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냐 더 시골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무작정 제주로 내려와 이 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나니 내 안에는 이 섬에서 살아봐야겠다 하는 마음이 밤하늘의 보름달처럼 떴다. 그리곤 우선 급한 대로, 여행동안 지냈던 게스트하우스의 주인분께서 관리하시는 월세 빌라에 손바닥만 한 원룸을 한 달 예약했다. 그 도로가의 작은방 하나에도 백만 원을 넘게 받는다는 왠지 모를 을씨년스러운 인심에 제법 놀랐지만, 방이 비어 있으면 있었지 아무에게나 내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두 번을 놀라버렸다. 빌라는 육지에서 오는 스텝분들의 숙소가 되거나, 게스트 하우스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임시 숙소 방편으로 쓰일 용도로 비어있었고, 동네에 상주하며 작업하는 맘 맞는 아티스트분들이 운 좋으면 몇 달을 머물 수 있는 식이었다. 그런 깐깐한 빌라에 내가 입주할 수 있게 됐던 건, 그들이 가진 카페에서 영어 스터디를 열어 운영해 준다는 조건하에였다. 다행히도 내가 그들에게 쓸모 있는 존재였고, 덕분에 발품 팔 필요 없이 몇 달을 벌었지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그들의 유조건적인 사랑은 불편했다. 그렇게 일년살이 숙소 헌팅이 시작된 거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딸의 음성에서 무엇인가 감지한 엄마는 한걸음에 내려와 함께 집을 찾아 나서줬다. 아무래도 순수하고 구수한 엄마표 인상은 제주에서도 잘 통했다. 동네에 보이는 딱 두 군데 부동산을 들렀는데 그들은 단번에 물었다. "혹시 제주 돌집을 원하는 거예요?" 마치, 그런 로망을 안고 온 나같이 생긴 젊은이들이 한둘이 아녔던 모양인지. 다행히 여행하던 이주동안 제주의 태풍을 세 번 겪고 난 후라 내겐 그런 로망 같은 건 형태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건 오직 한 가지, '자연을 가득 담은 창이 큰 집'이었다. 코로나 때문이었던 건지, 운 좋게도 부동산 단 두 곳 만에 그런 집이 눈앞에 나타났고, 나의 제주살이는 계약서 위 도장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쉽지 않은 제주살이에 그 빌리지를 만난 건 커다란 행운이었다. 사방이 자연 속에 갇힌 커다란 창이 난 집에서 일 년을 실컷 제주와 사랑했으니 말이다.
막막할 수도, 귀찮을 수도 있지만 한 해의 나의 로망을 살 집이니 여행 겸 틈틈이 제주에 내려와 부동산을 들러 매물들을 둘러보는 정성을 들여보는 건 어떨까. 저자처럼, 시작은 게스트하우스(금등리)에서 동네 어귀(금능, 신창해안로)로 뻗어나갈 수도 있으니 우선 여행을 다니며 좋아하는 동네를 한번 점찍어 보자. 그리고는 좀 더 현실적으로, 주변에 자주 장 볼 수 있는 커다란 마트는 있는지, 뚜벅이라면 근처 버스 정류장은 있는지, 공항 직행버스는 마을에 지나다니는지, 주변 산책로는 도로와 너무 가깝지 않게 잘 이어져 있는지 등등, 흥미로운 마음을 장착하고 한번 골라보는 거다. 저자는 제주 깡시골을 만끽할 수 있었던 제주 서쪽 살이를 마무리하고 나니, 기회가 되는 다음엔 해가 떠오르는 동쪽(오조리, 종달리)의 일 년도 한번 살아 보고 싶다고! 여러분을 닮은 동네는 어느 곳일지, 당신이 고를 제주의 마을이 궁금하다.
with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