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들르는 동네 편의점이 있다. 사장과 직원들이 무뚝뚝한 편이고 길도 건너야 하기에 자주 가진 않는 곳이다. 그래도 시내 방향 버스정류장과 가까운 곳이어서 때때로 이용하곤 한다.
석 달 전쯤이었다. 시내에서 돌아오다 그곳 편의점에 들렀다. 면도기, 건전지, 배수구세정제 등 생활용품이 필요했다. 필요물품들을 고른 뒤 돌아서니 초콜릿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자유시간 초코바를 1+1 로 판다는 할인표가 붙어 있었다. 개당 1000원 짜리 자유시간 2개가 1000원이었다. 오옷 개꿀! 나는 자유시간 2개와 세정제 등 필요물품을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피곤한 표정의 알바생이 물건들을 봉투에 넣어주었다.
집에 돌아와 화장실 청소를 한 뒤 막힌 배수구에 세정제를 부었다. 이후 내친 김에 방청소도 했다. 이미 시간은 저녁을 지나 밤으로 향하고 있었다. 식사가 많이 늦었다. 냉장고에 남겨 둔 반찬과 보온통의 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리고 TV를 켜기 위해 리모컨을 찾았다.
그런데 리모컨 대신 편의점 봉투가 눈에 띈다. 안에는 아까 산 자유시간 초코바 두 개가 들어있었다. 아, 후식을 먹어야지. 자유시간 하나를 집어 포장을 벗긴 뒤 1/3쯤 베어 물었다. 우걱우걱, 당이 흡수되며 약간의 나른함이 몰려왔다. 눈을 비비며 다시 봉투를 보니 남은 한 개의 초코바 위에 영수증이 살짝 걸쳐 있었다. 별 생각없이 영수증을 들고 읽어보았다. 그런데 이런, 자유시간이 2000원으로 결제돼 있었다. 1+1이 아닌 2개로 계산된 것이었다.
약간 짜증이 났다. 그래도 크게 마음에 두진 않았다.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어서였다. 당시는 월초였다. 편의점 할인행사는 일반적으로 월말에 끝난다. 그러니 월 초반의 하루나 이틀 정도는 할인표가 잘못 붙어 있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런 실수도 해선 안 되겠지만,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이해하는 건 이해하는 거고, 추가로 지불한 내 돈 1000원은 문제였다. 환불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미 밤이 깊었다. 그거 돌려받겠다고 옷 차려입고 길 건너 샛길 올라 편의점까지 찾아가기도 귀찮았다. 무엇보다, 나는 1000원 정도는 하찮게 여겨도 될 정도로 탄탄한 재력을 갖춘 몸이었다(저도 압니다. 오글거리신다는 걸).
‘1000원이야 뭐....’
나중에 기회 되면 돌려받기로 했다. 그리고 유튜브를 뒤적이다 잠자리에 들었다.
이후 정신없이 살았다. 주로 대형마트를 이용하다 보니 그 편의점에는 갈 일이 별로 없었다. 1000원 환불도 흐지부지 되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이었다. 다시 그 편의점에 방문할 일이 생겼다. 파견사업장에 가는 날이었는데 수첩과 수성펜이 필요했다.
물품을 고른 후 건너편 판매대로 갔다.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좋아하는 짬뽕 컵라면을 2+1 행사로 팔고 있었다. 개당 1600원인데 3개 사면 3200원이라는 할인표가 붙어 있었다. 마침 점심 때였고 집에 먹을 것도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짬뽕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뒤 파견사업장에 가기로 했다. 나는 집어든 물건들을 카운터에 올렸다.
띡, 띠딕
바코드 찍히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합쳐 ○○○원입니다” 라는 점원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런데 계산이 좀 이상했다.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계산대 화면을 살펴보았다. 역시나였다.
점원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당시는 월초가 아닌 월 중순이었다. 할인표 교체를 깜빡할 상황이 아니었다.
“지난번에도 1+1인줄 알고 초코바를 샀다가 2개 다 계산한 적이 있어요. 헛갈리지 않게 할인표를 제때 교체해 뒀어야죠."
나는 낮은 목소리로 불만을 표했다. 오히려 그게 더 효과적이었는지 점원이 굳은 얼굴로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점원을 쳐다보았다. 처음 보는 청년이었다. 주말에만 잠깐 일하는 알바생인 듯했다. 저 친구의 잘못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럼...컵...라면은 어떻게... 할까요?”
점원이 떠듬떠듬 물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포장해 달라고 했다. 어차피 좋아하는 라면이었으므로 두고 먹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한 달 여의 시간이 다시 흘렀다. 어느 흐린 날이었다. 나는 편의점 쪽으로 걷고 있었다. 시내 방향 버스를 타야 했다. 대로변 교회를 지나 편의점 방향 오르막길을 올랐다. 그런데,
후둑, 후두둑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편의점 앞에서 걸음을 멈춘 뒤 잠시 고민했다. 일회용 우산을 살까? 말까? 지나가는 비라는 느낌이 강했기에, 그리고 집에 우산이 세 개나 있었기에, 구매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지나가는 비가 아니라면 시내를 활보하는 내내 비를 쫄딱 맞을 수도 있었다. 머뭇거리는 와중 한 여자가 편의점 문을 열고 나왔다.
“뭐야, 1+1이라면서... 칫!”
