르면 된다. 

자두 중앙을 따라 돌려가며 칼집을 낸다. 두 손으로 자두를 잡고 서로 반대방향으로 비틀면 한쪽 면이 깔끔하게 떨어져 나온다. 남은 쪽을 칼로 잘 도려내면 된다.           



* 능소화  


담장마다 드리운 장미가 시들 무렵 하나 둘 피어나는 꽃이 있다. 무더운 여름의 꽃 능소화. 

덩굴나무로 돌담이나 벽 같은 지지대를 타고 오르며 자란다. 활짝 벌어진 연한 주황색 꽃송이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드리운다. 

흐트러지지 않으면서도 화사한 자태에 자꾸 눈길이 간다. 

꽃은 지고나면 다시 피어난다.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져 꽃 진 자리도 아름답다. 지고 피고 지고 피기에 여름 내내 우아한 꽃을 즐길 수 있다. 

능소화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실명할 수 있다는 얘기가 떠돈다. 나도 오해한 적이 있다.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되야지’ 

이원규의 ‘능소화’ 라는 시를 읽고 나서다. 나중에 찾아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연두와 노랑이 섞인 꽃받침 위에 단아한 모습으로 피어나는 능소화를 볼 때마다 단정하게 허리를 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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