여자가 혼잣말로 툴툴댔다. 들이치는 비를 핸드백으로 가리며 걸음을 옮기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상황을 추측해 보았다. 어떤 물건을 1+1이라고 홍보한 뒤 2개 값을 받으려 한 모양이었다. 또다시.... 여자가 해당 상품을 그냥 구매했는지 취소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나까지 기분이 안 좋아졌다.
'대체 여긴 왜 그러지?’
우산 사려던 계획을 접고 그냥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사흘 전, 나는 다시 그 편의점에 들렀다. 웬만해선 안 이용하려 했지만, 늦은 밤 딱 눈에 보이는 가게가 그곳이었기에 그냥 문을 열었다. 귀가 전 간식거리라도 사갈까 해서였다.
안에 들어섰는데 점원이 “어서오세요”라는 인사도 안 한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카운터에 앉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장은 아니었다(나는 사장의 얼굴을 안다). 역시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유니폼도 안 입고 있었다. 짐작컨대 사장의 지인이 잠깐 가게를 봐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과자 판매대 쪽으로 갔다. 내가 좋아하는 야채크래커부터 골랐다. 1500원이었다. 옆을 보니 꼬깔콘을 2+1 행사로 팔고 있었다. 꼬깔콘도 개당 1500원이었다. 그러니까 3개면 3000원이다. 야채크래커와 꼬깔콘 3개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걸어갔다.
‘다 합쳐 4500원이겠지?’
주머니에서 카드를 뒤적거렸다. 아저씨가 서툰 동작으로 꼬깔콘에 바코드를 갖다 댔다.
띠디딕
그런데 이게 또 뭐람, 꼬깔콘 3개 가격이 4500원으로 찍혔다. 이번에도 2+1은 트릭이었다.
“아니, 왜 4500원이죠? 꼬칼콘 진열대 앞에 2+1 할인표가 붙어 있었는데요.”
내 질문에 아저씨가 머리를 갸웃거린다.
“어디에 2+1 할인표가 붙어 있다고요?”
아저씨가 되레 내게 물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는 할인표를 확인하러 과자 판매대로 가는 것조차 귀찮아하고 있었다. 씁쓸했다. 책임질 만한 위치가 아닌 사람한테 계속 따지는 것도 에너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2+1이라고 해서 고른건데...."
“허허, 가격표가 잘못 붙어 있었나 보네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취소할까요?”
아저씨가 괜스레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그냥 꼬칼콘 한 개와 야채크래커 한 개만 샀다.
다음날이 밝았다. 저 편의점을 그대로 둬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상습적인 할인행사 조작이 아닐까? 꼼꼼한 손님은 할인표에 착오가 있어도 계산을 취소하거나 환불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살피지 못한 손님은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타지에서 온 뜨내기 손님이었다. 이들은 지나가다 들른 것이기에 계산이 잘못되었음을 나중에 깨달아도 환불받기가 매우 어렵다.
편의점 사장은 이런 점을 노린 것일까. 물론 속단할 순 없다. 그냥 게을러서 할인표에 신경을 안 쓴 것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했다.
해당 편의점 브랜드의 본사로 전화를 했다. 꽤 오랜 연결시간이 흐른 후 고객센터 직원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나는 1+1 또는 2+1 할인행사가 본사 주도로 하는 것인지 지점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것인지부터 물었다.
“본사 차원에서 하는 것도 있고 지점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것도 있습니다.”
직원이 답했다. 이어 “다만 쇼카드(할인표)는 점주가 관리하는 게 맞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냐, 는 직원의 질문에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우리 동네 편의점에서 상습적으로 허위 할인표를 내거는 것 같다고, 한두 번이 아니라고....
직원은 ‘잘못된 상황이 맞다’며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했다. 이후 ‘정식으로 민원접수를 하면 조사를 한 뒤 해당점포에 개선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조치를 취하느니 어쩌니 하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마음이 약해진 것이다. 내가 망설이자 직원은 “고객님의 익명성은 보장됩니다. 전혀 피해가 가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고민한 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곳 점주도 영세한 상인일 텐데....’
순간 화딱지가 나서 고객센터 번호는 눌렀지만, 내 전화로 인해 해당 편의점이 본사에 찍힌다면 그곳 직원들은 상당히 피곤해질 수 있었다. 나 또한 그쪽 업계가 돌아가는 생리를 약간은 아는 사람이다. 일단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조금 낮은 단계의 조치는 없나요?”
내 질문에 직원은 ‘고객 건의사항’ 정도로 해당 점포에 알려서 개선을 유도할 수 있다, 고 답했다. 이 경우 본사의 개입은 없다고 했다.
“그래요. 그럼 ‘고객 건의’ 정도로 해주세요.”
나는 그렇게 조치의 수위를 낮춰주었다. 이후 직원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눈 뒤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통화를 마친 후에도 한동안 떨떠름함이 남았다.
'에휴, 나도 잘 모르겠다. 왜 꼭 결정적일 때 마음이 약해지는지....'
그냥 강력한 조치를 취했어야 맞는 건지, 고객 건의로 불편함을 알렸으니 개선되는 걸 두고 보는 게 맞는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나는 며칠 후 그 수상한 편의점에 다시 가볼 계획이다. 그리고 할인행사 하는 물건들만 골라서 구매를 해 볼 것이다. 그때도 계속해서 2+1=3의 장난질을 하고 있다면? 그때는 정말 얄짤없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작은 희망을 품고 있다. 편의점 사장이 나쁜 마음으로 허위 할인표를 걸어두지 않았기를.... 그냥 게으름의 산물이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더는 잃고 싶지 않기에.